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의 낡은 원자로를 폐기하고 정화하는 비용이 앞으로 25년 동안만 계산해도 1000억달러(109조6000억원)가 넘을 것이라고 국제에너지기구(IEA)가 경고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최근 작성한 연례보고서에서 2040년까지 폐로해야 하는 세계의 노후 원자로가 200여기로, 폐로 비용이 1000억달러가 넘는다고 밝혔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12일 전했다. 지난 40년간 폐쇄된 원자로는 10기뿐이었는데, 점점 더 많은 원자로가 폐로 시점을 맞으면서 세계 각국이 치러야 할 폐로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게 된 셈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그동안 원자력발전의 경제성만 강조해온 각국 정부가 위험비용은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원자로 폐로에 대비해 비용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40년까지 각국이 감당해야 할 폐로 비용은 나라·지역별로는 유럽연합(EU)이 510억달러로 가장 많았고, 미국이 150억달러, 일본이 100억달러, 한국과 인도가 각각 10억달러로 예상됐다. 국제에너지기구는 각국 정부의 원전 폐쇄 경험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해체 비용 추산에는 ‘상당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원전 지지론자와 많은 정부들은 핵에너지가 이산화탄소 배출과 에너지 수입을 줄일 수 있다고 홍보해왔다. 영국과 중국 등은 현재도 빠르게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확대해 가고 있다. 하지만 관리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데다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안전성 우려까지 커지면서 원전 반대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원자로의 폐로 등에서 나오는 고준위 방사성 핵폐기물 처리다. 최초의 핵발전소 가동 이후 6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 어느 나라도 고준위 방사성 핵폐기물을 영구처분하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UCL)의 폴 도프먼 교수는 “1000억달러는 원자로 해체 비용만 계산한 것일 뿐 영구적인 핵폐기물 처리 비용은 포함하지 않은 것”이라며 실제로는 원전 관리 비용이 천문학적이라고 지적했다. 도프먼 교수는 이를 모두 포함할 경우 영국에서만 원자로 폐로에 850억파운드(약 148조25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2040년께가 되면 전세계 원전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폐연료봉)의 양이 지금의 갑절로 늘어 70만t 이상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에너지기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파티흐 비롤은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 등으로 세계 원유 매장량이 앞으로 약 10년간은 충분하겠지만, 2020년 이후부터 원자력 에너지의 필요성이 다시 대두될 것”이라며 “노후원전 폐쇄 비용은 긴급하게 고려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원전 관리·폐쇄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원전 찬성론자들은 반론을 펴고 있다. 맨체스터대학 돌턴 원자력연구소의 앤드루 셰리 소장은 “앞으로 원전 폐쇄 비용과 방사성 폐기물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연구에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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