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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빈라덴 ‘제거’는 정말 미국의 ‘작전’이었을까

등록 2015-05-20 14:54수정 2015-05-21 10:58

미국은 2011년 오사마 빈라덴 제거작전과 관련해 무엇을 감추고 있는 걸까? 사진은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은신처에서 오사마 빈라덴이 자신이 나오는 뉴스를 보고 있는 모습. 빈라덴 사살 뒤 수색한 은신처의 비디오카메라에 포착된 모습이라고 미국 쪽은 설명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제공
미국은 2011년 오사마 빈라덴 제거작전과 관련해 무엇을 감추고 있는 걸까? 사진은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은신처에서 오사마 빈라덴이 자신이 나오는 뉴스를 보고 있는 모습. 빈라덴 사살 뒤 수색한 은신처의 비디오카메라에 포착된 모습이라고 미국 쪽은 설명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제공
정의길의 세계만사 ⑦
미국 언론인 허시의 폭로기사로 촉발된 의혹 일파만파
① 파키스탄이 2006년부터 5년간 빈라덴을 ‘관리’했다
② 미국은 파키스탄 쪽 제보 의존해 ‘작전’을 ‘연출’했다
‘죽은 악당’보다 더 요긴했던 ‘살아있는 악당’의 진짜 최후는?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은 도대체 죽기는 한 것일까요?

미국의 빈라덴 제거작전은 소설이라는 미국의 언론인 시모어 허시의 폭로 기사로 빈라덴 제거를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습니다. 그의 보도는 미국 당국에 의해 판타지에 근거한 거짓말 투성이이라고 즉각 부인됐고, 다른 언론들도 그의 주장이 신빙성이 없다는 검증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일부 뒷받침하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익명 취재원에 의존했지만 너무나 구체적인 내용들

먼저 허시의 보도 핵심을 살펴보도록 하죠. 기사의 주요 내용을 발췌해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한국의 언론들이 그 보도의 핵심만 전했지, 자세한 내용은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조금 길어도 그의 육성을 들어보도록 하죠. 비록 익명의 취재원에 기댄 것이기는 하나, 무척이나 구체적인 내용들입니다.

2010년 8월 한 전직 고위 파키스탄 정보장교가 이슬라마바드의 미국 대사관에 있는 조너선 뱅크 중앙정보국 지부장에 접근했다. 그는 워싱턴이 지난 2001년 내건 빈라덴 현상금을 대가로 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중앙정보국에게 말해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 그 자발적 제보자는 신뢰성 검증을 통과했다. (…) 그 가옥은 위성감시에 들어갔다. 중앙정보국은 아보타바드의 한 가옥을 빌려 전진 감시초소로 사용했고, 이 가옥에 파키스탄 현지 정보원과 다른 외국인들을 투입했다. 니중에 그 초소는 파키스탄정보부(ISI)와의 접선장소가 됐다. (…) 제보자와 그 가족은 파키스탄에서 빼돌려져 워싱턴 지역에 재정착했다. 그는 지금 중앙정보국 자문관이다. (…)

10월에 오바마는 이 정보를 브리핑받았다. (…) 대통령의 반응은 단호했다. “그게 정말로 빈라덴이라는 증거를 갖지 않는 한 이를 더이상 나에게 말하지 말라.” (…) 중앙정보국과 합동특수작전사령부 지도부들은 디엔에이 증거를 얻는다면 그런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 유일한 길은 파키스탄을 한 배에 태우는 것이었다. (…)

집 안에 감금돼 감시받던 빈라덴…무기력한 환자

오사마 빈 라덴
오사마 빈 라덴
다음 단계는 파키스탄 군 참모총장인 아시파크 파르베즈 카야니와 파키스탄정보부 국장 아메드 슈자 파사 장군을 어떻게 설득할지를 강구하는 것이었다. (…) 그 가옥은 무장한 거주지가 아니었다. 기관총도 없었다. 왜냐하면 파키스탄정보부의 통제 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제보자는 빈라덴이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부인과 아이들과 함께 힌두쿠시 산악지대에서 살았고, 파키스탄정보부가 현지 부족 사람들을 매수해 빈라데을 배신하도록 해서 그를 잡았다고 말했다. 그 제보자는 뱅크에게 빈라덴이 아프고, 아보타바드에서 연금 초기부터 파키스탄정보부가 의사이자 파키스탄군 중령인 아미르 아지즈에게 빈라덴을 돌보도록 근처로 이사하라고 명령했다고 전했다. 진실은 빈라덴이 무력한 환자였다는 것이다. (…)

