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사태진정 뒤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우려
아이티를 강타한 지진의 참상은 폐허로 변해버린 거리, 여기저기서 썩어가는 주검들, 죽어가는 부상자들, 구호품 차지 다툼과 울부짖는 어린이들이 전부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측정할 수도 없는 피해, 즉 살아남은 사람들이 겪은 엄청난 충격과 공포가 남길 후유증 역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보건 전문가들은 아이티의 지진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된 이후에도 생존자들은 악화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리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 인터넷판은 17일 “이라크나 아프간 참전군인 뿐 아니라 9.11 테러와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미국인들이 익숙하게 된 우울증, 공포감, 무기력감, 수면장애, 약물중독 등의 증상을 아이티의 생존자들 역시 겪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조앤 쿡 미국 예일대 교수는 “아이티 지진 피해자들의 심리충격 발생률이 과거 빈곤국들의 자연재해 당시와 비슷하다며 최소 50% 이상의 주민들이 조만간 의학적으로 심각한 정신장애를 호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세계 각국이 파견한 구호팀과 의료진에는 정신질환 전문가들도 포함돼 있지만, 정작 살아남기에 발버둥치는 아이티 현지인들에게 정신과 상담은 상상할 수도 없는 ‘사치’다. 아이티 출신의 미국 심리학자인 마리 니콜라 게르다는 “심리적 충격은 사태가 진정된 뒤 몇 달 뒤에 나타나기 시작한다”며 “피해자들은 아이티에서 ‘라코우’로 알려진 방식, 다시 말해 아이티 문화의 핵심 중 하나인 친구와 이웃 등 인간관계망의 복원과 확장에 의존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마이애미 밀러 의대의 다니엘라 데이비드 임상심리학 교수도 <시엔엔>(CNN) 방송에 “초기 구호가 진행되고 사람들이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시작할 즈음에 심리학적 후폭풍이 사람들을 덮쳐올 것”이라며 “그럴 경우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