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시 헤이스밸리에 ‘프록시 프로젝트’로 입주한 맥주가게 비어가르텐은 오후 5~6시면 자리가 없을 만큼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가득 찬다.
[한겨레 창간25돌] 도시의 미래를 보다
미 샌프란시스코 헤이스밸리 ‘프록시 프로젝트’
주거용지 안팔리자 한시 활용
컨테이너를 예술적으로 개조
옷가게·커피숍 등 열자 사람 북적
자투리땅엔 꽃심어 시민공원으로
우범지역서 주민 휴식공간 탈바꿈
시설 재활용 ‘도시재생 모델’ 돼
미 샌프란시스코 헤이스밸리 ‘프록시 프로젝트’
주거용지 안팔리자 한시 활용
컨테이너를 예술적으로 개조
옷가게·커피숍 등 열자 사람 북적
자투리땅엔 꽃심어 시민공원으로
우범지역서 주민 휴식공간 탈바꿈
시설 재활용 ‘도시재생 모델’ 돼
미국 샌프란시스코시 헤이스밸리에 있는 선박용 컨테이너 앞에 지난 1일 오후 6시께(현지시각) 사람들이 30m 넘게 줄을 섰다. 맥주점 ‘비어가르텐’에서 생맥주를 마시려는 이들이었다. 컨테이너 앞 탁자 200여석 가운데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가게를 운영하는 에런 흄(40)은 “수~일요일 문을 여는데, 조금만 더우면 정신이 없을 만큼 손님이 많다”고 했다.
300평 남짓한 터에는 3층으로 쌓은 컨테이너 옷가게 ‘이서’ 주변에 커피숍, 아이스크림가게 등이 있고, 그 옆 250여평 터에는 관광자전거 대여업체, 맥주점 등이 있다.
3층 컨테이너 주변엔 6㎡짜리 가판대 5곳, 22㎡ 가판대 4곳이 석달마다 돌아가며 설치된다. 가판대는 한쪽을 유리로 만들어 전시장 같은 구실을 하는데, 지역의 디자이너, 예술가, 장인들이 끼를 발휘하는 활동공간이다. 관광자전거 대여사업을 하는 팀 매클로플린(36)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최고 인기를 누린다. 석달 기한으로 들어왔는데 연장해 벌써 1년이 돼간다. 생계에 큰 도움이 된다”며 웃었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2011년 1월 등장한 이른바 ‘프록시(proxy·임시대행) 프로젝트’ 현장이다. ‘떴다방’처럼 반짝 출현하는 ‘팝업 스토어’에 착안해 도심의 빈 공간을 일정 기간 활성화하려는 시도다.
1989년 지진으로 헤이스밸리를 관통하는 고가고속도로가 무너지자, 샌프란시스코시는 2002년 이를 철거하고 지구를 매각해 주거용지로 쓸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2008년 경기 침체로 일부 지구의 매각 연기가 불가피해지자 달리 활용할 방안을 모색했다. 헤이스밸리 2개 블록은 고가도로 일부 구간을 허물고 만든 주차장 터였다. 건축회사 ‘엔벌로프A+D’에 활용 방안을 구했더니, 건축회사 쪽은 프록시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했다.
과거의 도시재생이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는 재건축·재개발을 강조했다면, 프록시 프로젝트는 저비용·저위험으로 효과적인 도시재생 가능성을 보여준다.
건축회사 더글러스 버넘 대표는 ‘콘텐츠를 만드는 공장’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이 지구를 음식·문화·예술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꾸기로 했다. 처음부터 ‘임시’로 쓰게 될 것을 염두에 뒀다. 모든 시설을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를 쓰기로 하고 컨테이너를 활용했다. 헤이스밸리 2개 블록에는 26개의 컨테이너를 동원했다. 안을 볼 수 있는 쇼케이스를 만들거나 내부를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려냈다.
