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미에슈 부이치츠키 바르샤바대 교수
“푸틴의 러시아는 제국주의…국내 문제 감추려 국외 팽창”
“폴란드는 지정학적으로 민감…‘히틀러 푸틴’ 심각히 여겨
“폴란드는 지정학적으로 민감…‘히틀러 푸틴’ 심각히 여겨
“왜 러시아가 한반도에선 도발하지 못하는가? 그건 (한국에 자국군이 주둔한) 미국이 자동으로 개입하기 때문이다. 폴란드가 미국의 미사일 방어 기지를 유치하려는 것도 같은 이유다.”
지난달 <한겨레>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만난 카지미에슈 부이치츠키 바르샤바대 교수는 “폴란드도 러시아와 평화공존을 바라지만 ‘푸틴의 러시아’와는 협상이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엇다. 부이치츠키 교수의 단언은 외교안보와 관련해 러시아에 대한 강경책을 주장하는 폴란드 매파의 시각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폴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의 미사일 방어(MD) 기지를 자국 영토에 설치하려 하고, 러시아는 이에 강하게 반발한다. 방어용 무기의 배치가 오히려 러시아의 안보 위협을 부르는 것은 아닌가?
-역설적인데, 판단의 문제일 수 있다. 미사일방어시스템 구축에 대한 가장 좋은 설명은 러시아가 더 공격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위협을 느낀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공격과 크림반도 합병은 러시아가 국제법을 어기고 ‘하이브리드 전쟁’을 펼친 것이다. 매우 공격적인 ‘선전전’을 펼침으로써 특정국가에 영향을 미치고 갈등을 유발한다.
당신의 질문은 이전 시기 같으면 아주 옳다. 그러나 폴란드는 지금은 러시아의 잠재적 공격 대상국일 수 있다. 서유럽과 미국도 같은 생각을 한다.
-나토는 유럽 지역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 이란이나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최근 나토 사령관은 미국-이란 관계가 개선되더라도 유럽 엠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러시아는 나토의 진의를 의심하며 반발하고 있다.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더 개방적으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 푸틴의 대외 정책이 서방의 대러시아 정책을 (강경 태도로) 바꾸고 있다. 2012년 푸틴이 재집권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러시아가 국제질서에 편입하기를 기대했다. 아무도 러시아의 붕괴와 그 파장을 원하지 않는다. 중국, 유럽, 미국, 일본…, 모두 그렇다. 국제 관계는 균형이 중요하다. 그런데 푸틴이 공격적 태도를 보이는 지금 상황에선 국제질서의 균형이 불가능하다. 러시아 주변국에 대한 푸틴의 공격적 태도를 제어할 어떤 질서가 필요하다.
이전에는 러시아가 폴란드의 잠재적 위협이었지만 지금은 공공연한 위협이다. 폴란드 뿐 아니라 미국과 독일 등 유럽에 대해서도 그렇다. 이건 전혀 새로운 구도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그 작은 일부일 뿐이다. 푸틴의 의도는 유럽연합의 분열과 나토의 해체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와 함께 공산권 동맹인 바르샤바조약기구도 해체됐고 러시아의 군사동맹도 크게 위축됐다. 반면 유럽에서 나토 회원국의 영토는 줄곧 동쪽으로 확장돼오지 않았나?
-근본적인 질문이다. 재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스탈린은 유고슬라비아를 제외한 중부 유럽 국가들을 식민지화 했다. 소련 붕괴로 냉전이 끝났지만, 모든 면에서 볼 때 러시아는 지금도 그렇다.
나토는 근본적으로 바르샤바조약기구와는 성격이 다른 동맹이다. 나토는 미국과 유럽의 안보동맹이고, 바르샤바조약은 식민지배 기구였다. 러시아가 나토로부터 위협받고 있다고 말할 만한 진짜 이유가 없다. 오히려 나토가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야심의 위협을 받고 있다.
