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국제일반

낡은 고층빌딩 부숴! 슬럼가가 살고 싶은 마을로

등록 2013-05-15 16:36

캐슬베일 시가지가 깨끗하고 밝다. 집 앞으로 난 도로는 넓고, 집들은 아담하고 고풍스러운 멋을 풍긴다.  캐슬베일 주택조합 제공
캐슬베일 시가지가 깨끗하고 밝다. 집 앞으로 난 도로는 넓고, 집들은 아담하고 고풍스러운 멋을 풍긴다. 캐슬베일 주택조합 제공
[한겨레 창간25돌] 도시의 미래를 보다
영국 캐슬베일 ‘도시재생 사업’

경기침체로 도시 황폐화되자
주민들 주거행동연합 만들어
‘범죄 온상’ 고층 빌딩 없애고
의료시설·쇼핑센터 등 세워
일자리 생기고 범죄율 떨어져
영국 중부 버밍엄의 북동쪽에 있는 위성도시 캐슬베일을 찾은 4월26일, 도심지는 주민 몇 명만이 오갈 뿐 조용하고 깨끗했다. 한복판 너비 10여m 도로를 따라 양쪽으로 3층 이하 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학생들은 학교에 가고, 젊은이들은 일터로 나간 시간이었다. 길 가던 할머니 로라(72)는 “마을이 살기 좋고 편리하다”고 했다. 6년 전 홀로 이사 온 그는 “버스 노선이 잘 짜여 있다. 집 안에는 비상벨이 있어 급할 땐 재빨리 도움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캐슬베일은 영국 제2의 도시이자 공업도시인 버밍엄에서 10여㎞ 떨어진 위성도시다. 한때 버밍엄에서 가장 큰 주거단지가 있었지만 경기가 침체돼 노동자들이 떠나면서 황폐화된 적이 있다. 하지만 주민들이 앞장서 도시재생을 추진하면서 새롭게 변모했다.

주민들은 마을 한가운데 있는 캐슬베일 커뮤니티 주택조합(CVCHA·Castle Vale Community Housing Association) 사무실을 제 집처럼 드나든다. 이곳에는 직원 110여명이 주택관리뿐 아니라 주민 복지와 치안, 취업까지 돕는다. 주택조합은 철저히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모든 일을 결정한다. 이사 11명 가운데 6명이 주민 대표이며, 나머지 5명은 재정·회계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다.

인구는 1만명 조금 웃돈다. 주택 4000채 가운데 2500채를 주택조합이 관리하는데 이 업무가 가장 중요하다. 임대주택에서 집세를 받아 육아·미용·다이어트 프로그램 마련, 청소년 시설 운영 등 주민 복지에 쓴다. 작은 집은 1주일에 70파운드(12만원)~80파운드(14만원), 넓은 집은 100파운드(18만원)까지 받는다. 주변 지역보다 10~20%가량 싸다. 1500채는 개인 소유이지만 쓰레기 수거나 마을 행사 등은 주택조합과 함께 한다.

1993년 도시재생이 시작되기 전의 캐슬베일 시가지 모습. 1963년에 세워진 낡은 고층건물이 곳곳에 보인다.
1993년 도시재생이 시작되기 전의 캐슬베일 시가지 모습. 1963년에 세워진 낡은 고층건물이 곳곳에 보인다.

한적한 도로와 대조적으로 ‘센추어리’라는 복지시설에는 사람들이 북적댔다. 시설을 관리하는 로레인(45)은 “하루 평균 100명 넘게 찾아온다. 대부분 프로그램은 돈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취업 프로그램에 주민들의 관심이 가장 많이 쏠린다. 갓난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센추어리를 찾은 레이철(40)은 “1주일에 세번쯤 온다. 아기 키우는 부모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취업 정보도 얻어간다”고 했다. 취업교실은 컴퓨터 등을 갖춰놓고 취업 정보를 제공하고 이력서 작성 등도 거든다. 취업 업무를 맡은 랍(56)은 “지난해 199명이 취업하려고 왔는데 66명이 일자리를 찾았거나 직업훈련에 참여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80년대 불경기가 심해지자, 캐슬베일 도심은 슬럼가로 변했다. 이곳에서 38년 살았다는 마이크 도일(75)은 그 당시만 떠올리면 끔찍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걸핏하면 자동차가 부서지고 지옥이 따로 없었다고 했다. 주민 절반이 직장을 잃었고, 밤에는 위험해 외출마저 꺼렸다. 트레이시 배링턴(45)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 보면 청소년들이 차량을 도둑질하는 광경이 종종 눈에 띄었다. 건물 승강기는 밤사이 오물로 뒤덮여 화장실로 변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들은 “돈도 없고, 지역사회에 신경쓰는 이도 없어 캐슬베일에 사는 게 부끄러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20년 이상 도시 슬럼화를 견디다 못한 주민들은 1993년 주거행동연합(HAT·Housing Action Trust)을 꾸리고 도시를 바꾸자며 팔을 걷어붙였다. 영국 정부와 버밍엄 지방정부가 2억파운드(3500억원) 넘는 돈을 대고, 주택 관련 회사와 금융회사가 1억파운드(1800억원) 가까운 자금을 뒷받침했다. 주민들은 주거행동연합을 압도적으로 지지했고, 시의회는 도시재생에 관련한 모든 권한을 주거행동연합에 넘겼다.

