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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우린 죽일게, 너넨 죽이지 마…사형제라는 ‘국제 복수극’

등록 2015-05-08 18:52수정 2015-05-10 10:12

2004년 4월 중국 원저우시의 사형 집행 모습. 그동안 중국에서 사형이 집행된 인도네시아인은 15명에 이른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올해 들어서만 자국에서 외국인을 포함해 이미 14명을 총살로 사형 집행했다. 사형제는 국제적 복수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AFP 연합뉴스
2004년 4월 중국 원저우시의 사형 집행 모습. 그동안 중국에서 사형이 집행된 인도네시아인은 15명에 이른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올해 들어서만 자국에서 외국인을 포함해 이미 14명을 총살로 사형 집행했다. 사형제는 국제적 복수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AFP 연합뉴스
[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44) 사형제라는 국제복수극
흔히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즐겨 써온 속담에 “머너뿍 아이르 디 둘랑, 떠르뻐르칙 무까 선디리”란 게 있다. ‘접시에 담긴 물을 치면 제 얼굴로 튄다’는 말인데 옳지 않은 짓을 하면 결국 저한테 되돌아온다는 속뜻을 지녔다. 요즘 인도네시아 정부 꼴이 딱 그 짝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 1월18일 자국인 1명과 브라질, 말라위, 나이지리아, 네덜란드, 베트남 마약범 6명을 총살한 데 이어 4월29일 다시 자국인 1명과 나이지리아인 4명, 오스트레일리아인 2명, 브라질인 1명을 포함해 모두 8명을 총살했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그 두 번째 사형 집행 보름 전인 4월14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1999년 고용인 살해 혐의로 복역 중이던 인도네시아인 가사도우미 시띠 자에납을 참수했다. 이틀 뒤엔 2012년 고용인의 4살짜리 아이를 살해한 혐의로 복역 중이던 인도네시아인 가사도우미 까르니 따르심의 목을 벴다. 인도네시아 외무장관 레트노 마르수디는 “그 사형 집행을 놓고 사우디 정부한테 아무런 정보도 못 받았다”고 밝혔고 부통령 유숩 깔라는 “유감이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다른 나라가 우리 법을 존중해주기를 바라는 만큼 우리도 다른 나라 법을 존중한다”고 볼품없는 말을 쏟아냈다. 기껏 항의란 게 “사형 집행 시간과 장소를 사전 통보해 온 국제관례를 따르지 않은 사우디 정부 태도는 매우 유감”이라고 밝힌 외무부 대변인 말이 다다. 지난 넉달 동안 외국인 12명을 포함해 14명을 총살한 인도네시아 정부는 찍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러니 자국민 사형보다는 사전 통보라는 절차만 문제 삼을 수밖에는. 이건 외국 정부한테 절차만 지켜주면 인도네시아 국민을 얼마든지 사형시켜도 좋다는 신호를 보낸 꼴이다.

거듭된 사면요청에도 사우디서 죽은 시띠

여기서 대한민국을 본다. 지난해 8월과 올해 1월 중국 정부가 한국인 마약범 4명을 사형시키는 동안 대한민국 정부가 보였던 꼴과 빼닮았다. “정부는 우리 국민이 중국에서 마약범죄로 사형에 처해진 데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2014년 8월 외교부 대변인) “정부는 중국 쪽에 여러 차례 요청하였으나 사형이 집행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올 1월 외교부 대변인) 그랬다. 대한민국 정부는 자국민 4명이 사형당하는 걸 보면서 애썼다고 우기며 그저 안타깝거나 유감스러웠다. 끝. 기껏 따진다는 게 올 1월 중국 정부가 한국인 1명을 사형시키고 엿새 만에 통보했다며 베이징 주재 대사관이 나섰던 게 다다. 지금 인도네시아 정부를 타박하면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까닭이다.

