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비행 10년만에 착지 첫 성공
땅에 두번 튕긴 뒤 비탈진 곳 멈춰
햇빛 못받으면 60시간 뒤 수명 끝
유럽우주국, 장치 이용 탈출 모색
작동 상태는 정상…이번주말 고비
땅에 두번 튕긴 뒤 비탈진 곳 멈춰
햇빛 못받으면 60시간 뒤 수명 끝
유럽우주국, 장치 이용 탈출 모색
작동 상태는 정상…이번주말 고비
인류 역사상 최초로 혜성 착륙에 성공한 탐사로봇이 뜻밖의 난관을 넘어설 수 있을까. 세계인의 눈이 다시 한번 지구에서 4억5000만㎞나 떨어진 혜성에 쏠리고 있다.
지난 2004년 3월 발사된 우주선 로제타호에 실려 우주를 비행한 지 10년 만에 12일 오후(한국시각 13일 새벽) 혜성 ‘67P/C-G’에 착륙한 탐사 로봇 파일리가 애초 목표지점이 아닌 그늘진 구석에 착륙하면서 유일한 동력원인 태양광 배터리의 충전이 불가능한 상태에 놓였다. 최악의 경우 파일리는 계획된 탐사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기약 없는 동면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독일 다름슈타트에 있는 유럽우주국(ESA)의 혜성 탐사 프로젝트 선임과학자인 장 피에르 비브렝 박사는 13일 “탐사로봇 파일리가 착륙하는 과정에서 두번 튕겨져 나갔다가 의도하지 않은 지점에 착륙했다”며 “로봇이 벼랑 아래 영구 응달 지역에 있다”고 밝혔다고 <에이피>(AP) 등 외신들이 전했다. 현재 파일리는 ‘아질키아’로 명명된 착륙 목표지점에서 1㎞ 가량 벗어난 분화구의 가장자리 비탈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파일리가 착륙한 뒤 전송해온 주변 풍경 사진들로 미뤄볼 때, 동체 하부에 달린 3개의 다리 중 2개만 지면에 닿았고 1개는 허공에 뜬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파일리는 모선 로제타에서 분리된 이후 약 60시간 동안만 배터리 재충전 없이 활동할 수 있다. 현 상태로는 작동할 수 있는 시한이 아무리 길어야 15일까지라는 뜻이다. 유럽우주국의 탐사로봇 제어 책임자인 파올로 페리 박사는 “배터리 지속 시간은 파일리 로봇의 활동에 달려 있다. 우리가 파일리로 더 많은 탐사 작업을 할수록 더 많은 동력을 소비할 테고, 활용가능한 시간은 그만큼 더 짧아진다”고 말했다.
파일리가 태양전지판으로 배터리를 완전히 재충전하기 위해선 6~7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파일리의 착륙 지점에선 혜성의 하루(자전주기) 12시간 중 1시간30분 정도만 햇빛이 드는 것으로 추정된다. 파일리가 애초 목표지점에서 벗어난 응달 지역에 자리를 잡은 것은 첫 착륙에 실패하면서 상공으로 튕겨오른 뒤 다시 착륙에 성공하기까지 2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그 사이 혜성이 자전을 하면서 착륙 각도가 틀어지고 착륙 지점은 멀어져버렸다.
파일리가 재충전하지 못한 경우 이번 주말을 고비로 임무 수행에 필요한 동력을 얻는 데 큰 차질을 빚게 된다. 토양 채취와 분석을 비롯한 각종 탐사작업은 물론, 사진 촬영과 전송, 지구와의 교신이 원활히 유지될 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이번 탐사의 핵심 임무 중 하나는 혜성의 토양 성분을 분석해 태양계 생성 초기의 비밀을 풀 첫 관문을 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혜성 표면과 토양의 물리적 성질을 파악해야 할 뿐 아니라 지표층 23㎝ 아래까지의 토양 샘플을 채취해 분자 구조를 비교·분석해야 한다. 유럽우주국은 현재 파일리가 혜성 지표면의 토양 분석은 훌륭히 수행하고 있으며 데이터를 전송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표층 아래 샘플을 채취하기 위한 드릴링이다. 혜성 ‘67P/C-G’는 최대 직경 4㎞에 불과한 꼬마 혜성이어서 중력이 지구의 10만분의 1에 불과하다. 무게 100㎏에 불과한 파일리 로봇을 땅에 붙들어주는 힘도 그만큼 약하다는 이야기다. 동체를 혜성 표면에 고정해줄 작살을 박지 못한 파일리가 혜성의 얼어붙은 땅을 드릴로 뚫을 경우 불안정한 자세의 동체가 작용-반작용 법칙에 따라 넘어져 뒹굴거나 자칫 장비가 파손될 수 있다. 비브렝 박사는 “우리는 (토양 분석을 위한) 드릴링을 하고 싶지만, 드릴링을 하고 나서 모든 탐사가 끝나버리는 사태는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로제타 프로젝트가 최종 열매를 맺기 위해선 파일리가 완전히 방전되기 전에 햇빛이 드는 지역으로 이동시키거나 태양전지판이 태양을 향하는 각도로 본체를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탐사로봇 파일리는 바퀴가 달린 ‘로버’형 탐사장비와 달리 자체 구동능력이 없다.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파일리는 연착륙용 역분사 추진 장치, 표면 고박용 작살, 샘플 채취용 드릴 등 동작이 가능한 몇가지 장비를 갖추고 있다. 지금으로선 파일리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유럽우주국 관제센터는 파일리에 장착돼 위 아래로 움직일 수 있는 소형 망치인 ‘무푸스’라는 장치를 작동시켜 파일리의 위치를 조정해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동체의 각도가 태양 쪽으로 조금만 틀어져도 충전시간을 훨씬 늘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비브랭은 “우리는 시간과 경쟁하고 있다”면서도 “실패 쪽에 방점을 찍지 말아달라, 이미 우리는 대단히 멋진 곳에 와 있다”고 강조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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