필요한 협조를 얻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파키스탄은 미국의 지속적인 군사원조를 보장받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파키스탄정보부 지도부들을 위한 방탄 리무진과 경호원, 주거지 등 개인 경호를 위한 돈도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또 회계감사를 받지 않는 미국 국방부의 비상자금으로 개인에게 인센티브로 주어지는 뒷돈도 있었다. (…)

파키스탄정보부 권력자들에게 제공된 미국의 ‘인센티브’

빈라덴의 아보타바드 가옥은 파키스탄사관학교에서 2마일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파키스탄 육군의 한 전투부대 사령부가 1마일 근처에 있었다. 아보타바드는 파키스탄정보부의 비밀작전 기지인 타르벨라가지에서 헬기로 15분거리였다. 이 기지는 또 파키스탄 핵무기를 지키는 요원들의 훈련장소이기도 했다. 타르벨라가지는 파키스탄정보부가 빈란덴을 왜 아보타바드에 뒀는지를 말해주는 이유였다. 빈라덴을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

오바마는 확증을 애타게 찾았다. 그 증거는 빈라덴의 디엔에이(DNA)로 얻게 됐다. 카야니와 파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들은 아지즈에게 그 디엔에이 표본을 얻어내라고 명령했다. (…) 아지즈는 미국이 내건 빈라덴 현상금 2500만달러의 일부를 받았다. 그 디엔에이 샘플은 아보타바드 가옥에 사는 이가 빈라덴임을 결정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

어떻게 작전을 수행할지를 놓고 거래가 진행됐다. 카야니는 결국 예스라고 했으나, 미국이 대대적인 병력을 투입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당신들은 단출한 병력을 투입해야 하고, 그를 죽여야만 한다’. (…) 이 합의는 2011년 1월말에 이뤄졌다. (…) 파키스탄은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실 대원, 중앙정보국 현장 요원, 그리고 두 명의 통신전문가로 구성된 4명의 미국 작전 준비조를 허락했다. 이들은 타르벨라가지에서 연락사무소를 차렸다. (…)

2011년 4월 파샤는 중앙정보국 본부에서 리언 파네타 국장을 만났다. 파샤는 미국이 (한때 중단했던 군사원조) 자금을 다시 받기로 약속을 얻어냈고, 미국은 파키스탄이 작전 수행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확약을 받아냈다. (…) 그해 봄 파샤는 미국에게 파키스탄이 왜 빈라덴을 은밀히 체포하고 있었고, 이를 비밀로 하는 것이 파키스탄정보부로서는 당위적인 역할이었는지 직접적인 해명을 했다. “우리는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억제할 인질이 필요했다. 파키스탄정보부는 빈라덴을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내의 탈레반과 알카에다 활동을 억제하는 지렛대로 사용했다. 만약 알카에다와 탈레반이 파키스탄정보부의 이익과 충돌하는 작전을 벌인다면, 빈라덴을 미국에게 넘기겠다는 것을 그들이 알도록 했다. 그래서, 만약 파키스탄이 미국과 협조해 아보타바드의 빈라덴을 잡았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지옥의 대가가 있게 될 것이다.” (…)

빈라덴은 탈레반과 알카에다 막기 위한 ‘인질’?