인도네시아도 그랬고 대한민국도 그랬다. 자국민이 외국에서 사형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대통령이란 자들이 본 척도 안 했고 그 흔해빠진 대사 소환으로 외교적 항의 한 번 못했다. 지난 1월 인도네시아 정부한테 자국민이 사형당한 브라질과 네덜란드는 곧장 대통령과 총리가 나서 입에 거품을 물었고 자국 대사를 소환한 뒤 지금껏 항의를 하는 중이다. 지난 4월 자국민이 사형당한 오스트레일리아도 그랬다. 총리 토니 애벗은 “잔인하고 불필요한 그 사형 집행을 개탄한다. 이건 단순한 사건이 될 수 없다”고 밝히며 곧장 대사를 소환해버려 한동안 고달플 두 나라 관계를 예고했다. 다들 그렇게 한다. 그게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국가의 기본이고 외교의 원칙인 까닭이다.

다시 인도네시아를 보자. 사우디 정부가 목을 밴 시띠는 정신질환자로 알려지면서 2000년 초부터 인도네시아 대통령 압둘라흐만 와히드와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가 나서 사면을 요청해 왔던 경우다. 그사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샤리아법에 따라 시띠를 용서(사면)할 수 있는 희생자의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렸고 인도네시아 정부는 변호사 비용을 대고 희생자 가족한테 디앗(핏값) 15만4천달러를 제안하면서 나름껏 애쓰기도 했다. 특히 지난 1월에는 요즘 사형 집행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대통령 조꼬 위도도까지 나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한테 사면을 요청했다. 같은 시간 조꼬는 브라질 대통령을 비롯해 네덜란드 총리와 국왕의 자국민 사형수 사면 요청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조꼬는 인도네시아 안팎에서 들고일어난 사형집행 반대 소리에 귀를 막은 채 결국 방아쇠를 당겼다. 이어 조꼬는 석달 만에 보란 듯이 또 총살형을 집행했다. 한마디로 조꼬는 남의 나라 국민을 총살하면서 우리 국민한테는 자비를 베풀라고 매달렸던 셈이다. 법이니 국제관계 따위를 떠나 조꼬가 보인 이 비논리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사형집행주의자 조꼬도 사형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기 왜 사형제를 폐지해야 옳은지 그 까닭이 또렷이 드러났다. 그래서 2012년 현재 198개국 가운데 사형을 금지한 나라 97개, 사형제는 있지만 한국처럼 10년 이상 집행을 하지 않은 나라 36개, 그리고 특수상황에서만 사형을 적용하는 나라 8개를 보태 모두 141개국이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 대열에 동참했다. 사형이 범죄 예방이나 단죄에 실효성 없는 야만적인 제도라는 데 국제사회가 동의했다는 뜻이다. ‘사형 집행이 종신형보다 살인범죄율을 억지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가설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 이게 1996년 유엔 보고서다. ‘사형제를 없애기 직전인 1975년 10만명당 3.09명이었던 캐나다의 살인범죄율이 사형 폐지 뒤 2003년에는 10만명당 1.73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이게 현실이다.

지난 넉달간 외국인 12명 포함
14명을 총살한 인도네시아 정부
사우디가 인도네시아인 참수하자
찍소리도 못내고 “유감” 표명만
사우디 국왕에 사면요청 헛수고로

머잖아 곧 사형집행 하겠다고
떠들어대는 인도네시아 정부
한데 외국서 사형집행 기다리는
인도네시아 국민 300여명이나
사형제 빌미삼은 복수극인가

브라질 대통령이 그렇게 자비 호소했건만

그동안 인도네시아 정부는 1999~2014년 사이에 27명을 사형시켰다. 그러던 게 지난해 말 조꼬 정부가 들어서면서 올 한해 4개월 동안에만도 이미 14명을 총살하더니 머잖아 세 번째 사형 집행을 하겠다고 떠들어대고 있다. 달리 인도네시아 외무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말레이시아에서 168명,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8명, 중국에서 15명, 싱가포르에서 4명을 비롯해 모두 467명에 이르는 자국민이 외국에서 사형당했다고 한다. 현재 외국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을 기다리는 인도네시아 국민만도 300여명에 이르고 그 가운데 57%가 마약범죄자들이다. 말하자면 사형제를 빌미 삼아 가히 국제적인 복수 활극이 벌어져 왔던 셈이다.

