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러시아 ‘리셋’ 전략 실패는 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9년 2월7일, 조 바이든 부통령은 제45차 뮌헨 안보콘퍼런스에 참석해 “재설정(reset·리셋) 버튼을 눌러, 우리가 러시아와 할 수 있고 또 함께 일해야만 하는 많은 영역들을 다시 논의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2008년 8월 러시아-조지아(그루지야) 전쟁으로 악화일로를 걷던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회복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후 ‘리셋 버튼’이란 용어는 미국의 전향적인 대러시아 정책의 아이콘이 됐다. 하지만 지난해 초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오바마 대통령의 리셋 정책은 ‘유턴’했고, 이제 미-러 관계를 ‘신냉전’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화됐다. 게다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러시아 근방에서 잇따라 연합훈련을 벌이고 있고, 러시아도 이에 맞서 불시 전투태세 준비훈련을 지시하는 등 긴장 수위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러시아가 공을 들이는 다음달 9일 2차대전 전승기념일 70돌 행사에도 유럽 대부분의 국가 정상들은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또다시 냉랭한 분위기가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의 리셋 전략은 왜 실패한 것일까. 제성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러시아·유라시아팀장의 도움말, 미국의 저명한 러시아 전문가인 스티븐 코언 뉴욕대 교수가 지난 14일 <네이션>에 기고한 글 등을 통해 들여다봤다.
미·나토, 러 근방서 잇단 연합훈련
러, 불시 전투태세 준비훈련 지시
양쪽 국민들, 상대국 호감도 최악 직접 계기는 작년 우크라이나 사태
제성훈 대외정책연 팀장, 푸틴 변심
‘유럽과 엠디 협상 실패·나토 동진’탓 “탈냉전 이후 벌어진 최대의 사변이다. 1940년대 말 베를린 봉쇄, 1956년 헝가리 사태,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와 맞먹는 것이다. 이 사건의 여파는 적어도 20년은 갈 것이며, 앞으로 상당 기간 미-러 관계를 규정할 것이다.” 러시아 문제에 조예가 깊은 한국 정부 고위당국자는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미-러 관계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렸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국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한국 입장에선 체감도가 떨어지지만, 세계사적으로 보면 결코 파장의 폭과 깊이가 간단치 않은 사건임을 강조한 것이다. 코언 교수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지금의 미-러 관계가 냉전 시기보다 더 위험하다고 진단한다. 그는 ‘신냉전’이 ‘구냉전’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이유를 세 가지 정도로 꼽았다. 첫째, 위기의 진앙지가 러시아 국경 근처에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가 자국 안보에 더 예민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구냉전 시기에 미-소가 군사적 충돌을 회피하기 위한 수많은 제도적 장치들을 만들었지만 상대방 국경 근처의 무력충돌에 대해선 이를 예방하기 위한 규칙을 만든 적이 없다. 참고할 만한 기존의 제도적 장치가 없으면 돌발 상황이 벌어졌을 때 통제하기가 어렵다. 둘째, 미국과 러시아 안에서 외교가 설 자리는 없어지고, 군사주의적 사고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양국이 무역, 교육, 과학, 군비통제 등 분야에서 수십년간 공들여온 협조 관계는 단절됐다. 고위급 교류도 사실상 끊어졌다. 대신에, 양국은 다시 재래식 무기 및 핵무기를 공격적으로 배치하기 시작했고, 상대방의 방공 및 해상 방어망의 허점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군비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셋째, 이처럼 위기와 위험이 점증하고 있는데도 미국 의회나 주류 언론, 싱크탱크, 학자들 등 사이에선 현재의 강경한 대러시아 정책에 대한 실질적인 정치적 반대가 없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체제가 권위주의적이라고 하지만, 미국이나 서구 쪽에서 지지하고 있는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체제도 민주주의나 서구적 가치를 구현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도 말이다. 