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마르친 쿨라(Jan Marcin Kula) 폴란드 바르샤바대 교수. 사진 조일준 기자.
[얀 마르친 쿨라 바르샤바대 교수 인터뷰]
“자본주의 단점 보완하고 균형외교 펼쳐야”
“자본주의 단점 보완하고 균형외교 펼쳐야”
[베를린장벽 붕괴 20년] 역사의 현장을 가다
② 폴란드, 연대노조의 터전 그단스크 레닌조선소 바르샤바 대학교의 얀 마르친 쿨라(Jan Marcin Kula) 교수는 역사학자이자 동유럽 현실사회주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쿨라 교수는 체제 전환 이후 20년 동안 경제적 발전은 이뤘으나 정치적으론 여전히 미숙함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대다수 사람들의 관심이 당장의 경제문제에 집중되면서 정치와 역사에는 큰 관심이 없이 살아가는데, 이것이 오히려 경제적 성숙함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폴란드의 외교안보정책에 대해서도 친미·친서방에 쏠릴 것이 아니라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등 균형잡힌 정책을 추구하는 게 이롭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 19일 바르샤바대 캠퍼스에서 이뤄졌다. -꼭 10년전인 1999년 당시 폴란드 국회의장 마치에이 프와진스키는 “지난 10년은 폴란드 역사 전체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이었다고 공개적으로 단언했다. 그의 주장은 조금 과장됐지만, 대체로 공감을 얻었다. 그 뒤 다시 10년이 흘렀는데, 지난 10년도 좋은 시절이었는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폴란드인들은 아주 부러워했다. 여기서 말하는 10년을 어떤 시간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대답은 달라진다. 개방과 경제적 성취만을 보면 비교적 만족할 만한 시간이다. 폴란드는 연대노조와 공산집권세력과의 정치협상을 통해 부드럽고 평화적인 체제이행을 했다. 급격한 변화는 없었지만 공산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변화를 이끌어낸 점은 긍정적이다. 변혁 과정이 구체제 기득권층에 대한 보복이 없고 평화적이었다는 점은 장점이다. 그러나 과거 독재에 대한 단죄가 없었던 까닭에 변화가 정확한 구분되지 않은 채 모호한 성격을 띠게 됐고, 옛 공산정권 시절 엘리트들의 활동과 영향력이 지속된 점은 단점이다. 길게 보면 폴란드의 지난 100년 역사는 독재와 공산 체제에 대항한 민주화의 싸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적 권력다툼으로 변질됐다. 의료보건 분야, 그리고 경제활동의 인프라인 고속도로 건설이 기대와 달리 지지부진한 것도 문제다. -폴란드는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에 앞서, 이미 그 해 2월에 공산당 집권세력과 연대노조가 원탁회의를 열었고 6월 총선에서 선거혁명을 이뤘다. 20년 전 성취에 대한 자부심과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 사이에 어떤 괴리감 같은 것이 있는가? =공산시절에도 폴란드 공산주의는 상대적으로 부드러웠다. 1953년 옛 소련의 스탈린 사후에는 압제가 약화되면서 이주노동이나 탈출도 공공연했다. 공산주의 시절에 직업과 임금이 보장됐던 것에 대한 동경도 있다. 체제전환 직후인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가 바라는 자본주의가 이것이 아닌데…”라는 정서가 있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로 그런 시절은 지났다. 옛날의 시위는 체제를 바꾸자는 시위였지만, 지금은 주로 노동환경 개선과 임금 향상을 위한 시위여서 성격이 다르다. 공산 시절엔 이념의 변화를 원했고, 지금은 이념이 아닌 생활의 변화를 원한다. 이처럼 너무 현실적 가치에만 집착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면도 있다.
-러시아에 대한 폴란드인들의 반감을 이해한다치더라도, 폴란드의 친미·친서방 노선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다.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한 이듬해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도 했는데? =아주 어려운 질문이다. 역사학자로서 답변하겠다. 폴란드는 역사적으로 늘 서유럽과 동유럽의 경계에 있었다. 러시아와의 관계는 항상 어렵고 위협적이고 경계의 대상이었다. 특히 1999년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세력 확대를 위한 여러 정치·군사적 조처를 취할 당시 폴란드는 아주 큰 위협을 느꼈다. 이상적인 해결책은 정치외교적 관계 개선이지만, 러시아의 진의를 파악하고 난 이후라야 가능했다. 그러나 당시 정치 엘리트들은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서유럽 국가에 도움을 청하는 것을 꺼려하거나 심지어 믿지 못했다. 남은 나라는 미국 뿐이었다. 폴란드와 미국간의 관계가 특별히 좋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데다, 오랫동안 새겨진 아메리칸 드림의 영향도 컸다. 그러나 지금의 대미 의존은 과도한 것 같다. 국가간 이해관계는 ‘기브 앤 테이크’이므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 내가 만일 외무부 장관에게 충고할 자격이 있다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미국과의 관계 유지, 인근 유럽국과의 돈독한 우호 관계 등을 주문하고 싶다. 폴란드가 서유럽 국가들과의 관계를 더욱 개선함으로써 체코,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등 러시아 영향이 큰 인접국과의 관계도 더욱 개선될 것이다.
얀 마르친 쿨라(Jan Marcin Kula) 폴란드 바르샤바대 교수. 사진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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