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의 군인 살해에도
영국사회 차분한 대응
캐머런, ‘증오범죄 차단’ 의지 천명
언론도 “이번 일 이슬람과 별개”
영국사회 차분한 대응
캐머런, ‘증오범죄 차단’ 의지 천명
언론도 “이번 일 이슬람과 별개”
대낮 도심 도로에서 무슬림들이 군인을 잔혹하게 죽였다. 그래도 영국 사회의 대응은 차분하다. 여야 정치인은 물론 군대와 경찰까지 앞장서서 화합을 호소하고 있다.
보수당 정부를 이끄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냉철한 대처를 선도하고 있다. 23일(현지시각) 보안 대책 회의를 주재한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번 공격은 영국에 지대한 기여를 하고 있는 무슬림 공동체에 대한 배신이다. 이런 끔찍한 사건을 정당화하는 어떤 것도 이슬람에는 없다”고 밝혔다. 무슬림에 대한 ‘증오범죄’를 막으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야당인 노동당도 발을 맞췄다. 에드 밀리밴드 대표는 “이런 종류의 범죄를 혐오하고, 인내와 품위를 높게 평가하는 영국인은 신념·종교·배경이 서로 달라도 단결돼 있다. 충격적 사건으로 우리를 갈라놓으려는 이들은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 런던시장도 “이번 살인에 대해 이슬람을 비난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이라고 말했다.
앞서 2011년 7월 극우주의자의 테러로 77명이 숨지자 “우리의 대응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많은 개방성, 더 많은 인간애”라고 밝힌 옌스 스톨텐베르그 노르웨이 총리의 대응 방식을 연상시킨다.
영국 정치인들이 ‘테러’ 대신 ‘공격’, ‘살인’, ‘범죄’라는 단어를 골라 쓰는 대목도 눈에 띈다. 사건 발생 직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은 영국과 함께 폭력적 극단주의 및 테러에 맞서겠다”고 발표한 것과 비교된다.
곧잘 강경론에 치우치는 군경도 차분한 대처를 강조하고 있다. 필립 해먼드 영국 국방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군대는 영국인 전체의 지지를 받고 있다. (군인을 죽인) 이번 사건은 (영국인 전체의 뜻과 상관없는) 완전히 별개의 사건”이라고 말했다.
런던 경찰청 마크 롤리 총경은 “극우단체 등이 소셜미디어에서 벌이는 활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악용해 긴장을 조성하려는 시도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런던 경찰청은 “이번 살인사건은 테러사건으로 다뤄질 것”이라면서도 테러에 대비한 보안조처를 취하진 않았다. 대신 증오범죄에 대비해 사건이 일어난 런던 동남부 울리치 지역에 1200명의 경관을 추가로 배치했다.
언론도 이런 대응 기조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은 “이런 짓을 한 사람 때문에 이 지역의 조화가 무너지게 생겼다”는 울리치 주민들의 반응을 자세히 전했다. 사건이 일어난 울리치에는 나이지리아·콩고·네팔·베트남·동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많이 산다. 세계적 코즈모폴리턴인 런던에서도 대표적인 다문화·다종교 지역이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의 정치부문 에디터 닉 로빈슨은 23일 사과 성명을 냈다. 사건 직후인 22일 저녁 6시 뉴스에서 그가 “용의자들이 무슬림의 외모를 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 “잘못 해석될 여지가 있는 차별적 용어를 썼다. 많은 이들은 이번 공격이 이슬람과 별개의 것이라고 본다”고 해명했다.
한편, 런던 경찰청은 22일 오후 2시20분께 발생한 이번 사건의 용의자와 사망자의 신원 일부를 공개했다. 숨진 이는 영국 육군에서 7년간 복무한 리 리그비(25)로 2011년부터 런던에서 신병 모집 임무를 맡아 왔다. 용의자 가운데 한 명은 나이지리아 이민자 가족 출신으로 런던에서 자란 마이클 올루미데 아데볼라조(28)다. 개신교 집안에서 자란 아데볼라조는 그리니치 대학 졸업 직후 이슬람으로 개종했고 2004년부터 이슬람 원리주의 집단의 회합에 참여해왔다. 또다른 용의자도 나이지리아 출신의 22살 영국인으로 알려졌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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