우크라이나 체제에 대한 비판은 실종됐고, 오히려 정치·재정·군사적인 열렬한 지지만이 난무하고 있는 미국의 현실은 위험하다. 브레이크가 없다 보면 일방적인 정책 추진이 당연시되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쪽에선 미-러 갈등의 원인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2012년 5월 세번째 집권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푸틴 대통령의 권위주의적인 성향과 강경한 대외 노선이 지금의 사태를 불렀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는 이런 ‘미국적 관점’을 날것으로 보여준다. 미국의 ‘리셋 전략’은 푸틴 이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러시아 대통령이던 시절(2008~2012)에 시행됐고 성과도 있었지만 ‘러시아 국민의 개혁 요구를 묵살하는’ 푸틴이 대통령 자리로 돌아오면서 오바마가 러시아와 협력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성훈 팀장은 이런 시각에 반론을 편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엔 그가 실질적인 지도자인가, 아니면 총리로 재직하던 푸틴이 배후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가, 혹은 양두체제인가라는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푸틴이 총리에서 대통령으로 다시 복귀해 건재를 과시하고, 아울러 러시아 대외정책 책임자들이 교체되지 않았던 점에 비춰 보면 메드베데프 대통령 시절에도 대외정책은 ‘푸틴 총리’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게 정설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메드베데프 대통령 시절에 러시아가 미국과 신전략무기감축협정을 체결하고 나토와도 공동 미사일방어(MD·엠디) 체제를 논의하는 등 유화 정책을 폈는데, 이는 푸틴의 작품이라는 얘기다. 이런 분석이 맞다면 ‘유화적이었던’ 푸틴 대통령이 서구에 등을 돌린 결정적인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푸틴의 ‘변심’이 러시아와 유럽의 엠디 협상 실패와 나토의 동진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탈냉전뒤 ‘미국이 승리자’ 인식 등
국제질서 둘러싼 지분·영향력 관련
양국 기대치 간극 커 ‘불씨 늘 잠재’ 미 코언 교수, ‘동등성 원칙’ 입각
넘어가선 안 되는 영역 인지·존중
‘유럽 평화·상호 안보’ 책임 공유를
러시아는 2011년 미국 및 나토 쪽과 엠디 공동시스템 구축을 논의하면서 유럽을 몇개의 권역으로 나누고 이 가운데 한 권역을 러시아가 담당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미국과 나토는 이 제안을 거부하고, 루마니아와 요격미사일 부대를 위한 군사기지 설치 합의, 터키에 조기경보레이더 기지 설치 등 엠디 시스템 구축을 착착 진행했다. 게다가 과거 소비에트연방 국가들이 대거 나토에 가입하면서 이제 벨라루스, 몰도바, 우크라이나만 나토 미가입국으로 남아 있다. 특히, 러시아와 서구 사이의 사실상 마지막 완충지대라고 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도 계속 거론돼 러시아의 신경줄을 자극했다. 러시아 입장에서 이는 서구에 대한 핵·재래식 군사적 억지력이 무력화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미-러 갈등의 원인을 ‘얄타와 몰타 트라우마의 충돌’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둔 1945년 2월 크림반도의 휴양지 얄타에서 열린 ‘얄타 회담’에서 미국과 소련은 유럽에 대한 영향권을 양분했고, 이는 냉전체제의 밑그림이 됐다. 제성훈 팀장은 “미국의 보수세력들 사이에선 얄타 회담에서 소련에 너무 많은 양보를 했기 때문에 냉전체제가 시작됐다는 ‘트라우마’가 있다”고 전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1989년 12월 지중해의 몰타에서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냉전의 종언’과 ‘새로운 협력’을 선언했다. 몰타 회담 이후 소련은 독일의 통일을 인정했으며, 나토에 맞선 군사동맹인 바르샤바조약기구도 해체했다. 소련은 몰타 회담을 통해 냉전 해체에 기여했으며, 따라서 미국과 협력적 관계를 통해 세계질서를 주도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토 및 엠디의 확장, 2008년 조지아 사태,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등을 통해 미국과 유럽을 향한 러시아의 ‘짝사랑’은 무너졌다.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몰타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다. 국제질서를 둘러싼 지분과 영향력에 대한 미-러 간의 기대치 간극이 이처럼 크다 보니, 갈등의 불씨가 늘 잠재해 있었던 셈이다.
