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2011년 오사마 빈라덴 제거작전과 관련해 무엇을 감추고 있는 걸까? 사진은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은신처에서 오사마 빈라덴이 자신이 나오는 뉴스를 보고 있는 모습. 빈라덴 사살 뒤 수색한 은신처의 비디오카메라에 포착된 모습이라고 미국 쪽은 설명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제공
정의길의 세계만사 ⑦
미국 언론인 허시의 폭로기사로 촉발된 의혹 일파만파
① 파키스탄이 2006년부터 5년간 빈라덴을 ‘관리’했다
② 미국은 파키스탄 쪽 제보 의존해 ‘작전’을 ‘연출’했다
‘죽은 악당’보다 더 요긴했던 ‘살아있는 악당’의 진짜 최후는?
미국 언론인 허시의 폭로기사로 촉발된 의혹 일파만파
① 파키스탄이 2006년부터 5년간 빈라덴을 ‘관리’했다
② 미국은 파키스탄 쪽 제보 의존해 ‘작전’을 ‘연출’했다
‘죽은 악당’보다 더 요긴했던 ‘살아있는 악당’의 진짜 최후는?
2010년 8월 한 전직 고위 파키스탄 정보장교가 이슬라마바드의 미국 대사관에 있는 조너선 뱅크 중앙정보국 지부장에 접근했다. 그는 워싱턴이 지난 2001년 내건 빈라덴 현상금을 대가로 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중앙정보국에게 말해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 그 자발적 제보자는 신뢰성 검증을 통과했다. (…) 그 가옥은 위성감시에 들어갔다. 중앙정보국은 아보타바드의 한 가옥을 빌려 전진 감시초소로 사용했고, 이 가옥에 파키스탄 현지 정보원과 다른 외국인들을 투입했다. 니중에 그 초소는 파키스탄정보부(ISI)와의 접선장소가 됐다. (…) 제보자와 그 가족은 파키스탄에서 빼돌려져 워싱턴 지역에 재정착했다. 그는 지금 중앙정보국 자문관이다. (…)
10월에 오바마는 이 정보를 브리핑받았다. (…) 대통령의 반응은 단호했다. “그게 정말로 빈라덴이라는 증거를 갖지 않는 한 이를 더이상 나에게 말하지 말라.” (…) 중앙정보국과 합동특수작전사령부 지도부들은 디엔에이 증거를 얻는다면 그런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 유일한 길은 파키스탄을 한 배에 태우는 것이었다. (…)
집 안에 감금돼 감시받던 빈라덴…무기력한 환자
다음 단계는 파키스탄 군 참모총장인 아시파크 파르베즈 카야니와 파키스탄정보부 국장 아메드 슈자 파사 장군을 어떻게 설득할지를 강구하는 것이었다. (…) 그 가옥은 무장한 거주지가 아니었다. 기관총도 없었다. 왜냐하면 파키스탄정보부의 통제 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제보자는 빈라덴이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부인과 아이들과 함께 힌두쿠시 산악지대에서 살았고, 파키스탄정보부가 현지 부족 사람들을 매수해 빈라데을 배신하도록 해서 그를 잡았다고 말했다. 그 제보자는 뱅크에게 빈라덴이 아프고, 아보타바드에서 연금 초기부터 파키스탄정보부가 의사이자 파키스탄군 중령인 아미르 아지즈에게 빈라덴을 돌보도록 근처로 이사하라고 명령했다고 전했다. 진실은 빈라덴이 무력한 환자였다는 것이다. (…)
필요한 협조를 얻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파키스탄은 미국의 지속적인 군사원조를 보장받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파키스탄정보부 지도부들을 위한 방탄 리무진과 경호원, 주거지 등 개인 경호를 위한 돈도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또 회계감사를 받지 않는 미국 국방부의 비상자금으로 개인에게 인센티브로 주어지는 뒷돈도 있었다. (…)
파키스탄정보부 권력자들에게 제공된 미국의 ‘인센티브’
빈라덴의 아보타바드 가옥은 파키스탄사관학교에서 2마일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파키스탄 육군의 한 전투부대 사령부가 1마일 근처에 있었다. 아보타바드는 파키스탄정보부의 비밀작전 기지인 타르벨라가지에서 헬기로 15분거리였다. 이 기지는 또 파키스탄 핵무기를 지키는 요원들의 훈련장소이기도 했다. 타르벨라가지는 파키스탄정보부가 빈란덴을 왜 아보타바드에 뒀는지를 말해주는 이유였다. 빈라덴을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
오바마는 확증을 애타게 찾았다. 그 증거는 빈라덴의 디엔에이(DNA)로 얻게 됐다. 카야니와 파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들은 아지즈에게 그 디엔에이 표본을 얻어내라고 명령했다. (…) 아지즈는 미국이 내건 빈라덴 현상금 2500만달러의 일부를 받았다. 그 디엔에이 샘플은 아보타바드 가옥에 사는 이가 빈라덴임을 결정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
어떻게 작전을 수행할지를 놓고 거래가 진행됐다. 카야니는 결국 예스라고 했으나, 미국이 대대적인 병력을 투입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당신들은 단출한 병력을 투입해야 하고, 그를 죽여야만 한다’. (…) 이 합의는 2011년 1월말에 이뤄졌다. (…) 파키스탄은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실 대원, 중앙정보국 현장 요원, 그리고 두 명의 통신전문가로 구성된 4명의 미국 작전 준비조를 허락했다. 이들은 타르벨라가지에서 연락사무소를 차렸다. (…)
2011년 4월 파샤는 중앙정보국 본부에서 리언 파네타 국장을 만났다. 파샤는 미국이 (한때 중단했던 군사원조) 자금을 다시 받기로 약속을 얻어냈고, 미국은 파키스탄이 작전 수행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확약을 받아냈다. (…) 그해 봄 파샤는 미국에게 파키스탄이 왜 빈라덴을 은밀히 체포하고 있었고, 이를 비밀로 하는 것이 파키스탄정보부로서는 당위적인 역할이었는지 직접적인 해명을 했다. “우리는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억제할 인질이 필요했다. 파키스탄정보부는 빈라덴을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내의 탈레반과 알카에다 활동을 억제하는 지렛대로 사용했다. 만약 알카에다와 탈레반이 파키스탄정보부의 이익과 충돌하는 작전을 벌인다면, 빈라덴을 미국에게 넘기겠다는 것을 그들이 알도록 했다. 그래서, 만약 파키스탄이 미국과 협조해 아보타바드의 빈라덴을 잡았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지옥의 대가가 있게 될 것이다.” (…)
빈라덴은 탈레반과 알카에다 막기 위한 ‘인질’?
