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콜로라도주에 사는 밴두저 부부는 아이티의 7살 여아의 입양을 기다리던 중 지진 소식을 들었다. 부부는 아이의 생사 여부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다가, 지진 발생 닷새만에야 아이의 생존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이들 부부와 아이의 경우는 행운에 가깝다.
사상 최악의 아이티 지진 참사는 특히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더욱 암울한 처지로 몰아가고 있다. 세계 각국이 입양 캠페인과 입양절차 간소화 등을 통해 아이티 고아 돕기에 발벗고 나섰다. 그러나 무차별적인 입양이나 국외이주는 아이들을 사회부적응이나 피랍, 학대 등 또다른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월드팩트북에 따르면, 지난해 말 아이티 인구 900만명 중 14살 이하 어린이는 약 344만명이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는 지진이 나기 전 아이티 고아를 38만명으로 추산한다. 10명 중 1명 꼴이다. 이번 지진으로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날 게 분명하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18일 <시엔엔>(CNN)에 “입양 예정아들의 생사 여부와 신원을 확인하고 서류작업을 최대한 신속히 진행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닛 나폴리타노 미 국토안보부 장관도 이날 “아이티 고아들이 필요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주의적 후견인들이 이들을 미국으로 데려오는 것을 한시적으로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17일에는 아이티 입양아 1진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에 도착했으며, 18일에도 입양기관 관계자들이 100여명의 아이티 고아들을 데려오기 위해 아이티로 향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전했다. 캐나다는 출입국관리 당국에 아이티 입양아 입국을 위한 비자 발급을 최우선 순위로 처리할 것을 지시했다. 프랑스 입영당국에도 1200~1500가구에 이르는 양부모들로부터 입양예정 어린이의 생사를 확인하는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이티의 행정체계가 완전히 파괴되고 입양서류들이 훼손돼 정상적인 법절차를 거친 입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의 입양기관협의체인 국제아동복지공동협의회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어린이들을 무차별적으로 미국에 데려오거나 입양하는 것은 아동 관련 사기, 학대, 밀거래 등 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네덜란드 당국은 18일 “우리는 아이티 거리에서 아무 어린이나 골라 입양하지는 않는다”며 신분이 확인된 고아만 법적 절차를 통해 받아들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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