먼저 도심에 무질서하게 늘어선 10층 고층 아파트를 허무는 일부터 시작했다. 낡아빠지고 밤이면 청소년들 범죄의 온상이 됐던 10층 건물 34채 가운데 32채를 뜯어냈다. 이 자리에 1500채 넘는 아담한 주택들이 세워졌고, 1300채는 재보수를 끝냈다. 학교 근처 고층 건물 2동은 남겨뒀다. 초등학교가 가까워 허무는 동안 학생들이 수업에 지장을 받을까 염려해서였다. 대신 건물 내부를 리모델링해 노인들의 보금자리로 바꿨다.

마을 중심부 낡은 건물을 헐어낸 자리에는 의료시설과 쇼핑센터를 세웠고, 학생들의 직업교육에 힘을 쏟았다. 이에 힘입어 주거행동연합이 활동했던 2005년까지 12년 동안 1500여곳에 일자리가 생겨났고, 실업률은 대도시 버밍엄보다 낮은 6.9%로 떨어졌다.

주거행동연합이 수명을 다한 뒤 2006년 캐슬베일 커뮤니티 주택조합으로 모든 업무가 넘어갔다. 주택조합 책임자 피터 리치먼드(44)는 “리버풀 등 영국 6개 도시에서 동시에 도시재생 작업이 펼쳐졌지만 캐슬베일이 가장 성공적”이라고 자평했다. 주택조합은 2년 전부터 인근 대학, 시 정부, 경찰, 회사 등과 협력·교류를 다지는 프로젝트(Neighbourhood Plan)를 시작했다. 2020년까지 이어질 이 사업은 캐슬베일에서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의 일자리를 마련하고 학생들의 방과후 활동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 리치먼드는 “영국의 도시재생 과정을 보면, 침체기를 맞았다가 도시재생에 성공해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뀐 뒤 또다시 침체기에 접어든다. 캐슬베일은 이런 사이클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들고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도시재생 전문가로 활동중인 양도식 박사(영국도시건축연구소장)는 “캐슬베일이 도시재생에 성공해도 청년들이 취업이나 교육을 위해 대도시로 떠나는 시대적 대세를 막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속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도시는 다시 슬럼화로 돌아갈 수도 있다”며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대안을 찾기를 주문했다.

캐슬베일(영국)/구대선 기자

sunnyk@hani.co.kr


주택조합 이사 슈 스파이서

“직원들 캐슬베일에 살며
이웃들이 무엇 원하는지
파악하고 문제 해결해요”

주택조합 이사 슈 스파이서
주택조합 이사 슈 스파이서
“30년 전만 해도 빈곤지역이었던 캐슬베일이 도시재생 과정을 통해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었어요. 주민들 모두 자랑스럽게 여긴답니다.”

영국 버밍엄 북동쪽 위성도시 캐슬베일의 2500여채 주택을 관리하는 캐슬베일 커뮤니티 주택조합(CVCHA)의 슈 스파이서(60·사진) 이사는 4월26일 <한겨레>와 만나 “집들이 모두 좋아졌고 동네가 깨끗하다. 쓰레기 청소도 완벽해 주민들이 편리하게 지낼 수 있다”며 마을 자랑을 한껏 늘어놨다. 직장에서 퇴직한 그는 현재 무급으로 주택조합 이사로 뛰고 있다.

그는 1990년대 중반 주거행동연합이 10층 고층 건물 32채를 헐어내던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주민들이 밤새 논의한 끝에 고층 빌딩은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만장일치로 고층 아파트를 뜯어내고 낮은 주택을 짓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주거행동연합에서 2006년 캐슬베일 커뮤니티 주택조합으로 업무를 옮길 때에도 주민들의 의사를 낱낱이 물어 주민 2700여명 가운데 18명만 빼고는 모두 동의를 얻어냈다고 했다.

주택조합에서 일하는 직원 110명 가운데 20% 남짓은 캐슬베일에 사는 주민들이라고 했다. 스파이서 이사는 “직원 30여명이 캐슬베일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웃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현안이 무엇인지를 더욱 정확하고 빠르게 파악할 수 있어 제때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캐슬베일 커뮤니티 주택조합은 모든 일을 이사회에서 결정해 시행한다. 스파이서 이사는 “이사회에서 결정하기 전에 주민들의 의사를 꼼꼼하게 조사한다. 그래서 주민들의 참여율이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주민 참여를 이끌어내는 동력이라는 얘기다. 캐슬베일/글·사진 구대선 기자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박원순 시장 영향력 차단”‘ 국정원 추정 문건’ 나왔다
주진우 구속영장 기각…법원 “언론자유 한계 다투는 사건”
대기업 인사팀, 취업특강서 여대생 외모지적 등 ‘갑질’
치매 아내 4년 돌보던 80대 끝내…“이 길이 가장 행복” 마지막 동행
미 경찰 “윤창중, ‘중범죄’로 다루지 않고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40km 밖인데 연기와 재가”… LA산불 “진압률은 여전히 0%” 1.

“40km 밖인데 연기와 재가”… LA산불 “진압률은 여전히 0%”

미 국가안보보좌관 “윤석열 계엄 선포는 충격적이며 잘못됐다” 2.

미 국가안보보좌관 “윤석열 계엄 선포는 충격적이며 잘못됐다”

20대 한국 학생, 일 대학서 망치 휘둘러 8명 부상 3.

20대 한국 학생, 일 대학서 망치 휘둘러 8명 부상

트럼프에 “유죄지만 석방” 선고…10일 뒤 ‘중범죄자 대통령’ 취임 4.

트럼프에 “유죄지만 석방” 선고…10일 뒤 ‘중범죄자 대통령’ 취임

박찬호 LA 집도 불타…가족과 호텔로 피해 5.

박찬호 LA 집도 불타…가족과 호텔로 피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