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한겨레 자료 사진
터키의 16살 고등학생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모욕한 혐의로 교실에서 체포당해 비난 여론이 거세다.
터키 언론이 ‘MEA’(엠이에이)라는 영문 이니셜로 표기하는 이 고교생은 지난 24일 터키 중부 콘야 시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에르도안 대통령을 ‘불법 왕궁의 도둑 주인’ 등이라고 묘사했다가 자신의 고등학교에서 체포됐다고 <알자지라> 방송 등 외신들과 현지언론이 25일 보도했다. 그는 당시 행사에서 “모든 곳에 뇌물이 있고, 모든 곳이 부패했다”고 외치며, 에르도안 대통령과 집권 정의개발당(AKP)을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행사는 1930년 이슬람주의자에게 살해당한 젊은 세속주의 교사의 추모식이었다. 터키의 형법은 대통령에 대한 모욕을 금지하고 있는데, 유죄 판결을 받으면 이 고교생은 최대 징역 4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터키의 야당은 고교생의 체포와 구금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의 리자 투르멘 의원은 트위터에 “수업중인 학생을 체포하고 구금하는 정권은 파시스트”라며 “유엔아동권리 선언에도 어긋나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같은 당의 아틸라 카트 의원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며 어린 학생을 체포한 정부를 비난했다.
이에 대해 아흐메트 다부토울루 총리는 “누구든지 대통령직을 존중해야 한다”며, 체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터키 정부는 지난해 전례없는 시위대의 물결에 직면했다. 시위대는 당시 총리였던 에르도안의 권위주의와 보수적인 정책에 저항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당시 장관들과 에르도안 총리가 거론되는 초특급 부패 스캔들이 터졌다. 수사 도중 많은 증거가 밝혀졌지만 11년간 터키를 통치해온 집권당은 “반대세력이 반정부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한 수사”라고 주장하며 위기를 빠져나왔다.
올해 8월 첫 직선 대통령에 당선된 에르도안은 부패 스캔들을 꾸며냈다며 미국에 망명 중인 이슬람 지도자 펫훌라흐 귈렌을 비난했다. 또 부패 수사에 참여했던 검사와 법관들을 좌천시키는 등 사법부를 자신의 입맛대로 구성했다. 터키 경찰은 귈렌 세력을 색출한다며 지난 14일 10여개 도시에서 언론인과 티브이 프로듀서 등 27명을 체포하는 등 반대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나섰다. 구속된 이들 중에는 부패 사건 보도와 관련된 언론인들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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