파샤와 카야니는 파키스탄 군과 방공사령부가 작전을 수행하는 미군 헬기를 추적하지 않도록 하는 책임을 맡았다. (…) 당초의 계획은 이 급습작전를 막바로 발표하지 않는 것이었다. (…) 빈라덴 사살은 적어도 7일 동안 공포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래서 면밀히 조작한 은폐안을 발표하기로 했다. 아프간 접경 지대의 힌두쿠시 산악에서 무인기 공격으로 빈라덴이 사살됐고, 이는 디엔에이 분석을 통해 확인됐다고 오바마가 발표하기로 했다. (…) 만약 파키스탄의 역할이 알려지게 되면, 폭력시위가 일어날 거고, 빈라덴은 많은 파키스탄 사람에게 영웅으로 간주될 것이다. 또 파샤와 카야니, 그리고 그 가족들은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모두가 알고 있었다. (…)
아보타바드 가옥에는 파키스탄정보부 경비원들이 빈라덴과 부인, 아이들을 감시하려고 시계처럼 빙 둘러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미군의 헬기 프로펠러 소리가 들리자마자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마을은 어두웠다. 급습작전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에 파키스탄정보부의 명령으로 전력이 끊겼다. (미군 특공대가 탔던) 블랙호크 헬기 한 대가 그 가옥 내에서 추락했다. (…) 일련의 폭발과 화재가 몇 마일 밖에서도 보였다. (…) 그들이 가옥 안으로 진입하면서 전투는 없었다. 네이비실 대원과 함께 헬기를 타고 온 파키스탄정보부 장교가 이들을 어두운 가옥 안으로 인도했고, 빈라덴의 거처로 가는 계단으로 데려갔다. (…) 빈라덴의 부인 한 명이 발작적으로 비명을 질렀고, 빈라덴을 겨냥했던 총탄 한 방이 그녀의 무릎에 맞았다. 빈라덴에게 발사된 총탄 외에는 어떠한 사격도 없었다. (…)
빈라덴을 죽인 뒤, 네이비실 대원들은 헬기 추락으로 부상당한 대원들과 함께 구호 수송기를 기다렸다. 20분 동안 블랙호크 헬기는 불탔다. 마을에는 불빛이 없었고, 전기가 없었고, 경찰도 없었다. 물론 소방차도 없었다. (…) (특공대원들이 이 가옥에서 노획했다는) 컴퓨터와 저장장치로 가득찬 배낭은 없었다. 특공대원들은 빈라덴의 방에서 발견한 몇 권의 책과 서류만을 배낭에 채웠을 뿐이다. (…)
‘빈라덴 제거’ 발표 시기도 저울질했다
작전 성공이 명백해지자, 백악관 밀실에서는 다른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오바마가 빈라덴은 산악지대에서 무인기의 공격을 받고 죽었다는 것을 일주일 이상 지난 뒤에 발표하기로 한 카야니와 파샤와의 약속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막바로 발표할 것인가? 추락한 헬기는 오바마의 정치참모들에게 후자의 안을 촉구하도록 만들었다. 폭발 화염으로 이 사건을 숨기는 게 불가능하며, 무슨 일이 누설된다는 것이었다. (…) 모든 사람이 이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파키스탄과의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한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 오바마의 연설은 급히 마련됐다. (…) 이 자기 충족적이고 부정확한 일련의 연설들은 다음 몇 주 동안 혼란을 자아내게 된다. 오바마는 지난해 8월에 ‘가능한 단서’를 통해서 빈라덴이 파키스탄에 있는 것을 자신의 행정부가 발견했다고 말했다. 중앙정보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 연설은 자발적으로 찾아온 제보자 등 특정 사건을 시사한 것이었다. 이 언급은 빈라덴이 알카에다에게 보내는 작전명령의 흐름을 관장하는 연락체계를 중앙정보국의 명석한 분석관들이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새로운 은폐 스토리로 이어졌다.
오사마 빈 라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맨 오른쪽)이 지난 2011년 5월1일 밤(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미군의 오사마 빈라덴 사살작전 성과를 공식 발표한 뒤 마이크 멀린 미군합참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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