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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도심에 자동차 막고 사람이 모이게 하자” 변신 중

등록 2013-05-15 16:51

오스트레일리아 남부 애들레이드시에서 가장 번화한 런들몰 거리는 보행자 전용이다.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을 도심에 끌어들이려 곳곳에 시민들이 앉아 음료 등을 먹으며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뒀다.
오스트레일리아 남부 애들레이드시에서 가장 번화한 런들몰 거리는 보행자 전용이다.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을 도심에 끌어들이려 곳곳에 시민들이 앉아 음료 등을 먹으며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뒀다.
[한겨레 창간25돌] 도시의 미래를 보다
호주 애들레이드 ‘도시 디자인’

교통체증·도심공동화 심각해지자
‘사람 모이게 해 상권 살리기’ 총력

도로 일부 막아 벤치·테이블 설치
자전거 허브 만들고 주차장 감축
노점 활성화에 공연무대 조성도
빈 점포들은 싼값에 임대 추진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남부 애들레이드시를 찾은 4월22일(현지시각) 도심의 대로변 상가 곳곳에 “For Lease”(세놓음)라는 안내문이 나붙어 있었다. 가게 서너곳에 한곳꼴로 나붙어 있어, 빈 점포가 많다는 걸 엿볼 수 있었다. 20여년 전 이민해 학원을 운영하는 동포 권성국(55)씨는 “1995~2000년 도심 상권이 쇠퇴하고 공동화 현상이 아주 심각했는데, 그나마 지금은 나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애들레이드 시정부가 도심 공동화와 장기적인 경기침체의 늪에 빠진 도시를 되살리려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도시정책의 최대 화두는 “도심에 사람이 모이게 하자”는 것이다.

스티븐 야우드(42) 애들레이드 시티카운슬 시장은 이날 <한겨레>와 만나 “지금까지 자동차가 도시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사람이 중심이 돼야 한다. 사람을 중시하면서 재미있고 활기차면서 지속 가능한 도시로 발전시켜 가겠다”고 도시정책에 관한 의지를 밝혔다. 애들레이드 시티카운슬은 인구 130만명의 애들레이드시 광역권 가운데 인구 20여만명의 도심 업무지구와 북부 주택지를 관할하는 중심 기초자치단체이다.

이 도시는 1836년 영국의 식민지 측량감독관이던 윌리엄 라이트 대령이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의 중심도시로 지목하고 도시계획을 짜 건설한 계획도시이다. 당시부터 도심에는 넓은 도로가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정리돼, 지금도 도시정책은 당시 골격을 유지한 테두리 안에서 추진돼왔다.

오스트레일리아 남부 애들레이드시는 도심 공동화 현상이 극심해, 시 정부가 사람들을 도심에 끌어들이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사진은 신자가 줄어 문 닫은 도심 교회 건물을 한국 동포가 리모델링해 운영중인 한식당.
오스트레일리아 남부 애들레이드시는 도심 공동화 현상이 극심해, 시 정부가 사람들을 도심에 끌어들이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사진은 신자가 줄어 문 닫은 도심 교회 건물을 한국 동포가 리모델링해 운영중인 한식당.

문제는 도로에 자동차 통행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교통체증이 심화되고 높은 땅값과 주택임대료 때문에 사람들이 외곽지역으로 빠져나가자, 도시정책에 일대 변화와 혁신을 꾀하게 됐다는 것이다. 곧 도심에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이 모이게 하자는 것이었다.

애들레이드시는 도심의 빈 가게들을 다세대 주거공간으로 리모델링해 세금 감면 혜택까지 줘가며 살도록 유도하고 있다. 시가 위탁 운영하는 도심의 최대 과일·식료품 소매시장인 센트럴마켓도 일요일과 월·수요일엔 문을 닫았다가 관광객이 늘면서 수요일에도 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권씨는 전했다.

애들레이드 시티카운슬은 먼저 작은 도로 일부를 막아 보행자 전용 거리로 바꿨다. 나무를 심고 벤치와 테이블 등을 설치해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머물며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포장마차 같은 노점 상가도 조성했다. 시민들이 거리에서 간단한 음식·음료를 사 먹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도심 거리 몇 곳에서 시범운영중인데, 시민들의 반응이 좋으면 더욱 확대할 방침이다.

