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아티사리는
2차대전 뒤 강제이주 ‘쓴맛’
IRA·아체 등서 평화 중재
2차대전 뒤 강제이주 ‘쓴맛’
IRA·아체 등서 평화 중재
“국제분쟁 해결을 위해 30여년 동안 여러 대륙에 중요한 기여를 한 공로.”
10일 마르티 아티사리 전 핀란드 대통령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노벨위원회가 밝힌 이유다. 올해 71살인 ‘외교 노장’ 아티사리는 이 말대로 인생의 절반을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대륙의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보냈다. 북아일랜드에서부터 인도네시아 아체지방, ‘발칸의 화약고’ 코소보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분쟁사마다 평화의 중재자로 이름을 남겼다.
그가 평화를 위해 노력하게 된 기원은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태어나 청소년기까지 보냈던 비푸리(지금의 비보르크)는 2차 세계대전을 겪은 뒤 옛소련의 영토가 됐고, 40만명의 핀란드인이 카렐리야로 강제 이주해야 했다. 그도 난민으로 강제 이주됐다. 그는 그때의 경험이 “평화를 증진하고 남을 도와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얘기해 왔다고 <데페아>(dpa) 통신은 전했다.
1959년 초등학교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외교관으로 진로를 바꿨다. 본격적인 평화 중재자로 나선 것은 36살이 되던 73년이다. 그는 탄자니아 대사로 아프리카 현실에 눈을 떴고, 이후 유엔에서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독립을 위한 활동을 진두지휘했다. 91년부터 4년간 외무장관을 거쳐 94년 핀란드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참신한 인물로 떠오르며 당선됐다. 6년의 대통령 활동을 마치고 퇴임한 뒤엔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등으로부터 자리를 제안받기도 했으나 고사하고, 헬싱키에 비정부기구인 ‘위기관리이니셔티브’(CMI)를 열어 국제분쟁 해결에 주력했다.
99년엔 당시 러시아 총리,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코소보 문제 해결책을 입안해,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당시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의 동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2005년엔 인도네시아 정부와 아체 반군의 수십년에 얽힌 분쟁을 종식시키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 2007년에는 이라크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분쟁 해결을 위한 비밀회담을 핀란드에서 성사시키기도 했다. 지금까지 분쟁 중재 가운데 무엇이 가장 큰 성과냐는 질문에 그는 아체와 코소보 분쟁을 꼽았다. 또,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나미비아 문제를 지목하기도 했다.
한편, 수상자가 발표되기 전까지 중국의 반체제 인권운동가들인 후자와 가오즈성이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됐다. 이에 대해 중국 당국은 “노벨 평화상이 세계 평화와 인권 향상을 촉진하려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상은 결국 반체제 운동가들에게 가지 않았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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