파샤와 카야니는 파키스탄 군과 방공사령부가 작전을 수행하는 미군 헬기를 추적하지 않도록 하는 책임을 맡았다. (…) 당초의 계획은 이 급습작전를 막바로 발표하지 않는 것이었다. (…) 빈라덴 사살은 적어도 7일 동안 공포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래서 면밀히 조작한 은폐안을 발표하기로 했다. 아프간 접경 지대의 힌두쿠시 산악에서 무인기 공격으로 빈라덴이 사살됐고, 이는 디엔에이 분석을 통해 확인됐다고 오바마가 발표하기로 했다. (…) 만약 파키스탄의 역할이 알려지게 되면, 폭력시위가 일어날 거고, 빈라덴은 많은 파키스탄 사람에게 영웅으로 간주될 것이다. 또 파샤와 카야니, 그리고 그 가족들은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모두가 알고 있었다. (…)

아보타바드 가옥에는 파키스탄정보부 경비원들이 빈라덴과 부인, 아이들을 감시하려고 시계처럼 빙 둘러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미군의 헬기 프로펠러 소리가 들리자마자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마을은 어두웠다. 급습작전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에 파키스탄정보부의 명령으로 전력이 끊겼다. (미군 특공대가 탔던) 블랙호크 헬기 한 대가 그 가옥 내에서 추락했다. (…) 일련의 폭발과 화재가 몇 마일 밖에서도 보였다. (…) 그들이 가옥 안으로 진입하면서 전투는 없었다. 네이비실 대원과 함께 헬기를 타고 온 파키스탄정보부 장교가 이들을 어두운 가옥 안으로 인도했고, 빈라덴의 거처로 가는 계단으로 데려갔다. (…) 빈라덴의 부인 한 명이 발작적으로 비명을 질렀고, 빈라덴을 겨냥했던 총탄 한 방이 그녀의 무릎에 맞았다. 빈라덴에게 발사된 총탄 외에는 어떠한 사격도 없었다. (…)

빈라덴을 죽인 뒤, 네이비실 대원들은 헬기 추락으로 부상당한 대원들과 함께 구호 수송기를 기다렸다. 20분 동안 블랙호크 헬기는 불탔다. 마을에는 불빛이 없었고, 전기가 없었고, 경찰도 없었다. 물론 소방차도 없었다. (…) (특공대원들이 이 가옥에서 노획했다는) 컴퓨터와 저장장치로 가득찬 배낭은 없었다. 특공대원들은 빈라덴의 방에서 발견한 몇 권의 책과 서류만을 배낭에 채웠을 뿐이다. (…)

‘빈라덴 제거’ 발표 시기도 저울질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맨 오른쪽)이 지난 2011년 5월1일 밤(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미군의 오사마 빈라덴 사살작전 성과를 공식 발표한 뒤 마이크 멀린 미군합참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맨 오른쪽)이 지난 2011년 5월1일 밤(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미군의 오사마 빈라덴 사살작전 성과를 공식 발표한 뒤 마이크 멀린 미군합참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작전 성공이 명백해지자, 백악관 밀실에서는 다른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오바마가 빈라덴은 산악지대에서 무인기의 공격을 받고 죽었다는 것을 일주일 이상 지난 뒤에 발표하기로 한 카야니와 파샤와의 약속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막바로 발표할 것인가? 추락한 헬기는 오바마의 정치참모들에게 후자의 안을 촉구하도록 만들었다. 폭발 화염으로 이 사건을 숨기는 게 불가능하며, 무슨 일이 누설된다는 것이었다. (…) 모든 사람이 이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파키스탄과의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한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 오바마의 연설은 급히 마련됐다. (…) 이 자기 충족적이고 부정확한 일련의 연설들은 다음 몇 주 동안 혼란을 자아내게 된다. 오바마는 지난해 8월에 ‘가능한 단서’를 통해서 빈라덴이 파키스탄에 있는 것을 자신의 행정부가 발견했다고 말했다. 중앙정보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 연설은 자발적으로 찾아온 제보자 등 특정 사건을 시사한 것이었다. 이 언급은 빈라덴이 알카에다에게 보내는 작전명령의 흐름을 관장하는 연락체계를 중앙정보국의 명석한 분석관들이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새로운 은폐 스토리로 이어졌다.

이상은 허시의 장문 기사 중 전반부이기는 하나 핵심 내용입니다. 나머지는 빈라덴 제거 이후 오바마 행정부의 우왕좌왕과 은폐를 다룬 내용입니다. 그 중에는 빈라덴을 아라비아해에서 항해 중이던 칼빈슨 항모로 데려가서 수장했다는 주장은 날조된 허위라는 것 등이 포합됩니다.