침체된 지역의 재생 말고도 일자리 창출에도 한몫했다. 버넘 대표는 “자전거 대여업자는 살 집이 없었고, 아이스크림가게 주인은 일자리가 없었다. 맥주점 주인은 4년 동안 장소를 물색했지만 찾지 못했다. 하지만 프로젝트 첫 1년 동안 120명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375만달러의 소득을 올렸다. 이전에는 주차장이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위험하고 인적이 드물었다”고 말했다. 주민 10여명에게 운동을 지도하던 체육강사 앨릭스(29)는 “빈 공간에서 주민들에게 운동을 가르쳐주면서 이웃들과 공동체 의식을 나눈다. 야외운동 강습도 프로젝트의 하나”라며 웃었다.
2010~2012년만 활용하려 했지만 뜻밖의 반향에 회사 쪽은 시와 협상해 1개 블록은 2020년까지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컨테이너를 활용한 옷가게는 세련된 현대적 느낌을 줘,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주요 포인트로 변모했다. 빨간색 인테리어가 눈길을 끄는 커피숍에서 일하는 티오(32)는 “건축회사가 이 지구를 빌려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우리 커피숍이 재임대 가게를 열었다. 하루 200~300여명이 찾아와 1500~3000달러 매출을 올린다”고 말했다. 실외 금속공예 장식들을 설치하는 건축가 겸 금속공예가 크리스 프렌치(38)는 “20년 넘게 방치됐을 땐 우범지역이었지만, 지금은 주민과 관광객들의 휴식공간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때마침 이곳을 취재하러 독일에서 왔다는 여성 프리랜서 트레이시 메츠(58)는 “2011년 8~11월 베니스(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미국 퍼빌리언에 125개의 작품이 소개됐는데 이 프로젝트가 있었다. 아이디어가 괜찮아 보여 찾아왔는데, 예상보다 훨씬 성공적”이라며 웃었다. 그는 “특히 소매점들이 석달 주기로 순환되는 지속성이 눈길을 끈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시 케네스 리치 개발국장은 “이 도시에서 관광객과 주민들이 찾고 싶어하는 5번째 순위 안에 들 정도로 명물이 됐다”고 말했다.
미활용 토지의 한시적 사용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인근 지역으로도 번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제6지구 시의원인 제인 킴은 “프록시 프로젝트는 헤이스밸리를 활성화하는 흥미롭고 독특한 방법이다. 제6지구에서도 비슷한 방법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속가능성과 재활용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어 매우 성공적이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모든 시설이 재활용되거나 다른 곳에 재임대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제6지구에서 사용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시는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제안받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집단지성을 동원해 사회혁신에 나서고 있다. 투자비를 거의 들이지 않고도 주차장을 명물 가운데 하나로 바꾼 프록시 프로젝트도 작은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꾼 사례다.
그 주변 철거지역 자투리 공간은 시민들이 직접 가꾸는 소규모 정원으로 바뀌었다. 잡초를 뽑던 자원봉사자 짐(58)은 “자투리땅에 꽃과 채소를 가꾸는데 주민들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시청 주변 우범지역에도 자투리 공원을 만들어 지역 주거환경을 밝게 바꿨다.
다른 도시들이 벤치마킹하려는 ‘공공 파클릿’(public parklet)도 호응을 얻고 있다. 도로변 주차면 가운데 일부를 식당·커피숍 등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파클릿에는 의자·탁자가 있고 주민이나 관광객들이 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도로 점용료만 내면 된다. 시장실 소속 제이 네이스 혁신정책관은 “가게 주인들이 처음엔 파클릿을 꺼렸으나 지금은 매우 반긴다. 개인의 창의력이 빛을 내는 사례다. 그리고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험, 음식 문제 등과 관련해 100개 이상 아이디어를 시민들로부터 받아 활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샌프란시스코시는 시유지나 장기간 쓰지 않는 사유지를 활용할 방안도 시민들에게서 찾는다. 도시개발이나 도시문제 해결에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프록시 프로젝트’ 이끈 버넘 대표 “정부·민간·지역 협력해 도시에 활력 심어”
시 활용 제안에 ‘콘텐츠 공장’ 구상
도심 공동화를 되레 기회로 살려 “프록시 프로젝트는 시 정부와 민간부문, 지역사회가 공동으로 협력할 때 쇠락해가는 도시공간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샌프란시스코시 헤이스밸리에 있던 한적한 주차장을 멋들어진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도록 한 건축회사 엔벌로프A+D의 더글러스 버넘(사진) 대표는, 프록시 프로젝트의 특질을 이렇게 간추렸다. 4월30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의 회사에서 인터뷰하던 날에도 그는 지금은 가동하지 않는 인근의 석탄발전소를 다녀온 길이라고 했다. “2008년 시청에서 미활용 시유지의 활용 제안을 해왔죠. 지역 특성에 비춰 헤이스밸리를 상업 및 예술문화 공간으로 꾸밀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시 정부는 예산을 전혀 투자하지 않았다. 상설 건축물이 들어설 때까지만 점유한다는 점에서 ‘프록시’(임시대행)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프로젝트를 ‘유연한 도시계획’이라고 정의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공장’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을 짰다. “콘텐츠는 컴퓨터, 모바일 기기 등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잖아요. 이런 속도에 맞춘 짧은 주기의 순환으로 이벤트, 소매점 공간, 예술과 음식 등 여러 콘텐츠로 지속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선박용 컨테이너를 고른 것도 한시적으로 쓴 뒤 다른 곳에서 재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콘텐츠의 지속가능한 변화를 염두에 둔 선택이었다.
