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노담화 흔들기 등 일본 시도에 경고
한편선 한-일 관계 악화 부담스러워하는 기류도
한편선 한-일 관계 악화 부담스러워하는 기류도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전 유엔 특별보고관의 보고서 내용에 대한 일본 정부의 철회 요청으로 한-일 관계는 다시 뒷걸음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16일 정례브리핑에서 이 문제와 관련,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아무리 과거의 잘못을 축소·은폐하려는 시도를 하더라도 역사의 진실은 가릴 수 없으며,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국제사회의 준엄한 비판만 초래할 뿐”이라고 경고도 했다.
정부는 고노담화 흔들기 등 일본의 이런 시도가 실제로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1990년대 초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처음 국제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과거 제국주의 일본의 잘못이라는 국제적 인식이 정립됐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위안부 동원과 모집 및 이송의 강제성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것은 당시 연합군 문서나 극동국제문제재판소 자료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도 수차례 확인한 바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일본 쪽의 이런 동향이 최근 물밑에서 조심스럽게 탐색되던 한-일 관계 개선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점이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청와대에서 모리 요시로 전 일본 총리를 만나 아베 신조 총리의 친서를 전달받았다. 친서엔 “오는 가을에 개최될 국제회의를 계기로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을 겨냥한 제안이었다. 그 즈음 양국 간 중동·북미·문화외교 국장급 협의가 잇따라 열렸고, 10월 들어선 차관급 전략대화가 열리는 등 양국 외교당국간 접촉도 활발했다.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첫 한-일 정상회담 연내 성사 가능성을 점치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번 일로 일본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태도 변화가 전혀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한국 정부로서는 한-일 관계 개선 조처를 적극적으로 취하기가 어려운 처지가 됐다. 노광일 대변인은 한-일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 사회의 상처를 치유하는 진정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으로써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태도에선 추가적인 한-일 관계 악화에 대해서도 부담스러워하는 기류가 느껴진다. 한-일 관계 악화가 장기간 지속될 경우 외교·안보뿐 아니라 사회·경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모두 손해라는 인식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일과 관련해 따로 일본에 공식 항의하거나 주한 일본대사관 인사를 부르지 않았다. 지난 4월부터 매달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한-일 국장급 협의도 이어갈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외교적으로 항의를 하기 위해서라도 한-일 간 채널은 유지하는 게 필요한 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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