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의 강진은 해마다 허리케인과 홍수로 수천명의 사망자와 이재민을 내고 있는 카리브해의 최빈국을 더욱 참담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아이티는 1492년 콜럼버스가 첫 상륙한 이스파뇰라섬의 서쪽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고(동쪽 3분의 2는 도미니카 공화국), 약 2만7000㎢의 면적에 9백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프랑스가 1697년 섬 서쪽 3분의 1을 스페인으로부터 양도받으면서 18세기 한때 노예노동에 의한 사탕산업으로 카리브해 지역에서 가장 잘 사는 지역이기도 했다. 또 노예혁명으로 독립을 쟁취한 중남미 최초의 독립국가(1804년)라는 자랑스런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1915~1934년 다시 미국의 식민지가 됐던 것을 포함해 프랑스와 미국의 개입 속에 계속된 정치불안과 잇단 자연재해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듀발리에 가문의 장기 군사독재(1957~1986년) 이후 민선 대통령으로 선출된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가 1995년과 2004년 두차례 군사 쿠데타로 축출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2004년부터 이 지역엔 유엔지원군이 파견된 상황이다.
국토의 60%가 산악인 아이티는 원주민말로 ‘높은 산의 땅’이라는 의미이지만, 계속된 산림채벌의 결과로 단 2%의 산림만 남아있어 토양은 ‘진흙케익’으로 불릴 정도로 황폐해진 상황이다. 매해 허리케인이나 열대성저기압이 통과할 때면 어김없이 대규모 홍수를 겪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4년 홍수로 3000명이 사망했고, 4개의 허리케인이 휩쓴 2008년엔 공식통계로만 3백명이 죽고 8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후 식품과 연료값 폭등으로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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