이런 판에 지난 4월 인도네시아 정부의 총살은 사형제에 본질적인 의문을 던져놓았다. 브라질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는 자국인 사형수 호드리구 굴라르치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며 조꼬한테 다시 한 번 자비를 호소했다. 호세프는 이미 지난 1월 조꼬한테 자국민 사형수 사면을 요청했다가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고 대사를 소환한 뒤 외교관계를 중단한 상태였지만 또 나섰다. 그리고 또 거부당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지난 16년 동안 대통령마다 나서서 자국민 시띠가 정신질환자라며 사우디 정부한테 사면을 요청했던 것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마찬가지로 4월에 총살한 자국민 자이날 아비딘도 집에서 나온 마리화나 50㎏의 주인이 누군지 밝힐 수 없는 정신장애인이라며 인권단체가 사형 집행을 강력히 반대해 온 경우였다. 정신적 장애란 건 조꼬가 사형 집행에 앞세워 온 인도네시아 주권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게 자국민이든 외국인이든 마찬가지다.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오스트레일리아 사형수 미우란 수쿠마란과 앤드루 찬의 총살이다. 2005년 발리공항으로 헤로인을 들여오다 잡힌 그 둘의 변호사가 “20년 미만 감형 조건으로 담당 판사가 10만달러 이상을 요구했으나 그 뒤 정부의 사형선고 강요로 흥정이 깨졌다”고 폭로함으로써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법정 비리를 내세워 사형 집행 연기를 강력히 요구했다. 이건 그동안 법 집행기관인 경찰, 검찰, 법원의 비리와 부정부패가 악명을 떨쳐온 인도네시아에서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독재자 수하르또를 깠다가 감옥살이를 했던 언론인이자 변호사이기도 한 아흐마드 따우픽은 “부정부패 온상인 법원에 시민 목숨을 맡길 수 없다. 그게 인도네시아에서 사형제를 폐지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다”라고 했듯이.

마지막에 살아남은 필리핀인 마리 제인 벨로소

그리고 4월 사형 집행 대상자에 올랐다가 마지막 순간 총살을 피한 필리핀 사형수 마리 제인 벨로소도 소름끼치는 경우다. 두바이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해 왔던 마리는 영어가 서툰데도 인도네시아 법정은 마리의 모국어 대신 영어 통역을 붙였다. 그것도 법정 전문 통역자가 아닌 지역 대학생을. 하여 마리는 마약인지 모른 채 지인한테 속아서 가방을 들어다 주었다는 말만 되풀이하다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 마리가 사형당하기 바로 직전 마리를 고용했던 필리핀 마약범죄자가 자수하면서 결국 집행이 연기되었다. 며칠만 늦었더라도 사형제가 무고한 시민을 살해해 온 기록에 또 한 점을 더 얹게 될 뻔했다. 인권 챔피언이라고 떠들어대는 미국에서만도 1973년부터 122명 사형수가 무죄로 석방되었고, 2014년엔 사형수 25명 가운데 1명꼴로 무죄일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발표가 나왔다. 그동안 사형제가 얼마나 많은 무고한 시민을 죽였을까?

결론은 “우리가 사형제를 지닌 탓에 외국 사형대에 선 우리 시민을 방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고 했던 인도네시아 전 외무장관 마르띠 나딸레가와 말에 담겼다. 이 단순한 말을 이해 못할 수도 있는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와 정치인들한테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사형제를 없애야만 나라 밖에서도 제 국민을 온전히 보호할 수 있다”는 뜻이다. 범죄자도 국민이다. 독립국가의 첫 번째 가치는 국민 보호다. 이게 외교의 첫발이기도 하다. 국제전략이니 국제관계 같은 폼 나는 것들만 외교로 여겨온 청와대와 외교부는 보라. 자국민 사형수 하나를 놓고 왜 저 많은 나라 대통령과 총리들이 달려드는지를! 왜 그이들이 달려들 수 있는지를!

(필자의 요청에 따라 인도네시아어 표기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 정문태 1990년부터 타이를 베이스 삼아 일해온 국제분쟁 전문기자. 23년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뛰며 압둘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 최고위급 정치인 50여명을 인터뷰했다. 저서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2004년), <현장은 역사다>(2010년)가 있다. 격주로 국제뉴스의 이면을 한겨레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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