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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실업자를 ‘우리동네 일꾼’으로…재취업도 걱정 마

등록 2013-05-15 16:48

프랑스 파리에 있는 ‘지역관리기업 파리3지구’가 지난해 10월 지역 광장에서 중고 자전거를 팔고 있다. 지역관리기업 파리4지구와 함께 해마다 두차례 중고 자전거를 팔아 운영 기금을 마련한다.  지역관리기업 파리3지구 제공
프랑스 파리에 있는 ‘지역관리기업 파리3지구’가 지난해 10월 지역 광장에서 중고 자전거를 팔고 있다. 지역관리기업 파리4지구와 함께 해마다 두차례 중고 자전거를 팔아 운영 기금을 마련한다. 지역관리기업 파리3지구 제공
[한겨레 창간25돌] 도시의 미래를 보다
파리의 ‘지역관리기업’

거리청소·집수리·페인트칠 등
지역 일 맡아 하는 사회적 기업
전국에 140곳…노동자 8천여명
절반은 2년뒤 새 일자리 구해
정부, 재취업률 따라 차별 지원
아프리카 토고 출신인 압두(35)는 요즘 신바람이 난다. 아내와 두 자녀를 두고 홀로 고향을 떠나온 지 3년6개월여 만에 프랑스인들도 어렵다는 정규직 일자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프랑스 파리 전기자동차 관리 업체에 취직한 그는 “한달 1400유로(한화 200만원)에 점심값도 따로 받는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해 기쁘다”고 했다.

2009년 파리에 발을 디딘 압두는 짐 나르는 업체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다 파리 북서부에 있는 ‘지역관리기업 파리17지구’에서 일하며 2년 넘게 거리 청소를 했다. 17지구 지역관리기업은 “압두가 의욕이 넘치고 일을 열심히 한다”며 추천했다. 압두는 “일자리를 못 구해 몇 번이나 귀국하려고 했다. 청소 일을 하는 틈틈이 응급차 운전자격증을 따둔 게 취업에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생겼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17지구 지역관리기업에선 압두의 동료 20여명이 일한다. 이 지역엔 부유층과 저소득층이 절반쯤씩 산다. 저소득층 주민들이 지역관리기업에 취직해 거리 청소 같은 일을 한다. 지역관리기업의 베르트르 쥘리앙(59)은 “지난해엔 일한 지 2년 넘은 6명 중 3명이 취업했다. 직원의 60%를 취직시키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 자신도 한때는 지하철에서 신문을 팔며 노숙자로 지냈다고 했다.

저소득층의 보금자리 구실을 하는 프랑스의 지역관리기업은 1970년대 루베시 알마가르 구역에서 발생한 지역 주민들의 철거 반대운동에서 시작됐다. 이곳에 모인 사회학자 등이 ‘도심민중작업장’을 만들었고, 이 조직이 발전해 우리의 사회적기업과 비슷한 지역관리기업이 생겨났다. 지역관리기업은 거리·공원 청소, 집수리, 페인트칠처럼 마을에서 필요한 일을 한다는 점이 사회적기업과 다르다. 파리에만 지역관리기업이 10군데가 넘고, 프랑스 전역에는 140곳을 웃돈다. 지역관리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줄잡아 8000여명에 이른다. 대략 2년쯤 일하면 절반가량이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파리 중심부에 자리잡은 파리3지구 지역관리기업에는 저소득층 주민 25명이 일을 한다. 서울의 동대문 상가처럼 과거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았지만 지금은 부유층이 많은 곳이다. 3지구는 2003년 파리에 폭염이 닥쳐 홀몸노인들이 대거 숨지는 등 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을 계기로 생겨났다.

지역관리기업 파리3지구에선 노동자들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고 시간당 최저임금선인 6.4유로(9200원)에 육박하는 임금을 받는다. 지역관리기업이 직접 일당을 주는 노동자와 파견업체에서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함께 일한다.

3지구 지역관리기업 대표인 프랑수아 롱제리나(57)는 “지역관리기업은 일자리뿐만 아니라 저소득층에 사회적 연대감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오래 실업 상태에 놓이면 시민의식도 잃곤 한다. 이들에게 일자리를 찾아줘 사회참여 의식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 출신인 그는 현재 언론인을 양성하는 기자학교 교장이다. 녹색당 활동을 했고, 한때는 파리시 사회담당 부시장을 지냈다. 3지구에선 1주일에 한나절 무급으로 일한다.

지역관리기업 운영비의 3분의 2는 자체 수입으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받는다. 실무를 처리하는 베네딕트 피키아르(30)는 “예산을 지원할 때는 몇 명을 취업시켰나 수치보다는, 실업자들이 취업을 통해 어느 정도 사회에 재진입했나 하는 점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지역관리기업의 자체 수입은, 파리시가 해야 하는 거리·공원 같은 공공시설 청소나 페인트칠 같은 거리 단장 등을 대신 해주고 받는 것이다. 되도록 수지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지역관리기업 실무자들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일감을 따오고 회계 처리도 투명하게 하느라 안간힘을 쏟는다고 했다. 파리/구대선 기자 sunnyk@hani.co.kr


‘지역관리기업’ 지원 책임자 리콜로

“소외된 저소득층 사회참여 돕는 게 목적”

1980년대 소득격차 심해지자
“이대론 안 된다” 자발적 창립
전국위원회 두고 사업 지원

‘지역관리기업’ 지원 책임자 뱅상 리콜로
‘지역관리기업’ 지원 책임자 뱅상 리콜로
“프랑스에서 지역관리기업은 철저히 지역에 바탕을 두고 생활환경 개선 작업을 합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떠맡기 어려운 공원·도로 청소 같은 일이죠. 이는 곧 우리가 사는 마을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나 다름없죠. 이를 통해 저소득층이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하고 시민의식을 갖도록 하는 게 목적입니다.”

