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베리아 수도 몬로비아에서 지난 9월30일 에볼라 방역활동 요원이 주민들 사이에 방역제를 뿌리고 있다. 라이베리아 등 서부 아프리카에서 에볼라로 45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몬로비아/AP 연합뉴스
[정의길의 세계만사] 더욱 정교해진 음모론의 시대
이슬람 국가는 미국 무기업체를 위해 만들어졌다?
에볼라는 거대 제약회사가 돈벌이를 위해 만든 병?
국제 사회에 퍼지는 음모론의 정체는 어디서 왔나
이슬람 국가는 미국 무기업체를 위해 만들어졌다?
에볼라는 거대 제약회사가 돈벌이를 위해 만든 병?
국제 사회에 퍼지는 음모론의 정체는 어디서 왔나
# 1. “이슬람국가(IS)는 미국의 자금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이슬람국가는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이 합작해서 만들었다. 이는 중동에 불안을 퍼뜨려서, 이스라엘의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삼아서 중동을 평정하려는 의도이다. 이는 서방에게도 도움이 된다.”
# 2. “에볼라는 미군이 개발한 생물무기이다.” “미국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가 에볼라 바이러스를 개발했고, 이는 거대 제약회사과 함께 만든 백신으로 돈을 벌려는 의도였다.” “전세계의 소수 엘리트들이 추구하는 ‘신세계 질서’를 만들려고, 방역과 여행 제한, 더 나아가 계엄령을 선포하기 위해 에볼라를 퍼뜨리고 있다.” “이슬람국가에는 에볼라 감염 무장병력들이 있다. 이들 자체가 생물무기이다.”
국제사회에서 다시 ‘음모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대중의 공포를 부르는 이슬람국가와 에볼라를 중심으로 퍼지는 양상입니다. 심지어, 유가 인하까지 그 파장이 퍼지며 음모론이 완성되고 있습니다. 그럼 요즘 국제사회에서 퍼지는 음모론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한가지 확실히 말해야겠습니다. 제가 이 음모론에 동의하지 않는 데 이를 소개하는 이유입니다. 음모론은 대중의 공포와 불안에서 피어납니다. 어찌보면, 일면의 진실이 있습니다. 바로 힘 없는 대중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공포, 그리고 분노입니다. 요즘 확산되는 음모론도 이를 반영합니다. 음모론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과 걱정이 그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이런 음모론의 전개를 통해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는 동시에 음모론에 담긴 사태의 본질을 보자는 것입니다.
■ 이슬람국가 음모론
요즘 국제사회에 퍼지고 있는 음모론의 출발지는 이슬람국가(IS)입니다. 6월9일부터 이라크의 알카에다 연계 세력이던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L)라는 이슬람주의 무장집단이 갑자기 군사 공세를 벌이기 시작해 시리아와 이라크의 접경지대를 장악하고, 바그다드까지 진격했습니다. 이들은 6월29일 자신들의 영역을 이슬람국가(IS)라는 ‘칼리프 국가’로 선포했습니다. 한달도 안 되는 시기에 갑자기 하나의 국가, 그것도 현재의 ‘국민 국가’(nation state) 체제를 부정하는 국가를 선포한 것입니다.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모든 무슬림들의 공동체라는 칼리프 국가의 복원은 이슬람주의 세력의 꿈이었습니다.
워낙 황당한 사태 전개였습니다. 하지만 이들 세력이 이렇게 이슬람국가의 선포까지 오기에는 나름대로 역사적 배경과 최근 상황이 있습니다. 제가 쓴 졸고인 연재물 ‘이슬람국가는 어떻게 건설됐냐’를 보면 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클릭 : ‘이슬람국가는 어떻게 건설됐냐’
어쨌든 이슬람국가의 갑작스런 부상은 곧바로 음모론을 배태했습니다. 한겨레 국제부장인 박민희 기자가 쓴 기사 ‘이슬람국가(IS), 힐러리가 만들었다? 중동서 음모론 확산’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클릭 : ‘이슬람국가(IS), 힐러리가 만들었다? 중동서 음모론 확산’
미국이 이슬람국가를 만들었다는 음모론은 처음에 이집트에서 퍼졌습니다. 이집트에서 기원한 소셜미디어, 더 나아가 언론들은 미국이 중동 정세를 불안하게 해서 개입의 명분을 만들려고 그랬다는 논지를 폈습니다. 힐러리의 자서전까지 들먹이며,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힐러리 자서전에 그런 내용은 없습니다.