올해부터는 반대 여론 때문에 역대 어느 시장도 손대지 못했던 빅토리아광장도 재개발을 추진해, 회전식 교차로 중앙을 사람들이 모여 쉬기도 하고 문화공연 등도 열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시민 라이언은 “광장 주위에 공사 펜스가 설치되고 교통도 통제되면서 불편해지긴 했지만, 공사 뒤 광장이 어떻게 변할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도심 도로 곳곳에 자전거 허브를 설치해 누구라도 쉽게 자전거로 시내를 돌아볼 수 있도록 했다. 도심 업무지구에서는 주차 공간도 점차 줄여서 대신 시민들의 만남과 소통의 광장 등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 신호등 단추를 누르게 했던 교통신호 시스템도 보행자를 자동 감지해 신호를 바꾸는 시스템으로 변경할 계획도 구상하고 있다. 도심 어디서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할 수 있도록 통신망을 확충하고, 도심 빈 가게는 젊은 사업가나 예술가들에게 값싸게 빌려줘 활성화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모두 ‘도심에 사람들이 들끓게 하는 것’을 겨냥한 것이다.

야우드 시장은 “도시를 활발하게 하려면 지역공동체 기능을 활성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한국·중국 등 이주민사회의 커뮤니티를 도시 발전에 적극 활용할 뜻을 밝혔다. 170여년 짧은 역사에도 다양한 인종과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다문화 사회인데, 이주민 커뮤니티를 통해 그들의 모국과도 연계될 수 있기 때문에 도시의 큰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학생을 포함해 애들레이드에 사는 한국 동포는 5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애들레이드 시티카운슬의 도시계획을 총괄하는 라이트대령센터의 데이비드 칙 도시계획 총관리관은 “3~4년 전부터 디자인팀을 꾸려 도시 공간을 사람들이 가장 적합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도시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변화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애들레이드(오스트레일리아)/글·사진 신동명 기자 tms13@hani.co.kr


함께 생활하는 ‘코-디자인’ 방식으로
원주민 고충·아동 학대 등 해법 모색

사회혁신센터 ‘탁시’

오스트레일리아 사회혁신센터(TACSI·탁시) 실무자들. 탁시는 “대담한 발상, 더 나은 삶”(Bold Ideas, Better Lives)을 모토로 내걸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사회혁신센터(TACSI·탁시) 실무자들. 탁시는 “대담한 발상, 더 나은 삶”(Bold Ideas, Better Lives)을 모토로 내걸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사회혁신 운동에 가장 먼저 나선 대표적 민간기구인 ‘오스트레일리아 사회혁신센터’(TACSI·The Australia Centre of Social Innovation·탁시)가 바로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의 주도인 애들레이드시에 본부를 두고 있다.

2003년 당시 주정부 총리였던 마이크 랜이 시도한 ‘애들레이드 싱커스 인 레지던스’(Adelaide Thinkers in Residence)가 탁시 출범의 모태가 됐다. 전세계 각 분야 전문가와 석학들을 애들레이드에 초청해 일정 기간 머물게 하면서 애들레이드시의 현안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내놓도록 한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레지던스에 초청됐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공공정책 분야 참모 제프 멀건의 제안에 따라, 주정부가 2009년 재정을 지원해 설립한 기구가 바로 탁시다.

탁시가 최근 애들레이드를 비롯한 오스트레일리아 전국의 현안으로 꼽는 대표적 사회문제는 유럽인 이주 전부터 살아온 원주민 문제, 아동학대, 고령화 사회에 따른 노인 문제 등이다.

캐럴린 커티스 탁시 집행위원장은 “원주민 관련 문제가 여전히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의 가장 심각한 현안의 하나다. 과거 정부가 이들을 섣불리 백인사회에 동화시키려 강요했던 잘못된 정책을 편 결과, 많은 원주민들이 피해를 겪고 아직도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탁시는 이른바 ‘코디자인(co-design)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원주민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실질적이며 지속적인 도움이 될 방법을 찾으려는 시도다.

탁시는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약물남용 등으로 해체 위기에 놓인 가족 문제에도 ‘코디자인’ 방식을 적용한 ‘패밀리 바이 패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위기의 가족과 문제를 잘 극복한 가족을 연결시켜주는 것이다. 커티스 집행위원장은 “부모의 무책임, 가정해체 등으로 어린이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사례도 있다”며 이런 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늘어만 가는 노인들이 스스로 고립되거나 소외되는 것을 막고, 가족·친구·공동체 등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은 가운데 마음을 열고서 긍정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애들레이드/글·사진 신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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