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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마우마우’ 60년 항쟁에 영국 손들었다

등록 2013-05-07 20:36수정 2013-05-08 00:55

영, 1950년대 케냐 식민통치때
10년간 9만명 학살·16만명 감금

피해자들 영국정부 직접 제소해
비인도적 범죄행위 인정 끌어내

케냐, 민주정부 수립 이후
과거사 조사 등 본격 문제제기
*마우마우 : 케냐 무장독립운동단체

영국 정부가 지난 4월부터 케냐의 무장 독립운동단체인 ‘마우마우’ 관련자들과 피해 배상 협상을 시작했다고 <가디언>, <비비시>(BBC) 등 영국 언론들이 7일 일제히 보도했다.

‘마우마우’는 영국 식민지 시절인 1950~60년대 케냐의 무장 독립운동을 이끈 단체다. 당시 영국은 군대를 투입해 마우마우 관련자는 물론 그 주축을 이루는 키쿠유족을 학살했다. 케냐 국가인권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영국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무력 개입한 1952년 이후 10년 동안 9만여명의 케냐인이 영국 군대에 의해 숨졌고, 16만여명이 수용시설에 감금됐다.

전세계에 걸쳐 광대한 식민지를 지배한 영국이 식민통치 시절의 ‘비인도적 범죄 행위’에 대한 피해 배상을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가디언>은 “이번 협상이 성사되면, 1만명에 이르는 생존 피해자들이 배상 대상이 되고 그 액수는 수백만 파운드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외교부는 “역사에서 기꺼이 배운다는 게 우리의 민주주의가 갖는 일관된 특성”이라며 협상 사실을 인정했지만, 이번 결정은 영국의 ‘시혜’가 아니라 케냐인들의 줄기찬 노력에 힘입은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특히 케냐가 독립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과거사 배상의 동력을 얻어냈다는 점에서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63년 독립한 케냐는 마우마우 지도자이자 초대 대통령인 조모 케냐타의 주도로 마우마우 관련 피해자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신생국의 혼란 속에 유야무야됐고, 1978년부터 집권한 대니얼 아랍 모이의 독재 정권에서 ‘과거사 배상’ 문제는 잊혀졌다.

케냐 민중의 민주화 투쟁 끝에 2002년 야당연합이 집권하자 ‘마우마우 문제’가 다시 등장했다. <가디언>은 “(민주정부가 들어선) 2002년에 비로소 케냐 정부가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케냐의 민주정부는 과거사 청산을 주요 정책 과제로 삼았다. 새로 만들어진 케냐 국가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피해자 조사를 벌였다. 5만여명이 마우마우 관련 피해를 겪었다고 케냐 인권위에 신고했다.

그러나 40여개 종족으로 구성된 케냐의 민주주의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7년 대선 결과를 두고 독재정권 종식을 이끌었던 민주화 세력이 분열했다. 이후 몇년 동안 민주화 지도자 및 종족 간 분쟁이 극심했다. 정부는 다시 마우마우 문제를 뒤로 미뤘다.

결국 2009년 마우마우 관련자 5명이 개인 자격으로 영국 정부를 상대로 하는 피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모두 70~80대가 된 이들 가운데 2명의 남성은 수용소 시절 거세당했고, 1명의 남성은 죽도록 구타당한 뒤 다른 주검들 사이에 버려졌으며, 1명의 여성은 경비원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5명 가운데 1명은 소송 제기 직후 숨졌다.

소송이 제기됐을 때만 해도 영국 정부는 “상호 협의 아래 임시정부를 거쳐 식민통치권을 이양한 만큼 과거사에 대한 책임은 케냐 정부에 있고, 관련 사건은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소송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제동을 건 것은 케냐의 민주정부였다. 2007년 이후 혼란을 겪던 케냐는 2010년 대통령 권한 분산을 뼈대로 하는 개헌안을 처리하며 민주적 안정을 되찾았다. 마우마우 문제도 다시 꺼내들었다. 지난해 케냐 국가인권위는 피해 배상과 사과를 촉구하는 서한을 영국 정부에 발송했다. 세계 여론도 움직였다. 유엔 특별조사관은 데이비드 카메론 영국 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이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며 피해자 배상을 촉구했다.

지구적 압력에 처한 영국 정부는 결국 전향적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3월, 대영제국 시절의 영국 정부 문서를 공개했다. 37개 피식민 국가와 관련된 8000여 문서 가운데는 케냐의 마우마우 관련자를 처형·감금·고문한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가혹행위가 사실로 드러나자 영국 고등법원은 소송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영국 정부의 주장을 기각하고, 마우마우 관련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지난해 10월 판결했다. 결국 지난달 영국 정부는 “소송을 잠시 중단하고 협상하자”고 마우마우 관련자들에게 제안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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