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시’ 팀북투 고서 피난작전 보도
금속상자에 넣고 과일 상자로 가려
자동차·카누로 수도 바마코로 옮겨
금속상자에 넣고 과일 상자로 가려
자동차·카누로 수도 바마코로 옮겨
유럽이 중세의 암흑에서 막 벗어나고 있던 15~16세기, 문명의 꽃은 아프리카 서부에서 피어났다. 사하라 사막을 오가는 무역을 경제적 기반으로 삼아 ‘송하이 제국’은 교육·문화의 번성을 북돋았다. 수도 팀북투에는, 많을 땐 8만명이 살았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학자들이 팀북투의 200여개 교육기관에 모여들었다.
후예들은 번영을 지키지 못했다. 옛 제국의 영토에는 오늘날 세계 최대 빈국 가운데 하나인 말리가 있다. 지난해 1월부터는 이슬람 반군과 정부군 사이의 교전이 치열하다. 적어도 37만명이 내전을 피해 삶의 터전을 떠났다.
지난해 3월 이슬람 반군이 팀북투를 점령했을 때, 많은 이들은 문명의 파괴를 우려했다. 팀북투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도시이기도 했다. 알카에다와 연계한 반군은 우상숭배를 금하는 율법에 따른다며, 점령하는 곳마다 유적·유물을 파괴했다.
팀북투에는 중세 이슬람 및 아프리카의 언어·종교·철학·과학 등을 기록한 수십만권의 문서가 남겨져 있었다. 주요 학자 가문마다 사설도서관 또는 서고를 만들어 수백년 동안 이를 지켜왔지만, 반군이 가만둘 리 없었다.
“그건 정말 소중한 보물이죠. 가보이자 역사이고 유산입니다.” 팀북투 최대의 사설도서관을 소유한 압델 카데르 하이다라는 영국 <비비시>(BBC) 방송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를 비롯해 고문서를 소유한 팀북투의 35개 가문 대표들이 고문서를 지켜낸 과정을 <비비시>가 4일 보도했다.
지난 1월, 프랑스군의 공격에 밀린 반군은 고문서들이 보관됐던 도서관을 불태우고서야 퇴각했다. “수십만권의 문서가 어떻게 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당시 외신들이 전했다.
문서들은 살아남았다. 옛 제국의 이름높은 학자를 조상으로 둔 가문의 대표들이 ‘고문서 망명 작전’을 모의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작전에 돌입했다. 문서가 훼손되지 않도록 작은 금속함에 고문서를 나눠 담았다. 과일·채소를 담은 상자 밑바닥에 금속함을 숨겼다. 자동차 또는 카누에 실린 고문서는 반군 점령지를 벗어나 정부군이 지키는 수도 바마코로 옮겨졌다. 반군의 검문을 피하려고 한번에 두세개의 문서상자만 실었다.
반군이 물러난 뒤에도 ‘불안한 정세’를 우려한 고문서 망명 작전은 계속 됐다. 지난 4월까지 28만5000여개의 고문서를 2400개의 금속상자에 담아 바마코로 옮겼다. 10개월 동안 공포정치를 벌인 반군에 의해 손상된 고문서는 수백여권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비비시>는 “이제 또다른 위험이 있다”고 보도했다. 건조한 사막 기후인 팀북투와 달리 바마코는 습기가 많은 열대성 기후다. 중세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들여온 종이로 만든 고문서의 40%가 이미 손상을 입은 상태인데, 적절한 기온·습도를 유지하지 않으면 손상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채널A “북한군 오지 않았다는 근거 있느냐” 반발
■ 하나금융 부사장, 여직원 성희롱으로 사표
■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최강희호 총체적 난국
■ 광주시민들, 전두환 찾아간다
■ [화보] 1950년대 서울 명동, 뻥튀기 아저씨, 까까머리 아이...
■ 채널A “북한군 오지 않았다는 근거 있느냐” 반발
■ 하나금융 부사장, 여직원 성희롱으로 사표
■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최강희호 총체적 난국
■ 광주시민들, 전두환 찾아간다
■ [화보] 1950년대 서울 명동, 뻥튀기 아저씨, 까까머리 아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