프록시 프로젝트 추진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건축법에 임시 건축물 허가는 최장 90일이었다. 냉난방시설, 상하수도, 에너지 관련 법규도 고려해야 했다. 시정부 제안으로 시작했는데, 인허가만 37개를 받는 데 2010년 한해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도시재생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도시 변화의 빠른 속도를 쫓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날마다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응하는 그런 도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됐다. 건축가로서 도시를 도시 자체로 보기보다는 그 안에 있는 가능성을 본다. 빈 공간이나 버려진 터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었다.”
코넬대 건축학과를 나와 2002년 엔벌로프사를 세운 그는 캘리포니아예술대학에서 강의하며 도시혁신 방안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
“옛 도심의 공동화 현상이 심해지면 인구가 빠져나가고 집값이 떨어지며 죽어가는 도시가 됩니다. 하지만 이는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임대료가 낮아지고 젊은 예술가들이 그 지역으로 들어가기가 쉬워지죠. 이로 인해 도시는 창의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로 넘치고, 빈 공간은 그냥 빈 공간으로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혁신은 어디에서나 가능합니다.”
샌프란시스코/글·사진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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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버넘 대표.
도심 공동화를 되레 기회로 살려 “프록시 프로젝트는 시 정부와 민간부문, 지역사회가 공동으로 협력할 때 쇠락해가는 도시공간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샌프란시스코시 헤이스밸리에 있던 한적한 주차장을 멋들어진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도록 한 건축회사 엔벌로프A+D의 더글러스 버넘(사진) 대표는, 프록시 프로젝트의 특질을 이렇게 간추렸다. 4월30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의 회사에서 인터뷰하던 날에도 그는 지금은 가동하지 않는 인근의 석탄발전소를 다녀온 길이라고 했다. “2008년 시청에서 미활용 시유지의 활용 제안을 해왔죠. 지역 특성에 비춰 헤이스밸리를 상업 및 예술문화 공간으로 꾸밀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시 정부는 예산을 전혀 투자하지 않았다. 상설 건축물이 들어설 때까지만 점유한다는 점에서 ‘프록시’(임시대행)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프로젝트를 ‘유연한 도시계획’이라고 정의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공장’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을 짰다. “콘텐츠는 컴퓨터, 모바일 기기 등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잖아요. 이런 속도에 맞춘 짧은 주기의 순환으로 이벤트, 소매점 공간, 예술과 음식 등 여러 콘텐츠로 지속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선박용 컨테이너를 고른 것도 한시적으로 쓴 뒤 다른 곳에서 재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콘텐츠의 지속가능한 변화를 염두에 둔 선택이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시 헤이스밸리에 ‘프록시 프로젝트’로 들어선 커피숍에는 하루 평균 200~300여명의 시민과 관광객들이 찾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시 헤이스밸리에 적용한 ‘프록시 프로젝트’의 상징물 선박용 컨테이너 구조물. 3층으로 쌓고 유리로 진열장을 만들어 현대적 감각을 풍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시가 도로 주차면을 음식점이나 카페에 내주는 ‘파클릿’은 다른 도시도 벤치마킹하려고 관심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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