허시 보도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빈라덴은 2006년 이후 파키스탄이 관리했다. 둘째, 미국은 이를 파키스탄 쪽 인사로부터 제보받고는, 파키스탄과 협조해 빈라덴을 제거했다.

여기서 핵심 고리는 자발적으로 찾아왔다는 제보자(walk-in)입니다. 미국은 그동안 쿠와이티라는 빈라덴의 연락책을 추적해서 그를 발견했고, 파키스탄에 통보하지 않고서 독자적으로 그를 제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허시의 보도 뒤 이 제보자를 뒷받침하는 보도가 잇따르고, 미국 정부 인사들도 비공식적으로 중요한 제보자가 있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제보자는 누구이고 무엇을 제보했나

그럼 빈라덴 제거 작전의 진실을 밝힌 첫 열쇠는 이 제보자가 누구이며, 어느 정도의 제보를 했느냐는 것입니다.

허시의 보도 뒤 미국 <엔비시>(NBC) 방송과 <아에프페>(AFP) 통신은 제보자를 확인하는 추가 보도를 했습니다.

<엔비시>는 처음에는 이 제보자가 미국에게 빈라덴의 행방을 알려줬다고 보도했다가, 곧 수정 보도를 했습니다. 파키스탄의 군 정보 장교가 미국의 빈라덴 제거 작전에 결정적 도움을 주기는 했으나, 그의 행방을 알려준 것은 아니라고 미국의 정보 관리들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엔비시>는 세 명의 취재원을 인용한 이 보도에서, 파키스탄의 일부 관리들은 빈라덴이 어디에 숨어있는지를 내내 알고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취재원 중의 한 명인 미국의 한 전직 최고위 간부는 파키스탄정보부 요원들이 아보타바드의 빈라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며, 두 차례나 단호히 “그들은 알고 있었다”고 확인했다고 방송은 전했습니다. 또 미국 정부는 오랫동안 파키스탄정보부와 알카에다가 협력하고 있음을 깊이 의심했다고 또 다른 최고위 관리가 인정했다고 합니다.

<아에프페> 통신은 두 명의 전직 고위 군 장교를 인용해 파키스탄 정보기관에서 이탈한 사람이 미국의 빈라덴 추적을 도왔으나, 미국과 파키스탄이 협력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빈라덴 제거 작전 당시 고위 군 장교였던 이 취재원은 그 망명자는 정보가 많고 정력적인 중견 정보장교였으며, 그의 도움이 작전 성공에 결정적이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먼저 빈라덴의 해방을 제보한 것은 아니고 아보타바드에 사는 이가 빈라덴이라는 것을 파악하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처음에는 자신의 목표가 빈라덴인 줄 몰랐다고 이 취재원은 전했습니다.

후사인 하카니 당시 미국 주재 파키스탄 대사는 <포린 폴리시> 기고를 통해서 허시의 주장을 대부분 부인했지만, 이 제보자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정했습니다. 그는 “허시의 이야기 중에서 그럴듯한 유일한 것은 빈라덴의 행방에 대해 미국인들에게 제보해 준 파키스탄 장교에 관한 것이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와 관련해 파키스탄 관리들로부터 다른 버전의 얘기를 들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이 버전에 따르면, 그 파키스탄정보부 장교는 미국 정보기관이 다른 수단을 통해서 획득한 정보에 근거해 아보타바드 가옥 급습 작전을 계획하기 시작한 뒤 이 작전을 도왔을 뿐이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미국 중앙정보국은 이 파키스탄 장교를 빼돌렸는데, 이는 그가 빈라덴의 행방을 제보했기 때문이 아니라, 중앙정보국이 파키스탄 땅에서 작전을 벌일 수 있도록 상부의 허가 없이 도왔기 때문이다”고 소개했습니다.