현재 러시아의 정치는 서구의 사고방식으로는 ‘완전히 낯선 것’이다. 러시아는 어떤 의미에서 (한정된) 영토가 없다. 러시아는 항상 주변국 국경을 위협하고 침공해왔다. 지금은 우크라이나를 위협하고 있지만, 내일은 폴란드를 위협할 거고, 폴란드가 정복되면 독일을 위협할 거고, 그런 식으로 (유럽 대륙의 서쪽 끝에 있는) 포르투갈까지 침공할 거다. 유럽 국가들이 이처럼 민감한 문제를 선뜻 다루려 들지 않는 게 문제다.
-왜 러시아가 왜 지금도 공격적 태도를 보이는가? 이념적 문제인가, 아니먄 러시아내 민족주의의 팽창 때문인가?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도 민주주의와 개혁을 추진했지만, 불행히도 그 과정이 전혀 성공적이지 못했다. 보리스 옐친 집권 시기에 정치는 무정부 상태였고 경제는 망가졌다. 그 때 푸틴이 나타나 집권했다. 그는 운이 좋았다.
역사적으로 보면, 19세기까지 러시아는 유럽 국가였고 유럽과 긴밀한 관계가 있었다. 19세기 이후 유럽에선 국민국가들이 건설됐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제국주의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는 근대국가가 아니다. 문제는 재국의 붕괴해야 국가가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정체성이 대제국이라고 여긴다. 지금 러시아의 태도는 완전히 제국주의적이다. 그러나 제국의 위기는 쇼비니스트(맹목적 애국주의자)들의 제국주의적 사고에서 비롯한다.
제국이 외부로 지나치게 세력을 확장하는 건 내부의 문제를 감추기 위한 것이다. 히틀러 사례와도 비숫하다. 독일이 1차 대전 패배했지만 인정하지 않았고 잃은 것을 만회하려 재시도했다. 내 의견으로는, 러시아의 정체성이 매우 큰 위기에 처했다. 매우 공세적 태도를 보이지만 매우 약화한 것이다.
-러시아의 현 상태가 단기간에 변화하기 힘든 구조적 문제라면, 그걸 인정하고 현 상태에서 평화공존 방법을 찾을 순 없나?
=그렇게 보지 않는다. 물론 희망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문제는 푸틴과 협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유럽은 하나의 교훈이 있다. 왜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읽지 않았었나? 유럽이 이젠 푸틴판 <나의 투쟁>을 읽고 있다. 푸틴은 “러시아는 제국의 재건과 ‘위대한 유라시아’를 원한다”고 말한다. 러시아는 공공연히 핵전쟁을 이야기한다. 그게 농담이 아니다.
-폴란드가 나토 미사일 방어기지를 영토 안에 유치하는 것에 대한 국내 여론은 어떤가? 비판은 없나?
=우리는 열린사회다. 의견들이 다양하다. 폴란드인 다수는 나토 멤버십을 지지한다. 나토가 우리에게 안보를 제공한다. 나토 기지 없이는 폴란드 방위도 없다. 유럽 국가들과의 방위협력 없이 폴란드가 자력으로 개별적으로 국가를 방어하기 어렵다.
나토 기지를 유치하려는 폴란드 정부의 결정에 대한 비판도 있다. 친러시아론자들은 러시아와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건 위험하다.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폴란드는 독일과 러시아 양강 사이에 낀나라였다. 19세기까지 폴란드는 독립국가가 없었고 독일과 러시아 중 더 나은 쪽을 선택해야 했다. 폴란드는 유럽에서 지정학적으로 매우 민감한 위치에 있는 나라다. 제2차 대전 때엔 영국·프랑스와 안보동맹이었음에도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았다. 지금은 ‘히틀러 푸틴’이라는 비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푸틴과는 협상할 찬스가 없다는 거다. 그게 문제다. 매우 위험하고 환상이다. 왜 러시아가 한반도에선 도발하지 않는가, 바로 미국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의 도발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칫 전면적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르샤바/조일준 기자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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