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쿠리치바시의 장애 학생들을 위한 안젤루 안토니우 달레그라비 터미널에서 4월22일 정오께(현지시각) 휠체어에 탄 장애 학생이 보조교사의 도움을 받아 전용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한겨레 창간25돌] 도시의 미래를 보다
브라질 쿠리치바의 교통정책
원통형 정거장 364곳엔 ‘리프트’
장애인 혼자도 버스 탈 수 있어
장애학생 전용 버스터미널도 유명
요금은 무료…하루 2300여명 이용
교통약자 배려하는 도시 정책이
보행권 넓히고 대중교통 질 높여
브라질 쿠리치바의 교통정책
원통형 정거장 364곳엔 ‘리프트’
장애인 혼자도 버스 탈 수 있어
장애학생 전용 버스터미널도 유명
요금은 무료…하루 2300여명 이용
교통약자 배려하는 도시 정책이
보행권 넓히고 대중교통 질 높여
브라질 남부 파라나주의 주도 쿠리치바시 도심에서 동쪽으로 4㎞ 남짓 떨어진 안젤루 안토니우 달레그라비 터미널. 4월22일 오전 11시30분께(현지시각) 노란색 띠에 별들이 그려진 하늘색 버스들이 속속 도착했다. 한산하던 터미널이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휠체어나 보조장비를 이용하는 학생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장애학생 전용 버스터미널이다. 오전 수업이 끝난 학생들은 이 터미널에서 같은 쪽으로 가는 학생들끼리 버스에 올라타 귀가한다. 쿠리치바시교육청과 시 산하 대중교통운영공사(URBS·우르비스)의 협약으로 버스요금은 무료다.
버스에는 보조교사 2명이 배치돼 학생들의 승하차와 운행중 안전을 돕는다. 휠체어에 탄 학생들의 하차를 도와주던 운전기사 엘리아스(49)는 “오전 7시30분~오후 7시에 4차례 운행한다. 학교 오전반 수업이 끝나면 11시30분~12시께 학생들을 다시 터미널로 데려오고, 점심시간 이후에는 오후반 학생들을 같은 방법으로 수송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용 터미널을 다니는 버스는 21개 노선에 21대다. 집에서 곧바로 학교로 학생들을 데려다주는 버스도 34개 노선에 39대가 운영되고 있다.
전용 터미널 건립은 시민들의 ‘교통약자들의 이동권 보장’ 요구에 힘입어 이뤄졌다. 대다수가 저소득층인,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한 이동권 확보를 요구했고 1985년 시체스(SITES·특수교육을 위한 통합교통체계)라는 기관이 설립됐다. 시체스의 직원 포지 디멜루는 “처음에는 시청 근처에서 시작했는데, 학부모들의 호응도가 높고 수용 인원이 늘어나자 1988년 11월 전용 터미널을 짓고 옮겼다. 학부모 만족도가 대단히 높다”고 설명했다. 하루 평균 2300여명이 장애인 전용 버스를 이용하는데, 이날 이용자는 2534명이었다.
쿠리치바시의 대중교통 시설에는 이처럼 교통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돋보인다. 대부분 버스에는 휠체어 탑승이 가능하다는 표시가 버스의 앞뒤, 양옆, 앞면 상단 행선지 표시 부분까지 모두 5곳에 붙어 있다. 쿠리치바 대중교통의 명물이 된 원통형 정거장 364개에도 휠체어 리프트가 설치돼 있어 장애인들이 혼자서도 버스를 이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병원과 병원을 오가는 버스도 있다. 전문 병원을 이용하기 쉽도록 쿠리치바 도심 반경 2.5㎞ 안에선 버스 2대가 35분 간격으로 운행하면서 환자나 병원 방문객들을 병원 문 앞에 내려준다.
일요일인 4월21일 오후 도심 센트라우 정거장에서 쿠리치바시 공무원 카즈미 히로노(55)와 함께 빨간색 2단 굴절버스를 탔다. 버스 전용 도로를 운행하는 급행 2단 굴절버스는 노선에 따라 빨간색(수용 인원 250명, 시속 30㎞)과 파란색(수용 인원 230~250명, 40㎞) 두 가지가 있다. 지상에서 40~50㎝ 높게 설치된 원통형 정거장은 버스 승강대와 높이가 같다. 정거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카즈미가 교통카드를 내밀자 지하철 개표구의 차단막대와 비슷한 출입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미리 요금을 내기 때문에 버스의 정차 시간은 그만큼 단축된다.