코언 교수도 엇비슷한 지적을 한다. 냉전 종식 협상에서 ‘양국이 모두 승리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던 미국의 지도자들이 실제 냉전이 종식되고 나서는 ‘미국이 승리자’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문제가 촉발됐다는 것이다. 소련이 붕괴하자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은 “신의 은총으로 미국이 냉전에서 이겼다”고 선언했고, 빌 클린턴 행정부의 국무장관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도 “미국은 세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국가”라는 말로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구체화했다.
코언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의 2014년 5월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미국은 세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국가”라는 말이 그대로 반복됐음에 주목한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상대방과의 동등성을 부정하고 우월적 지위를 강조하는 것이 신성한 교리처럼 돼버렸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이 러시아를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과 일본처럼 생각하는 태도, 러시아한테 독자적 영향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승리자적 인식 등이 워싱턴을 지배하고 있다. 나토의 확장 같은 정책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코언 교수는 비판했다.
코언 교수는 지금이라도 미국과 러시아가 국제 문제에서 똑같이 정당한 국익을 가진 상호 동등한 대국이라는 ‘동등성’의 원칙에 입각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제시하는 동등성의 원칙은 냉전 시대의 경험에서 길어 올린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미-러가 서로 넘어서는 안 되는 영역, 즉 ‘레드 라인’을 인지하고 존중해야 한다. 둘째, 어느 쪽도 상호 선전전은 인정하더라도 상대방의 내정에 과잉 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 셋째로, 제3세계에서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경쟁하더라도 유럽의 평화와 상호 안보에 대한 책임은 공유해야 한다.
코언 교수의 고언에도 불구하고 미-러 관계가 단기간에 회복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지난 2월 갤럽이 미국 성인 남녀 83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러시아를 최대 적국으로 꼽은 미국인이 전체의 18%로 1위를 차지했다. 이른바 ‘불량국가’로 간주돼온 북한(16%)이나 이란(15%)보다 높은 수치다.
러시아에 대한 미국민들의 호감도도 냉전 이후 최악의 상태로 추락했다. 냉전 직후인 1991년에는 러시아에 대한 우호적 여론이 57%, 비우호적 여론이 33%였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우호적 여론이 24%, 비우호적 여론이 70%로 나타났다. 이런 여론에 비춰 보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공화 후보 모두 대러 강경정책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다시 러시아를 자극할 것이다.
러시아 쪽 사정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대표적 여론조사기관인 레바다 센터가 지난 1일 공개한 결과를 보면, ‘오는 5일에 대선이 실시되면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80%가 푸틴을 꼽았다. 상당수 러시아 국민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강경 대응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여론 지형에서 푸틴 대통령이 현재의 대외정책을 바꿀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러 관계는 한-러 관계, 북-러 관계, 미-중 관계, 중-러 관계, 러-일 관계 등에도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한국 정부는 러시아의 전승절 행사를 놓고 러시아의 초청과 미국의 만류 사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할지를 놓고 머리를 싸매야 했다.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서도 러시아는 한국 쪽 입장에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미-러 관계를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러, 불시 전투태세 준비훈련 지시
양쪽 국민들, 상대국 호감도 최악 직접 계기는 작년 우크라이나 사태
제성훈 대외정책연 팀장, 푸틴 변심
