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판 ‘테러와의 전쟁’
미국인 기자 참수한 ‘IS 파괴’ 의지
이라크 이어 시리아로 공습 확대
지상군 없이 현지세력 지원 ‘대리전’
‘공습만으론 전쟁 성공 불가’ 지적도
장기전 불가피…오바마 임기 넘길듯
미국인 기자 참수한 ‘IS 파괴’ 의지
이라크 이어 시리아로 공습 확대
지상군 없이 현지세력 지원 ‘대리전’
‘공습만으론 전쟁 성공 불가’ 지적도
장기전 불가피…오바마 임기 넘길듯
10일 밤 9시(한국시각 11일 오전 10시) 백악관 스테이트 플로어에 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얼굴은 비장했다. 그는 쏘아보는 듯한 눈빛으로 “미국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들은 어디에 있든 끝까지 추적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14분 동안의 대국민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슬람국가’(IS)를 파괴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보였다.
<시엔엔>(CNN) 방송의 정치분석가 글로리아 보거는 “그에게는 매우 힘든 연설이었다”고 평했다. 오바마가 이라크전 종전을 내걸고 2008년 대통령에 첫 당선 됐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2002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시절엔 이라크전 반대집회에 참석해 연설했고, 2004년 연방 상원의원이 된 뒤에도 이라크전을 “멍청한 전쟁”이라고 말한 바 있다. 2011년에는 이라크의 미군을 모두 철수시켰다. 그랬던 그가 이젠 이슬람국가를 상대로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전쟁 확대’를 선포한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9·11 테러 13주기 전날 대통령의 발언은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피하려고 노력했던 시리아 내전으로 미국을 밀어넣고, 철수한 지 채 3년도 안 돼 상당수의 미군을 이라크에 되돌려보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라크전 종전을 내걸고 당선된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이라크와 시리아 전쟁에 뛰어들겠다고 밝힌 데는 악화한 국내 여론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슬람국가가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을 장악한 뒤 쿠르드 자치지역까지 위협하자 지난달 8일 미국인을 보호하고 산에 갇힌 이라크 민간인들을 구하기 위해 제한적 공습을 승인했다. 이후 미군은 이라크에서 150여차례 공습을 벌였으나 ‘방어적 차원’이었다.
하지만 시리아 내전을 취재하다 납치된 미국인 기자 2명이 잇따라 참수되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미국에선 이슬람국가를 상대로 한 군사 대응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했다. 그런데도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에서 시리아 공습에 나설 것인지 등을 묻는 질문에 “아직 전략이 없다”고 말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더욱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오바마의 대외정책이 비판의 집중 표적이 됐다. ‘공세적 차원’의 시리아 공습이라는 카드로 비판의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여론의 흐름을 바꿀 필요가 있었던 셈이다.
전선 확대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슬람국가의 근거지가 락까 등 시리아 동북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라크 정부군은 이슬람국가에 대처할 능력이 없음이 입증됐고, 쿠르드족 민병대인 페슈메르가도 모술댐 전투에서 패한 바 있다. 바샤르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시리아 반정부군도 마찬가지다. 이라크와 시리아, 그리고 주변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이슬람국가를 상대할 세력이 없는 것이다. 미국 행정부 관리들은 시리아 공습은 수주일 뒤에 가능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475명의 미군 자문단을 이라크에 추가로 보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라크에 있는 미군만 1600명이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미군 전투병력이 외국 땅에서 전투를 벌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공습만 수행하고, 지상에서는 시리아 반군과 쿠르드족, 이라크 정부군 등을 지원해 ‘대리전’을 치르겠다는 뜻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전략이 “소말리아와 예멘에서 수년 동안 성공적으로 수행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는 “고립된 테러리스트를 상대로 소규모의 산발적인 공습을 한 예멘이나 소말리아와는 다른 양상이 전개될 것”이라며 “(9·11테러 이후) 13년 동안 이런저런 형태로 미국을 전쟁 상태에 놓이게 한 격렬한 전투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지상군 투입 없이 시리아의 ‘온건’ 반군을 무장하고 훈련시켜 이슬람국가에 맞서게 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장기전’은 불가피해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와 같은 암덩어리를 근절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피트 훅스트라 전 하원 정보위원장은 “3년 이상은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잔여 임기는 2년이다.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이라는 전임 조지 부시 대통령의 유산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그는 이제 후임자에게 이라크·시리아 전쟁을 유산으로 넘겨줘야 할 처지가 됐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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