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전 만나 평화협상 논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일부 최고위급 지도자들이 28일 영국 런던에서 아프간 지원국 국제회의가 열리기 3주 전에 유엔 고위관리와 비밀리에 접촉해 탐색전을 벌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탈레반 사령관들은 지난 8일 두바이에서 카이 에이데 유엔 아프간 특사와 만나 평화협상 조건을 논의했다고 <로이터>통신이 28일 보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유엔 관리들의 말을 빌어 “탈레반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퀘타 슈라’의 일부 지역 지휘관들이 평화협상을 논의하기 위한 만남을 제의해 왔다”며 접촉 사실을 확인했다. 익명을 요구한 유엔 관리들은 “탈레반 지휘관들은 향후 대중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신변보호를 원했으며 바그람 수용소 같은 곳에 갇히지 않길 원했다”고 밝혔다. 탈레반 지휘관들이 무장투쟁을 포기하는 대가로 신변보호를 요구한 것은, 바꿔 말하면 무장투쟁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자신들의 운명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탈레반 수뇌부와 유엔의 대면 접촉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탈레반 무장세력에 돈과 일자리를 제공하고 사면을 거쳐 아프간 정치권에 포용하겠다는 아프간 정부와 미국의 유화 전략이 막후 예비협상을 통해 사전 조율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카이 에이데 특사는 예비회담에 대한 언급 자체를 거부했다.
탈레반은 공식적으로는 “런던회의가 결과 도출에 실패했다”며 “이슬람 무자헤딘의 목표가 물질적인 것이었다면 애초부터 침략자 지배를 인정했을 것”이라며 돈과 일자리 제의를 일축했다. <가디언>은 그러나 양쪽의 이번 사전접촉은 2008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재로 몇차례 열렸다가 깨진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의 평화협상이 재개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엔 관리들은 “당시 회담 이후 아직까지 추가 접촉은 없었다”면서도 “우리가 물꼬를 텄으니, 아프간 정부가 이를 활용해 후속협상을 잘 해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7일 유엔 이라크 특사를 지낸 스타판 디 미스투라를 지도력 갈등을 빚어온 카이 에이데의 후임인 새 유엔 아프간 특사로 임명했다. 미스투라 특사는 3월1일 현지에 취임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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