간선교통축 가운데 하나인 북쪽으로 15㎞쯤 떨어진 산타칸지다 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닿자 정거장의 5개 문이 열리고, 버스에 부착된 승강대가 펼쳐진 뒤 버스 문이 열렸다. 개표구 통과부터 버스에 탈 때까지 마치 지상으로 나온 지하철을 타는 기분이 들었다. 휠체어를 탄 노인도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혼자서 휠체어를 밀며 들어가 휠체어 전용 공간에 자리잡았다.
2월부터 물가 상승 등의 압력으로 버스요금이 월~토요일 2.85헤알(1헤알은 544원), 일요일 1.5헤알로 올랐다. 이전엔 월~토요일 2.6헤알, 일요일 1헤알이었다. 대학생이라는 링컨 제나르진(17)은 “교외에는 차량을 소유하지 않은 서민들이 많다. 일요일 버스요금을 싸게 해줘, 서민들도 편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쿠리치바시에 온 지 한달쯤 됐다는 상파울루 출신 주앙 산투스(20)는 “상파울루의 대중교통은 이용하기 불편하고 복잡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쿠리치바는 카날레타스(버스 전용 도로)가 있어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가는 도중에 지구간 노선을 운행하는 은색 버스를 타기로 하고 카브라우 터미널에서 내렸다. 터미널은 다양한 버스들이 드나들어 한국의 철도역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쿠리치바와 인접한 28개 주변 도시 가운데 13개 도시는 쿠리치바의 대중교통 시스템과 연계돼 터미널에서 환승해 오갈 수 있다.
은색 버스를 타려고 지하도를 따라 다른 터미널로 들어선 뒤, 도시 서부 캄피나두시케이라 터미널로 향했다. 요금을 한번 내면 터미널을 벗어나지 않을 경우 횟수에 상관없이 환승할 수 있다.
버스는 6개 마을 4개 정거장을 지나 24분 만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교통이 혼잡한 도로를 거치기도 했지만 효율적이었다. 파라나주연방대 학생 마리아나(19·여·약학2)는 “등하교 시간에 다른 도시들처럼 만원 버스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자가용보다 훨씬 효율적일 때가 많다”고 말했다.
4월23일에는 피녜이리뉴 터미널에서 바이오디젤로 운행하는 파란색 2단 굴절버스를 탔다. 2011년 말 도입된 이 버스는 같은 해 연방 고속도로를 개조해 만든 간선교통축인 리냐 베르지 구간 18㎞를 시속 40㎞의 속도로 달렸다. 버스 전용 도로여서 다른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서울시의 버스 중앙차로제는 이런 버스 전용 도로 운영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리치바에서 급행버스는 빨간색·파란색, 외곽의 지구간 직행버스는 은색, 외곽 지구를 운행하는 버스는 녹색, 마을버스는 주황색, 일반버스는 노란색이다. 모두 1920대로, 예비버스까지 2000여대다. 시 산하 기관 우르비스가 버스 운행을 총괄한다. 쿠리치바시 인구 180만명에 주변 도시까지 더하면 300만여명 가운데, 평일에 연인원 230만명, 일요일엔 70만~100만명이 이용할 만큼 쿠리치바의 버스 의존율은 높다.
하지만 대중교통의 도시 쿠리치바시에도 고민은 있다. 차량 135만여대가 등록돼 있는데, 최근 신규 차량 등록대수가 한달 1만7000~2만여대로 급증하는 추세다. 쿠리치바시의 평균 소득 수준은 높은 편이다. 2010년 기준 쿠리치바의 월평균 소득은 2889헤알로 주변 도시(2155헤알)나 파라나주 평균(1578헤알)보다 높고, 브라질 전체 평균 소득(1552헤알)에 견줘서는 갑절 가까이 높다. 하지만 빈민층도 도시 인구의 10~11%에 이른다. 최대 현안으로 지하철 건설 여부가 떠오른 배경이다.
우르비스의 호베르투 그레고리우 다 시우바 대표는 “브라질 전국에서 차량 보유대수가 가장 높은 도시다. 현재 있는 버스 전용 도로 말고도, 일반 도로에도 버스 전용 차로를 마련해 정해진 시간대엔 버스만 다니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중교통 이용률을 더욱 높이기 위해 혼잡한 시간을 피해 버스를 이용하면 버스요금을 낮추고,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서도 버스 환승을 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시험중이다.
쿠리치바시의 대중교통 계획과 도시계획을 총괄하는 도시계획연구소(IPPUC) 세르지우 포보아 피리스 소장은 “대중교통과 도시계획을 함께 묶어 수립하고, 보행권을 넓히고 대중교통의 질을 더 높여 쿠리치바를 쾌적한 도시로 만드는 것이 추진하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쿠리치바(브라질)/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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