그 제보자의 신원을 특정한 보도도 있었습니다. 파키스탄 일간 <더 뉴스>는 파키스탄의 군 사령부가 있는 “라왈핀디의 정보장교 집단 내에서는 빈라덴 가옥에 대한 결정적 제보는 파키스탄정보부 관리였던 우스만 칼리드 준장이 미국에 제공했음을 인정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칼리드 준장은 의사인 샤킬 아프리디를 설득해 빈라덴이 살던 아보타바드의 비랄 마을에서 허위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하면서 빈라덴의 신원을 파악하는 결정적 증거를 얻어내기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신문은 칼리드가 가족과 함께 미국 시민권을 받았다고 덧붙였습니다.

문제는 우스만 칼리드가 2012년에 런던에서 사망했다는 보도입니다. <허핑턴포스트>에서 외교안보 관련 기고를 하는 마이클 브레넌 피츠버그대 교수는 이 온라인신문 기고에서 “칼리드를 잘 아는 한 고위 퇴역 파키스탄 장교가 칼리드는 수십년 전부터 영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가 그런 제보를 할 수가 없다고 나에게 말해줬다”고 전했습니다. 브레넌 교수는 칼리드는 의도적으로 잘못 특정되어 왜곡하려는 인물로 선택된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즉, 진짜 제보자를 보호하려고 우스만 칼리드라는 사람을 의도적으로 노출시킨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허시 ‘폭로’ 전에도 이어졌던 여러 징후적 보도들

이상의 보도와 분석을 종합하면, 적어도 미국의 빈라덴 제거 작전에 결정적 기여를 한 파키스탄 정부 인사가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 제보자가 빈라덴의 행방을 알려줬는지, 아니면 빈라덴을 추적하고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줬는지는 의견이 엇갈리는 거죠. 또 한 가지는 비록 확인이 안 되고 있으나, 파키스탄 쪽이 빈라덴의 행방을 알고 있었을 개연성이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허시의 보도 전에도 이에 대한 보도는 이미 있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2012년 2월18일 페르베프 무샤라프 당시 대통령의 명령으로 빈라덴의 거처가 마련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신문은 빈라덴이 아보타바드에 자리잡을 때 “아시파크 카야니 육군 참모총장이 당시 파키스탄정보부 수장이었으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압도적 권력자였다”며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신문은 지아우딘 버트 전 파키스탄정보부 부장이 2011년 12월 파키스탄 언론과 한 인터뷰를 인용하며, 빈라덴의 아보타바드 거처는 무사랴프의 명령으로 이아즈 샤 준장이 마련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지아우딘 버트는 자신의 주장을 2012년 2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밝혔습니다.

<뉴욕타임스>도 지난 3월 아메드 슈자 파샤 파키스탄정보부 부장이 빈라덴이 아보타바드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직접적 증거를 미국이 빈라덴 제거 작전을 할 때 가지고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은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빈라덴 제거 작전을 결정적 제보에 의존했고, 또 그 작전은 다분히 정치적 목적에 의해 수행되고 분식됐습니다. 그리고 미국이나 파키스탄이나 정치적 의도에 따라서 빈라덴의 행방 파악과 제거의 속도를 조절한 정황이 점점 엿보입니다. 사실 테러와의 전쟁 전체가 의문 투성이이고, 미국 정부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수행된 것입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알카에다와 연관도 없고, 대량살상무기도 개발하지 않고 있음은 미국 정보기관들에게는 사실 공지의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부시 행정부는 이를 조작해서 이라크를 침공했습니다. 미국은 아프간을 침공한 2011년 12월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고 토라보라 전투에서 빈라덴을 체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은 이를 의도적으로 회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빈라덴을 체포하려면 지상군을 더 투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곧 있을 이라크 전쟁에 쓸 병력이 아프간에서 발목 잡히지 않게 하려고 추가 지상군 투입을 꺼렸습니다. 또 테러와의 전쟁을 행하려면, 빈라덴이라는 악당의 존재가 더 필요한 측면은 없었을까요?

허시는 자신의 보도에서 파키스탄이 빈라덴을 연금해둔 것은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등 이슬람주의 무장세력과의 거래를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은 과연 이런 필요성이 없었을까요?  

자꾸 의문을 갖다보니, 빈라덴이 정말로 죽기는 한 것일까라는 의혹마저도 드네요.

정의길 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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