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미봉남’ 계속 유지할듯
MB정부와 대화엔 ‘소극’
“6·15와 10·4선언 이행해야”
MB정부와 대화엔 ‘소극’
“6·15와 10·4선언 이행해야”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등이 주최한 한반도 세미나와 전미외교정책협의회 세미나 등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뉴욕을 방문하고 돌아간 리용호(사진) 북한 외무성 부상이 방미 기간에 가장 많이 강조한 것은 ‘조-미(북-미) 관계 정상화’였다.
리 부상은 12일(현지시각) 숙소인 밀레니엄유엔플라자 호텔을 떠나면서 기자들과 만나 “조-미 사이에 적대관계가 종식되는 것이 기본이며, 이는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리 부상은 세미나에서도 이를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리 부상이 뚜렷이 밝히진 않았지만, 외교정책협의회 세미나에서는 워싱턴과 평양에 서로 연락사무소를 개설하자는 논의도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아들이기로 하는 등 비핵화 사전조처 이행 의지를 강조한 것도 그 종착지는 ‘북-미 관계 정상화’에 맞춰져 있다.
북한은 그동안 북-미 협의나 다자간 회의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 ‘평화협정’을 강조해 왔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미국의 적대적 정책 해소’-‘대북제재 철폐’-‘북-미 관계 정상화’-‘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이라는 4단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기본구상 자체를 바꾼 건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평화협정’ 전 단계인 ‘북-미 관계 정상화’를 앞으로 내세우는 일종의 전술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북한이 남한과의 거리두기를 하려는 의도도 읽혀진다. 평화협정을 언급할 경우, 남한을 배제하고 논의를 진행하긴 힘들다. 하지만 ‘북-미 관계 정상화’ 논의는 상대적으로 한국 정부가 끼어들 틈을 좁히는 효과도 지닌다.
리 부상은 ‘남북대화가 언제쯤 이뤄질 것으로 보느냐’는 물음에 “6·15 공동선언과 10·4 공동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할 의지가 있다면 기꺼이 손잡고 같이 가려 하지만, 아직까진 의지가 없는 것 같다”는 기존 주장을 재확인했다. 최근 한-미 연합군사훈련 등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인사들은 세미나에서 “우리는 ‘통미봉남’이 아니라, ‘통미통남’을 하고 싶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과 밀접한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이 이명박 정부와는 더이상 남북대화를 않고, 차기 정부에서 남북관계를 새로이 시작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처럼 ‘북-미 관계 개선’, ‘한국 정부 소외’라는 일종의 ‘통미봉남’을 사실상 추진하면서 동시에 ‘6자회담 재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리 부상은 애초 중국 베이징-미국 뉴욕 왕복편을 예약했으나 미국 현지에서 이를 취소하고 모스크바로 행선지를 바꿔 러시아와 중국을 잇따라 방문하기로 했다. 이렇게 ‘통미봉남’ 전략에 더해 ‘6자회담 재개 논의’까지 일종의 ‘투트랙 전략’을 시도하는 북한에 대해,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 강화’ 전략으로 맞설 것으로 보이나,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세미나의 북한 쪽 반응에 미국은 상당히 고무적인 인상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김정은 체제가 미국과의 관계 개선과 대화를 강하게 원하고 있다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이란 핵문제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최소한 대선이 끝날 때까지 북한이 핵문제 등으로 분란을 일으키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는데, 이번 리 부상의 방미에서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다만 ‘북-미 관계 개선 먼저, 비핵화 나중’을 주장하는 북한에 맞서 ‘비핵화 먼저’를 강조하는 미국이 향후 북한과의 비핵화 협의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가 주목된다. 이번 세미나에서 미국의 한 유력한 관계자는 북한의 비핵화 수준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뉴욕/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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