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거점 워싱턴 철거시한 넘겨…퇴거싸고 긴장
폭력·성조기 소각 등 “오큐파이 정신위배” 비판 일어
폭력·성조기 소각 등 “오큐파이 정신위배” 비판 일어
지난해 가을,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를 흔들었던 ‘오큐파이’(점령) 시위가 기로에 섰다.
지난해 11월 이후, 경찰의 강제철거 등으로 미 주요 도시의 ‘오큐파이’ 시위대 거점이 거의 사라진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던 워싱턴 디시(DC)의 백악관 주변 맥퍼슨 광장과 프리덤 광장도 30일 철거시한을 맞았다. 미 국립공원관리청은 당초 이날 정오까지 텐트, 취사도구 등 캠핑시설을 철거하지 않으면, 경찰력을 동원해 강제퇴거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날 자정까지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시위대 일부는 이날 오전부터 캠핑 장비를 정리하고 광장을 떠나기도 했으나, 또다른 일부 시위대들은 항의 차원에서 일부러 장비를 들여오고 있으며, 이날 밤까지 광장을 떠나지 않아 긴장감이 감돌았다. 일부 시위대는 광장 한가운데 있는 제임스 맥퍼슨 장군 동상 난간에 올라가 “우리는 멈출 수 없다. 또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시위 주최 쪽인 ‘디시를 점령하라’는 자체 웹사이트에 올린 성명에서 “우리는 행동의 중심으로 이용해 온 공공장소를 사수할 것”이라며 “철거 명령은 표현의 자유를 업악하는 행태”라고 비난했다.
일요일인 29일엔 뉴욕, 필라델피아, 샬롯, 디모인 등 미국내 여러 도시에서 경제적 불평등과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는 ‘오큐파이’ 시위가 열렸다.
이와 함께 지난 28일 오클랜드에서 벌어진 대규모 ‘오큐파이’ 시위로 400여명이 체포되는 사태는 또다른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오큐파이’ 쪽은 “시위대가 스스로 해산하도록 하는 길을 차단했다”는 이유로 이번 대량 체포를 불법으로 규정하며 29일 소송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시위대가 시 소유 건물에 들어가 집기를 집어던지고, 페인트 낙서를 하고, 성조기를 불태운 것에 대해 ‘반달리즘’ 논란이 일면서 언론을 비롯해 전반적인 여론은 대체로 ‘오큐파이’에 우호적이지 않다. 지난해 11월 오클랜드 시위에서 경찰의 강제진압에 대한 비판이 일었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특히 1960년대 미 최초의 대규모 반전 시위를 조직했던 미국의 대표적 신좌파 지식인이자 ‘오큐파이’ 운동을 적극 지지해오던 토드 기틀린 콜롬비아대 교수가 “(오클랜드 시위에서 보였던) 폭력은 (평화적인) ‘오큐파이’ 운동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비판한 것은 논란에 불을 당겼다. 30일 트위터 등에서는 오클랜드 시위에 대한 토론이 격렬하게 일어났는데 성조기를 불태운 것에 대해선 대체로 “너무 나갔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오클랜드 시위대의 일원인 줄리언 루이스-태트만은 <에이피>(AP) 통신에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한다”며 “우리는 낡은 체제를 불태우고, 새로운 나라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해 성조기를 불태운 행위의 상징성을 강조했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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