‘유럽과 엠디 협상 실패·나토 동진’탓 “탈냉전 이후 벌어진 최대의 사변이다. 1940년대 말 베를린 봉쇄, 1956년 헝가리 사태,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와 맞먹는 것이다. 이 사건의 여파는 적어도 20년은 갈 것이며, 앞으로 상당 기간 미-러 관계를 규정할 것이다.” 러시아 문제에 조예가 깊은 한국 정부 고위당국자는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미-러 관계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렸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국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한국 입장에선 체감도가 떨어지지만, 세계사적으로 보면 결코 파장의 폭과 깊이가 간단치 않은 사건임을 강조한 것이다. 코언 교수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지금의 미-러 관계가 냉전 시기보다 더 위험하다고 진단한다. 그는 ‘신냉전’이 ‘구냉전’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이유를 세 가지 정도로 꼽았다. 첫째, 위기의 진앙지가 러시아 국경 근처에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가 자국 안보에 더 예민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구냉전 시기에 미-소가 군사적 충돌을 회피하기 위한 수많은 제도적 장치들을 만들었지만 상대방 국경 근처의 무력충돌에 대해선 이를 예방하기 위한 규칙을 만든 적이 없다. 참고할 만한 기존의 제도적 장치가 없으면 돌발 상황이 벌어졌을 때 통제하기가 어렵다. 둘째, 미국과 러시아 안에서 외교가 설 자리는 없어지고, 군사주의적 사고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양국이 무역, 교육, 과학, 군비통제 등 분야에서 수십년간 공들여온 협조 관계는 단절됐다. 고위급 교류도 사실상 끊어졌다. 대신에, 양국은 다시 재래식 무기 및 핵무기를 공격적으로 배치하기 시작했고, 상대방의 방공 및 해상 방어망의 허점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군비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셋째, 이처럼 위기와 위험이 점증하고 있는데도 미국 의회나 주류 언론, 싱크탱크, 학자들 등 사이에선 현재의 강경한 대러시아 정책에 대한 실질적인 정치적 반대가 없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체제가 권위주의적이라고 하지만, 미국이나 서구 쪽에서 지지하고 있는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체제도 민주주의나 서구적 가치를 구현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도 말이다. 우크라이나 체제에 대한 비판은 실종됐고, 오히려 정치·재정·군사적인 열렬한 지지만이 난무하고 있는 미국의 현실은 위험하다. 브레이크가 없다 보면 일방적인 정책 추진이 당연시되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쪽에선 미-러 갈등의 원인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2012년 5월 세번째 집권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푸틴 대통령의 권위주의적인 성향과 강경한 대외 노선이 지금의 사태를 불렀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는 이런 ‘미국적 관점’을 날것으로 보여준다. 미국의 ‘리셋 전략’은 푸틴 이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러시아 대통령이던 시절(2008~2012)에 시행됐고 성과도 있었지만 ‘러시아 국민의 개혁 요구를 묵살하는’ 푸틴이 대통령 자리로 돌아오면서 오바마가 러시아와 협력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성훈 팀장은 이런 시각에 반론을 편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엔 그가 실질적인 지도자인가, 아니면 총리로 재직하던 푸틴이 배후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가, 혹은 양두체제인가라는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푸틴이 총리에서 대통령으로 다시 복귀해 건재를 과시하고, 아울러 러시아 대외정책 책임자들이 교체되지 않았던 점에 비춰 보면 메드베데프 대통령 시절에도 대외정책은 ‘푸틴 총리’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게 정설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메드베데프 대통령 시절에 러시아가 미국과 신전략무기감축협정을 체결하고 나토와도 공동 미사일방어(MD·엠디) 체제를 논의하는 등 유화 정책을 폈는데, 이는 푸틴의 작품이라는 얘기다. 이런 분석이 맞다면 ‘유화적이었던’ 푸틴 대통령이 서구에 등을 돌린 결정적인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푸틴의 ‘변심’이 러시아와 유럽의 엠디 협상 실패와 나토의 동진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탈냉전뒤 ‘미국이 승리자’ 인식 등
국제질서 둘러싼 지분·영향력 관련
양국 기대치 간극 커 ‘불씨 늘 잠재’ 미 코언 교수, ‘동등성 원칙’ 입각
넘어가선 안 되는 영역 인지·존중
‘유럽 평화·상호 안보’ 책임 공유를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직후인 지난해 3월31일, 크림반도 주도인 심페로폴 인근의 그바르데이스코예에 도착한 러시아군 병사가 T-72B 탱크 앞에서 뛰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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