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FP “기아 인구 60%가 엄마들”
가족 먹이느라 ‘가장 늦게, 적게’
가족 먹이느라 ‘가장 늦게, 적게’
베트남 남부 롱안성의 시골마을에 사는 주부 보티콴(44)은 늪지에서 자라는 싸구려 채소를 튀겨 네 식구의 단출한 저녁식탁을 차린다. 그가 차린 식탁에서 생선이나 육류가 사라진 지 오래다. 보티콴은 대다수 빈곤 가정의 여성들이 그렇듯, 가장 나중에 먹고 가장 적게 먹는다. 때론 다음날 아침을 위해 그렇잖아도 적은 자기 몫을 덜어놓기도 한다. 고철을 주워 팔아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그에게 이런 식사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세계 식량값이 고공행진을 지속하면서, 가난한 나라의 저소득층, 특히 엄마들이 가장 굶주리고 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14일 보도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매일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잠자리에 드는 세계 인구의 60%가 엄마들이라고 지적한다. 세계은행의 이코노미스트인 하산 자만은 “엄마들은 아이들과 남편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끼니를 거르거나 자기 식사량을 줄인다”고 말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최근 몇달새에 식량값 폭등으로 전세계에서 6400만명이 빈곤선 아래로 전락한 것으로 추산했다.
보티콴 식구의 저녁상차림 비용은 2만7000동(약 1430원)에 불과하지만, 이것도 지난해보다 20%나 오른 것이다. 육류는 1년에 딱 한번, 설에만 먹는다. 보티콴은 “내 자녀들도 나와 같은 삶을 사는 걸 원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얼마든지 나를 희생할 수 있다”며 현실을 감내한다.
가난한 임신 여성들의 모성 건강도 심각하다. 산모가 값싸고 질이 낮은 음식조차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는 탓에, 신생아도 발육상태가 양호하지 못하거나 저체중으로 태어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 7일 보고서에서, 세계 곡물값이 지난 2월 사상 최고를 기록했으며 내년까지도 고공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 기구의 시장교역분과장인 데이비드 할람은 “세계 곡물·식량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저소득 식량부족국가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식량농업기구의 식품가격지수는 232포인트로, 지난해에 견줘 37%나 급등했다. 이에 따라 올해 저소득식량부족국들의 식량 수입 비용도 예년보다 30%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주요 20개국(G20)은 오는 22~23일 프랑스 파리에서 농업장관 회의를 열어 식료품값 및 식량수급 안정화 방안을 모색한다. 이 회의에선 각국의 식량 생산 및 재고량과 가격 정보를 수집, 분석하는 ‘농업시장 정보 시스템’(Amis)을 구축하기 위한 세부 사항이 논의될 예정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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