위키리크스 ‘엘리제궁 정탐’ 폭로
발칵 뒤집힌 프랑스 비상 안보회의
독일 이은 동맹국 지도자 감시 충격
발칵 뒤집힌 프랑스 비상 안보회의
독일 이은 동맹국 지도자 감시 충격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프랑스의 전·현직 대통령 3명을 도청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프랑스 정부는 23일(현지시각) 긴급 안보회의를 소집해 대응책을 논의했다. 2013년 미 국가안보국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통화를 도청해온 것이 폭로된 데 이어, 미국의 동맹국 지도자 불법 감시 실태가 잇따라 드러났다.
프랑스 <리베라시옹>은 23일(현지시각) 내부고발 전문 웹사이트인 위키리크스를 인용해, 미 국가안보국이 2006~2012년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뿐 아니라 프랑수아 올랑드 현 대통령의 전화 통화까지 도청해왔다고 폭로했다. 프랑스 내각의 장관들과 주미 프랑스 대사도 도청 대상에 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위키리크스는 미 국가안보국이 작성한 ‘엘리제궁 정탐’(Espionnage Elysee)이라는 제목의 일급비밀 문건들 중 5개를 <리베라시옹>과 프랑스의 온라인 탐사보도 매체 <메디아파르>에 공개했다. 미국이 엿들은 내용에는 세계 금융위기, 그리스 부채 위기, 유럽연합의 미래 등 프랑스와 국제사회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현안들이 포함돼 있었다고 위키리크스는 밝혔다.
예컨대, 2012년 5월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취임 닷새째에 ‘비밀회의’임을 강조하며 소집한 회의에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시 프랑스 경제와 금융에 미칠 파장을 논의한 내용은 고스란히 미국에도 흘러들어갔다.
프랑스 좌파 사회당 대표인 올랑드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기독교민주당)와 첫 회담을 한 뒤 그의 보수적인 태도에 실망감을 보이며, 독일 연정 파트너인 사회민주당 지도부에 별개의 회담을 요청한 사실도 미국은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었다. 2008년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미국의 개입 없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재개를 추진했던 것이나, 사르코지가 세계 경제위기를 낳은 미국의 정책 실패에 불만을 터뜨린 것도 미국의 도청 문건에 기록됐다.
프랑스 정부는 <리베라시옹> 보도에 대한 즉각적인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상당수 정치인들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장자크 우르보아 의원(사회당)은 트위터로 “미국에 동맹이란 없으며, 오직 표적과 가신만 있을 뿐이란 걸 또 한번 확인했다”고 꼬집었다. 올랑드 대통령은 24일 비상 안보회의를 소집해 보도 내용을 평가하고 향후 대응책을 논의했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네드 프라이스 대변인은 “미국과 프랑스의 파트너십은 필수불가결하다”며 “우리는 올랑드 대통령의 통화를 (도청) 표적으로 삼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과거에 실제로 우방국을 도청했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이는 앞서 2013년 10월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이 “미국이 메르켈 독일 총리의 휴대전화를 도청해왔다”는 의혹을 터뜨렸을 때와 똑같은 반응이다. 당시 메르켈 총리는 “친구를 도청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며 “(미국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고 비난했었다.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는 “프랑스 국민은 자신들이 선출한 정부가 동맹이라는 나라의 부당한 감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권리가 있다”며 “조만간 더 중요한 폭로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고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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