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국 원조 자취 감춰…식량 가격 불안정 여전
올해초 천정부지로 치솟던 곡물가 급등세는 한풀 꺾였지만, 경제 원조에 의존하는 빈곤국들의 한숨 소리는 깊어지고 있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경제위기 속에 빈국에 대한 경제 원조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11일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식량 배급을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곡물 배급을 한 명당 12㎏에서 10㎏으로, 콩 배급도 1.8㎏에서 1㎏으로 줄이기로 했다. 에밀리아 카셀라 대변인은 “지난달 국제사회에 요청했던 1억4천만달러 규모의 공여금 가운데 실제 들어온 것이 하나도 없다. 이대로 가면 내년 1~2월에 짐바브웨에 지원할 수 있는 식량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짐바브웨에서 지난달 200만명 규모였던 식량 지원 대상은 내년 초 510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현재 배급량을 줄여서라도 기간을 늘려보자는 고육책이 나온 셈이다. 카셀라 대변인은 “다음 추수기가 넉달 반이나 남아있다”며 “현금 공여를 식량화해서 직접 지원하는 데 6~8주가 걸린다. 공여금이 시급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하루 한 차례밖에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가정이 나타났고, 어린이들이 먹을 것을 찾아 밀림 속을 헤메는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상반기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다가 최근 급락한 식량 가격의 불안정성이 심한 탓에, 내년도 식량 수급 전망은 한층 어두워졌다. 식량농업기구(FAO)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곡물 가격이 고점 대비 50% 가까이 떨어졌으며, 각국은 농업 생산량을 줄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지금 같은 가격 불안정성과 유동성 환경이 내년까지 계속되면 2009~2010년 기간에 가격 급등세가 다시 나타날 수 있다”며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빈국들은) 적정량의 식량을 사지 못할 것이고, 때문에 식량 소비량을 줄여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은행은 11일 개발도상국들이 금융위기의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 앞으로 3년 동안 1천억달러를 지원할 계획이라며, 아프리카 39개국 등 세계 79개국에 대한 무이자 장기 대출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발도상국들의 경제 성장 전망치는 6.4%에서 4.5%로 낮춰잡았다. 경제성장률이 1%가 낮아질 때마다 2천만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한다는 설명이 붙었다. 로버트 졸릭 총재는 “금융위기를 논의하기 위해 주요·신흥 20국(G-20) 지도자 회의에 참석하는 지도자들은 인도적 위기를 외면해선 안 된다. 언제나 그랬듯이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것은 가장 가난한 이들과 약한 이들이다”라고 말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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