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더치셸, 36년만에 유전 투자·개발 나서
영국·네덜란드계 석유회사 로열더치셸이 석유 매장량 세계 3위의 이라크에 다시 진출했다. 사담 후세인 세력에 쫓겨난 지 30여년 만에 이뤄진 ‘석유메이저(서방 거대석유회사)의 귀환’이다.
후세인 샤리스타니 이라크 석유장관과 로열더치셸 경영진은 다음달 초부터 남부 바스라주 유전의 천연가스에 투자·개발하는 합작회사를 꾸리기로 22일 서명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이 회사에는 이라크 정부가 51%, 셸이 49%를 출자한다.
외자 유치가 절실한 이라크 정부는 반색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 유전에서 추출한 천연가스 대부분은 셸 쪽에 판매하나, 일부는 국내 발전소와 석유화학공장 등을 위해 사용하게 된다. 설비 부족으로 날마다 4천만달러 상당의 천연가스를 내버리는 현실이 개선될 것이란 기대도 높다. 지난달 이라크 정부가 중국 국영 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와 30억달러 규모의 남부 아다브 유전 개발에 합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97년 후세인 정권과 체결했으나 전쟁 때문에 취소됐던 계약마저 새 정부가 되살린 것이다.
36년 만에 이라크 사업 재개에 성공한 셸 쪽도 당연히 기꺼운 표정이다. 쿠데타로 집권한 후세인 당시 부통령이 70년대 초 석유기업 국유화를 밀어붙이면서, 셸을 비롯해 비피(BP), 엑손모빌, 토탈 등 석유메이저들은 줄지어 사업을 접고 떠났다. 현재 이라크 주요 유전 6곳의 개발을 위해 전 세계 30여개 회사들이 입찰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결과는 내년 발표된다. 유가 상승에 따른 산유국 국영기업의 득세와 북해 유전 고갈 등으로 시장 영향력을 잃고 있는 석유메이저들로서는 이라크 정부의 조처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셸 쪽은 이라크 치안상황이 개선돼 사무소 개설이 가능했다고 밝히면서도, ‘만일의 위험’에 대비해 사무소의 위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라크에선 이날 하루에만 모술 인근에서 축구를 하던 어린이 5명이 지뢰를 건드려 숨지고, 바그다드에서 교전 중이던 미군 1명이 총에 맞는 등 11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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