어쨌든 이런 음모론은 더 정교해집니다. 이집트의 나빌 나엠이라는 알카에다 대원이자, 이슬람주의 무장단체인 ‘이집트 지하드’의 창설 대원은 이슬람국가가 요르단에서 2천만~3천만달러의 미국 자금 지원으로 훈련받아서 탄생된 집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더 나아가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영국의 MI6, 이스라엘의 모사드라는 3개국 정보기관의 합작품이라는 주장으로 발전합니다. 이는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전세계적인 감청 실태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이 했다는 주장으로 설득력을 갖습니다.
바레인의 <걸프 데일리 뉴스>라는 언론은 스노든이 이런 주장을 했다고 보도했으나, 사실 그가 정말로 이런 주장을 했는지 전혀 검증이 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어쨌든 스노든은 3개국의 정보기관이 세계의 모든 극단주의자들을 한 곳으로 끌어모으는 테러단체를 만들었으며, 이는 ‘호넷 네스트’(말벌집) 전략이라고 지칭된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벌집’ 공작은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스노든이 폭로했다는 문서는 “유대인 국가 보호를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그 국경 인근에 적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합니다. 이 문서는 또 이슬람국가의 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모사드의 손에 의해 이슬람 신학이나 연설 기법뿐만 아니라 일년 동안 강도 높은 군사훈련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문서 바로가기
이 음모론의 요체는 이슬람국가라는 괴물을 만들어냄으로써,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자위권, 즉 군사적 공격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이슬람국가를 핑계로 군사력을 사용해 주변의 적들을 간단히 제압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왜 이런 주장이 나올까요? 현재 벌어지는 이슬람국가와의 전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슬람국가를 격퇴하겠다고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가 떠들고 있지만, 실제로 하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물론 미국 주도로 공습 작전이 벌어지고 있으나, 이슬람국가가 격퇴되기는커녕 더 기승을 부립니다. 이슬람국가를 격퇴하려면 지상군이 나서야 합니다. 근데 그런 지상군을 보낼 주체가 없습니다. 미국은 애초부터 지상군 파견에 선을 그었고, 주변 중동 국가들도 그럴 능력과 의지가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이유는 있고 이를 설명하려면 얘기가 길어집니다. 어쨌든 사태가 위중한데도 일개 테러리스트 단체라는 이슬람국가를 퇴치 못하는 사태는 결국 이런 이스라엘의 개입론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이슬람국가가 더 커지면 결국 이스라엘이 나서야 되는 게 아니야”라고 저도 사실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이밖에 이슬람국가에 관한 음모론은 더 있습니다. 이슬람국가가 사실은 미국의 무기업체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미국의 재정적자 감축으로 국방비가 삭감되자, 미국 내 무기업체들과 관련 세력들이 전쟁을 만들어 국방비 삭감 추세를 되돌려는 음모라는 것입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미국 내 매파들이 현재 미군의 지상군 파견을 노래 부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슬람국가에 의해 인질로 잡혀 처형 당한 사람들이 사실은 군수업체가 이 전쟁을 조장하려고 위장한 인도적 지원단체의 단원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슬람국가에 의해 처형된 영국의 인도적 지원단체의 회원 앨런 헤닝은 사실 자신도 모르는 이슬람국가 연계 지원단체에 가입된 사람이라는 주장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황색 언론 <데일리 메일>이 이런 보도를 했습니다.기사 바로가기
■ 에볼라 음모론
이슬람국가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여름부터 서부 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창궐해 급속히 퍼졌습니다. 서방 국가에서도 전염된 사람들이 나오자 에볼라는 전세계적인 공포가 됐습니다.
지난 9월 에볼라가 퍼지자마자, 해당 국가 중의 하나인 라이베리아의 신문 <데일리 업저버>는 그 바이러스는 미군이 지구의 인구를 줄이기 위해 만든 생물무기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보고듣던 것 아닙니까? 치명적인 바이러스 전파는 할리우드 영화의 고전적인 음모론의 주제입니다. 정부나 기업이 바이러스를 실험하거나 무기를 만들었다가, 실수로 혹은 고의적으로 퍼트려 인류가 재앙에 빠진다는 내용입니다.
