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정교회, 서구 자유주의 적대시
“성소수자는 입도 뻥긋 말라”며 탄압
“성소수자는 입도 뻥긋 말라”며 탄압
11일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 건너편 두마(러시아 하원) 의사당 앞에 수십여명의 동성애 지지자들이 모였다. ‘입맞춤 시위’를 벌이려던 이들은 러시아 정교회 신자, 친정부 청년조직 회원 등 수백여명에게 둘러싸였다.
“어느 (동성애자) 남성을 정교회 신자들이 발길질하자, 경찰이 달려들어 쓰러진 동성애자를 구타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것은 (공격당한) 동성애 시위자 20여명뿐이었다”고 <에이피>(AP)·<로이터>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친정부 시위대는 “러시아는 소돔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동성애 시위대에게 썩은 계란을 던지고 침을 뱉었다.
같은 시각, 의사당에는 전체 450명 하원 의원 가운데 437명이 출석했다. 옐레나 미줄리나 의원이 법안을 설명했다. “다민족적 러시아 인민의 발전·보존을 위한 전통적 남녀 관계는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표결이 시작됐다. 찬성 436표, 기권 1표. 반대표는 없었다. 상원 표결 및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서명 절차가 남아 있지만 “무난한 통과가 예상된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이들이 통과시킨 것은 비전통적 성적 관계를 선전하거나 미성년자에게 교육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게이·레즈비언·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 등이 ‘비전통적 성적 관계’에 포함된다.
법안은 성소수자 행사·모임 정보를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거나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는 평등하다’는 선전·교육 활동을 펼치면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개인은 최고 10만루블(약 350만원)의 벌금, 언론을 비롯한 조직·단체는 최고 100만루블(약 3500만원)의 벌금 및 3개월 휴업 처분을 받게 된다. 공론장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논의를 원천 봉쇄하고, 성소수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각종 집회·시위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 자신의 세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푸틴은 서구 자유주의가 전통윤리를 오염시킨다고 비판해온 러시아 정교회 세력을 적극 포용하며 자유주의를 앞세운 반 푸틴 세력을 견제했다. 이번 법안 통과는 자유주의를 적대하는 정·교 연합세력이 성 소수자를 첫 희생양으로 삼은 결과다.
러시아는 소비에트연방 해체 이후인 1993년 5월 동성애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을 폐지했지만, 러시아 인권운동가 니콜라이 알렉세에브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종청소를 선동하는 이번 법안 채택으로 러시아가 스탈린 시대로 후퇴했다”고 비판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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