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군 기지가 진원지” 소문에 유엔군과 총격전도
올초 25만명이 숨지는 최악의 지진 참사에 이어 콜레라가 창궐한 아이티에서, 유엔평화유지군을 콜레라의 진원지로 지목한 폭력시위가 수도 포르토프랭스까지 번지면서 구호활동에 차질이 빚어지는 등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포르토프랭스에선 18일 시위대 수백명이 “유엔이 콜레라를 들여왔다. 유엔은 물러가라”고 외치며 유엔평화유지군 기지에 돌을 던지는 등 수시간 동안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도로에 쓰레기와 타이어로 바리케이드를 쌓아 불을 붙였으며 드문드문 총소리도 들렸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전했다. 아이티 북부 카프 아이시앵에선 지난 15일 시위대가 유엔주둔군과 총격전을 벌여 2명이 숨진 데 이어, 17일에도 1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
아이티는 오는 28일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있어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18일 포르토프랭스 시위에 참가한 한 초등학교 교사(38)는 “인프라도, 교육도 없는데다, 콜레라가 국민을 피폐하게 하는데 대통령은 아무런 말이 없다. 유엔아이티안정화임무단(MINUSTAH)도 평화 유지는커녕 상황을 악화시켜 아이티 국민을 죽이고 있다”며 유엔과 정부를 싸잡아 비난했다. 르네 프레발 아이티 대통령은 시위대에 진정할 것을 호소하는 한편, 선거를 앞두고 콜레라를 틈탄 혼란으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유엔이 시위 대상이 된 것은 유엔평화유지군 소속 네팔군 기지의 정화조에서 나온 오폐수가 주민들의 주요 식수원인 아르티보니트강으로 흘러들면서 콜레라가 발병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다. 유엔 당국은 네팔 군인들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했으나 콜레라를 의심할 단서는 없었다고 밝혔다.
범미주보건기구(PAHO)의 아이티 지원단장인 리아 귀도 박사는 “이번 주 내내 구호 현장에 보급품을 가져다줄 수 없었다”며 “콜레라 치료는 간단하지만, 현장에 접근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아이티에선 19일 현재 콜레라 사망자가 1100명을 넘어섰고, 환자는 1만8000명에 이른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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