이란의 국영 영어 뉴스 웹사이트이자 위성 언론인 <프레스티브이>는 에드워드 스노든처럼 미국의 국가안보국과 중앙정보국을 위해 일했다는 스티브 켈리라는 사람의 인터뷰를 보도했습니다. 켈리는 미국이 이슬람국가를 만들었으며, 군사비 증액을 위한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는 ‘수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더 나아가 에볼라는 미국이 생물무기로 만들었으며 이를 이슬람국가의 ‘공포 전술’로 연계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기사 바로가기 수류탄같은 ‘에볼라 폭탄’이라는 것도 가능하며, 실제로 이슬람국가는 이런 에볼라 폭탄을 만들 계획도 있고, 능력도 있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이는 이슬람국가 대원의 랩톱 컴퓨터에서 나온 문서에서 증명이 된다며 <인디펜던트>와 <포린폴리시> 같은 권위 있는 언론의 보도가 근거로 제시됐습니다. 하지만 이 보도는 사실 테러단체의 생화학무기에 관한 일반적인 관심을 보도한 것이며, 이슬람국가도 그럴 개연성이 있다는 하나마나한 보도였습니다.기사 바로가기
이슬람국가가 에볼라에 감염시킨 대원을 자살 테러 요원으로 육성시킨다는 보도도 이스라엘에서 나왔습니다.기사 바로가기 또 미국이 이슬람국가를 격퇴하려고 에볼라를 의도적으로 그 지역에 유포한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기사 바로가기대중 사이에서 가장 널리 퍼진 에볼라 음모론은 미국 기관이 이를 만들어 퍼뜨린 뒤 거대 제약회사와 함께 백신을 팔아 이익을 챙긴다는 것입니다. <뉴욕타임스>도 이런 음모론을 비판적으로 보도했습니다.기사 바로가기
■ 유가 인하 음모론
이슬람국가나 에볼라 관련 음모론의 핵심은 미국 등이 골치거리인 중동의 분쟁에서의 적들을 제거하려는 음모라는 것입니다. 10월 들어 갑자기 하락하는 석유값도 여기에 가담합니다. 유가 인하도 따지고 보면, 미국의 골치아픈 적들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라는 것입니다.
사실 유가 인하와 관련된 이런 주장들을 음모론으로 치부하기는 힘듭니다. 결과론이기는 하나, 역사적 경험이 있습니다. 어쨌든 최근 유가 하락은 사우디아라비아가 떨어지는 기름값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산유량을 증가하면서 가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시장 지분을 지키기 위한 것인데, 더 나아가 러시아·이란·베네수엘라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의도라는 것입니다. 사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80년대 중반 떨어지는 유가에도 불구하고 산유량을 극적으로 증가시켜, 소련 붕괴의 한 원인이 됐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저도 이런 내용의 기사를 썼으니 참고하세요. (한겨레 10월20일자 19면, ‘막 오른 3차 석유대전…사우디의 유가 끌어내기 도박’)기사 바로가기
<뉴욕타임스>의 유명한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펌프 워’라는 칼럼에서 이런 기조로 최근 유가 인하와 그 역사적 배경을 분석했습니다. 기사 바로가기
프리드먼의 칼럼은 사실 과거 유가 인하와 관련해 어느 정도 검증된 주장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음모론이라기보다는 석유와 관련된 국제정치 역학에 가깝죠. 어쨌든 이 주장은 급속히 반향을 일으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합세해 러시아·이란·베네수엘라를 궁지로 몰아넣으려는 음모론으로 번져갑니다.
권위지인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산유량 증산은 최근 셰일에너지 개발을 막으려는 의도로 해석했습니다. 유가가 내려가면, 생산비가 비싼 셰일에너지를 개발할 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이죠. 유가가 장기간 낮게 유지되면 사실 셰일에너지 개발 회사들은 망하게 됩니다. 기사 바로가기
9.11 테러가 발생하자, 각종 음모론이 기승을 부렸고, 사실 9.11 테러는 지금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9.11 테러의 음모를 다룬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루스 체인지>를 본 사람이라면 그런 주장을 잘 공감할 것입니다.영상 바로가기
음모론은 대중들이 이해하기 힘든 현실에서 피어납니다. 음모론의 일면의 진실을 말해줍니다. 음모론이 피어나는 현실의 모순과 대중의 공포라는 진실입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에볼라 양성 반응을 보인 간호사 앰버 빈슨의 집이 있는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아파트에서 한 주민이 방역·청소팀의 물품수거통으로 쓰레기를 던지고 있다. 댈러스/AP 연합뉴스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한 미국 주도의 국제연합전선에 동참한 20여개국의 국방 당국 수뇌부가 14일 미국 워싱턴 외곽의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열린 합동회의에 참석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앤드루스 공군기지/AFP 연합뉴스
국제부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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