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1만2000여명 피랍
무장조직 돈줄 되기도
무장조직 돈줄 되기도
지난 5월 괴한들에 납치됐던 페르난데스 데 세바요스 멕시코 전 대통령 후보가 최소 2000만달러의 몸값을 지불한 뒤 다음달 풀려날 것으로 보인다고 현지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지난달엔 멕시코 휴양도시에서 여행객 22명, 니제르에선 프랑스 원전 회사 직원 7명이 각각 납치됐다. 8월엔 수단 다르푸르에서 러시아인 조종사 3명, 말리에서 스페인 구호활동가 2명, 4월엔 콩고에서 적십자 활동가 8명이 각각 무장괴한들에 납치됐다가 대가를 지불하고 풀려났다.
지구촌 곳곳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납치극이 이제는 숫제 ‘인질 산업’(hostage industry)이 됐다. 애초 반군이나 저항세력의 정치적 이유나 포로 교환이 목적이던 납치가 점차 돈벌이 수단으로 상업화하면서 몸값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17일 보도했다.
해적으로 악명 높은 소말리아에서만 매달 평균 106명, 전세계적으로 매년 1만2000여명의 노동자·관광객·외국인 구호요원들이 납치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질들의 평균 몸값은 160만달러, 연매출 규모는 최소 15억달러(약 1조6800억원)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나 이라크 무장세력은 자금 조달 수단으로 인질을 활용한다. 2004년 이래 이라크에서만 외국인 200여명과 자국민 수천명이 납치됐다.
각국 정부는 “납치범들과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게 공식 입장이지만, 대부분은 뒤로 대가를 지불하고 인질을 빼오는 실정이다. 지난 8월 스페인 정부는 모리타니에서 알카에다에 9개월 동안 납치돼있던 자국민 2명의 몸값으로 790만달러의 거액을 지불했다는 보도가 나와 곤경을 치렀다. 문제는 인질의 안전하고 신속한 석방을 위해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몸값을 제때 받지 못하거나 금액이 적다는 이유로 인질을 살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나 기업, 개인이 비밀리에 몸값을 부담하는 방식은 납치 산업을 더욱 키울 뿐이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 필요성도 제기된다. 레바논에서 납치된 지 4년만에 풀려난 경험이 있는 테리 웨이트 영국 성공회 대주교 특사는 “유엔이나 적십자사의 감독을 받는 비영리 독립기구가 인질 협상을 전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