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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삶의 안정감 잃어” vs “개인 가능성 발휘”

등록 2009-10-29 21:01수정 2009-10-29 23:56

20~50대의 바르샤바 시민들은 체제전환 전후에 대해 조금씩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왼쪽부터 레섹(53)  도미니크(28)  바르텍(37)  카샤(32) 엘리자비에타(50).
20~50대의 바르샤바 시민들은 체제전환 전후에 대해 조금씩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왼쪽부터 레섹(53) 도미니크(28) 바르텍(37) 카샤(32) 엘리자비에타(50).
[베를린장벽 붕괴 20년] 역사의 현장을 가다|‘20년 변화’ 세대별 시각차
② 폴란드, 연대노조의 터전 그단스크 레닌조선소
바르샤바 중앙역을 나오면 길 건너편에 웅장한 러시아풍의 고층건물이 눈길을 잡아끈다. 옛소련의 스탈린이 지어준 문화과학궁전이다. 1989년 체제 전환 직후 폴란드는 이 건물도 부숴버리려다 포기하는 대신, 주변에 다른 고층건물들을 세워 눈에서나마 가리려 했다고 한다. 호텔과 쇼핑몰 등 초현대식 빌딩들이 그렇게 문화과학궁전 주변에 들어섰다.

지난 19일 복합쇼핑몰 골든테라스에서 만난 마렉 그롱치키(53)는 20년전 국영 항공엔진업체에서 일했으나 지금은 일용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5남매를 둔 그는 “일을 하고 싶은데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가 너무 어렵다”고 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옛날이 더 좋았다. 지금은 돈 많은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나뉘고 중산층이 없어졌다”며,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보였다. 옛 공산정부가 발행한 신분증 수첩이었다. “기념으로 갖고 있다”는 그는 “지금은 사람들이 물질만 추구한다. 일부 젊은 여성들은 몸을 팔아서까지 갖고 싶은 물건을 사려 한다”고 한탄했다.

폴란드 안에서 20년의 변화를 바라보는 세대간의 인식 차이는 뚜렷하다. 한쪽에 사라져버린 가치와 안정된 일자리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면, 그 맞은편엔 민주화로 얻어낸 삶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지난 19일 바르샤바의 한 커피숍에서 20대에서 50대까지의 시민 7명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았다. 레섹, 올가, 다니엘, 도미니크, 바르텍, 카샤, 엘리자비에타, 아그네시카 등 일가 친족과 연인들이다.

먼저 체제 전환 이후 달라진 점을 들어보았다.

레섹(53)=옛날엔 나라가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생활이 안정적이었다. 체제 전환 이후 그런 게 싹 사라지고 변화에 위협을 느꼈었다.

엘리자비에타(50)=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산 시절엔 가게에 물건들도 없고 외국에 나살 수도 없었다. 개인이 능력을 발휘할 수도, 인정을 받을 수도 없었다. 체제가 바뀌어서 개인들이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바르텍(37)=공산 시절에 10대를 보냈다. 당시를 돌아보면 사회보장제도는 좋았는데 체제전환으로 그런 게 약화됐다. 반면, 서방세계를 접한 이후 사람들의 삶엔 더 많은 가능성이 열렸다. 장단점과 양면성이 있다.

올가(23)=공산체제를 경험하지 못했지만 웃사람들에게 그 시절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 들었던 기억들이 있다. 지금은 능력껏 일하고 투자한만큼 얻을 수 있다. 옛 체제에선 가족들이 함께 지내는 시간이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만큼 많았고 여유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점은 좋지만, 다른 것들은 매력적이지 않다.


다니엘(30)=옛날엔 자신과 가족을 배려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집도 신청하면 공짜로 제공됐지만 기다렸다가 20년 뒤에나 받는다. 지금은 당장 집을 구할 수 있고 20년 뒤에 갚을 수 있는 게 변화다.

올가(23)= 학교수업이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베를린 장벽 붕괴 전후에 대해 단편적으로 배운다. 그 인상은 차갑고 자유가 없고 묶여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지금 젊은 세대는 그 시절을 직접 살아보지 않아 논쟁을 피하려 한다.

다음엔 폴란드 체제전환의 상징인 연대노조에 대해 묻자 한순간 좌중이 출렁였다.

리섹(53)=베를린 장벽도 유럽 공산권 붕괴에 큰 역할을 했지만, 폴란드 자유노조가 그 10년전부터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전 동유럽에 자유의 물결이 가능했다. 우리도 1980년대 자유노조 운동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지만 당시엔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바르텍(37)=연대노조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정치적 의미인데 1999년 이후론 희미하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 의미다. 체제전환이 완료된 지금은 노동자 이익을 대변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게 더 중요하다.

아그네시카(49)=레흐 바웬샤가 연대노조 지도자였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자유의 의미에 불씨를 던졌다. 폴란드에 여러번 방문해 연대노조에 큰 힘을 실어주고, 폴란드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연대노조 운동의 성과는 바웬샤의 지도력과 교황의 지지가 합쳐진 결과다.

올가(23)=옛 체제가 모든 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본다. 되살리거나 보존됐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가치들도 많다. 사상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을 보존됐으면 좋지 않을까. 당시 포스터나 기록물 등 공산주의 냄새가 물씬 나는 것들을 보면 생소하지만 재미있다. 학교 식당에서 공산당원 출신의 할머니가 패스트푸드가 아닌 따뜻한 음식을 날라주는 넘치는 풍경에서 인간미가 있었던 분위기를 상상해본다.

바르샤바/글·사진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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