프랑스 전역의 지역관리기업 140여곳을 총괄하는 지역관리기업 전국연합위원회(CNLRQ)의 지원업무 책임자인 뱅상 리콜로(35·사진)는 지역관리기업의 목표를 이렇게 간추렸다. 그는 동료 9명과 함께 지역관리기업이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일감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도록 입찰 업무 등을 돕는다.

전국위원회는 지역관리기업의 10%인 14곳에서 파견된 대표들이 이사로 참여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한다. 전국위원회는 1988년 조직됐고, 개별 지역관리기업들은 80년대 중반부터 생겨났다. 실업난이 심각했고 폭동도 일어났다.

리콜로는 “소득 격차가 심해 사회문제로 불거지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지역관리기업들이 독립적이고 자발적으로 등장했다”고 말했다.

실업 상태에 놓인 저소득층 노동자가 지역관리기업을 찾아간다고 해서 곧바로 일자리를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그 지역에 사는 저소득층 주민이어야 하고, 장기 실업자나 홀로 아기를 키우는 부모에게 우선권을 준다. 일자리가 맞는지도 따져보고, 그러지 않으면 다른 취업 알선기관을 소개해준다. 정부가 운영하는 기관 말고도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장애인 취업기관도 곳곳에 있다.

지역관리기업 전국위원회에서 7년째 근무해온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지역개발을 공부했다. 환경단체에서 일하다 전국위원회와 인연을 맺었다는 리콜로는 “민간 업체와 견줘 많지는 않지만 임금 수준도 괜찮고, 일도 재미있고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파리/구대선 기자


지적장애인에 공예·재봉 등 교육
상품 만들어 바자회·전시회 판매

절망 아닌 희망 주는 ‘에자트’

지적장애인에게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일자리도 마련해주는 ‘에자트’(ESAT)는 프랑스 파리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길에 자리잡고 있다. 목공예, 도자기 공예, 재봉, 포장, 건물 도색 등 9개 분야에서 지적장애인 153명이 일한다. 일부는 취직하기도 하고, 10년 넘게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4월23일 찾아간 목공예반에선 10여명이 일하고 있었다. 강사인 에리크 쇼몽(47)의 지도를 받아가며 나무를 깎아내는 기술을 배운다. 쇼몽은 목수로 일하다가 15년 전 에자트에 왔다. 장애인들은 하루 8시간씩 목공예반에서 일하고 최저임금 수준인 한달 1200유로(170만원)를 받는다. 이들이 만든 목공예품은 주문을 받거나 바자회·전시회 등을 열어 판다.

프랑스 파리 도심의 골목길에 있는 지적장애인 사회적기업 ‘에자트’의 공예반에서 장애인들이 공예품을 만드느라 몰두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도심의 골목길에 있는 지적장애인 사회적기업 ‘에자트’의 공예반에서 장애인들이 공예품을 만드느라 몰두하고 있다.

12년째 일해온 크리스토프(42)는 기술이 좋아 후배들을 가르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곳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이 선거로 뽑은 대표다. 그는 “한해 3차례 회의를 주도하고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기관에 전한다. 대체로 의견이 받아들여지고 마찰은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목공예반 동료 볼업리(53)는 “임금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일할 곳이 있다는 자체로 만족한다”며 웃었다.

공예반에선 10명이 컵을 만들고 있었다. 고려청자 기법으로 만든 컵은 7유로(1만원)에 판다. 30년간 도예가로 활동해온 강사 올리비에(56)는 “장애인들이 스스로 일을 배우도록 한다. 일에 흥미를 느끼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의 지적장애인 사회적기업 ‘에자트’의 목공예반에서 12년째 일해온 크리스토프(왼쪽)가 동료에게 목공예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지적장애인 사회적기업 ‘에자트’의 목공예반에서 12년째 일해온 크리스토프(왼쪽)가 동료에게 목공예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그림 그리는 작업실에서는 장애인들이 머플러에 무늬를 그려넣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에자트에서 11년째 일한다는 록산(39)은 고등학교 때부터 그림 공부를 해왔다. 에너지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기법이 탁월하다고 주변에서 귀띔했다. 오는 9월엔 파리에서 장애인단체 26곳이 함께 대규모 합동전시회를 열 계획인데, 600여점을 출품하기로 하고 요즘 작업에 여념이 없다. 책임자 가트린드 생트더앤(55)은 “한국에서도 꼭 전시회를 열고 싶다. 초청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에자트는 프랑스에서 규모가 가장 큰 장애인 고용 사회적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파리에만 34곳, 프랑스 전역에 1000곳이 넘는다고 한다. 에자트의 임원은 “제품을 팔아 얻은 수익금으로 연간 임금의 6%를 충당한다. 나머지는 정부가 지원하는데 수익을 더 높이라는 압박도 한다”고 말했다. 파리/글·사진 구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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