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닛 “정부감독 늘며 정치안정 타격” 분석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금융 위기가 과연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체제마저 뒤흔들게 될까? <이코노미스트> 계열의 연구조사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27일 낸 분석자료에서 현재 금융 위기가 자유 시장자본주의의 신뢰를 무너뜨릴 가능성이 크고, 때문에 민주주의 전통이나 문화가 취약한 신흥국의 정치 문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해석했다.
우선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는 밀접한 관계가 있고, 지금처럼 대책 마련에 앞장선 국가가 규제와 감독을 휘두르면 정치 자유도 제한될 수 밖에 없다는 논리가 근거로 제시됐다. 경기 후퇴 탓에 사회 불안이 팽배하면, 특히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민주화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이유다.
선진국에서도 경제 불황 속에서 극우 정치단체들이 활발해지고 반이민자 정서가 확산되면, 테러 위협이 높아지고 국가권력의 통제도 강해져 시민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나치정권도 1차대전으로 황폐화된 패전국 독일에서 태동했다.
인텔리전스 유닛이 각 나라의 민주화 정도를 표시하는 척도로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는 지난 2년 동안 정체돼 있다. 중동 나라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민주화 압력은 성과를 얻지 못했고, ‘색깔 혁명’으로 민주화 조짐을 보이던 독립국가연합(CIS) 나라들도 답보 상태라는 평가의 결과다. 러시아 정권의 권위주의적 경향이나 동유럽의 불안정한 정권, 남미의 포퓰리즘 정권 모두 성숙한 민주주의라고 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앞으로 금융 위기의 정치적 타격이 예상되는 ‘불완전 민주주의’ 지역들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틀로는 경제 위기가 종종 권위주의 정권의 붕괴로 이어지는 과정은 설명하기 힘들다. 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독재정권이 무너진 게 대표적인 예다. 이 기관의 이른바 ‘민주주의 지수’는 정부의 규제와 반비례하도록 설계돼 있어, 최근 많은 나라들이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투입한 공적자금이 ‘비민주화’로 나타나는 한계도 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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