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이명박 정부가 출범 100일 만에 위기를 맞은 가운데 ‘신흥 경제’의 상징이었던 동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정치적 리더십도 위기에 내몰렸다. 타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필리핀 등 21세기 아시아의 대표적인 신흥 경제국들의 정권은 격렬한 시민 저항에 부딪치며 퇴진 요구에 맞닥뜨렸다. 출범한 지 몇 달 안 된 타이·말레이시아의 새 정부도 전례 없는 반정부 정국에 갇혔다.
기름값 보조금 삭감과 함께 지난달 시작된 4s인도네시아]의 반정부 시위는 경찰에 체포된 시위 대학생이 지난 20일 사망한 뒤 한층 격화됐다. 24일 1천여명의 시위대가 수도 자카르타의 의사당을 둘러싼 경찰에게 돌을 던지고, 시내 곳곳에서 정부 소유 차량을 불태웠다고 <시엔엔>(CNN) 방송이 목격자들의 말을 따 전했다.
지난달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숨진 내셔널대학(UNAS) 학생 마프투 파우지(27)는 연행 과정에서 경찰의 진압봉에 얻어맞았으며 조사 도중에도 구토·두통 등 증상을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7일 의식을 잃은 뒤 결국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병원 쪽은 사인을 ‘에이즈’라고 발표했다. 부검을 실시한 경찰도 ‘면역력 약화’가 사망 원인이었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격렬히 항의하며 날마다 추모집회를 열고 있다. 의학계·인권단체 등 각계각층에서는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4s말레이시아]의 ‘만년 여당’ 국민전선(BN) 연립정부도 지난 3월 새롭게 임기를 시작한 압둘라 바다위 총리 퇴진 주장이 나올 정도로 위태롭다.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가 이끄는 야당은 물론, 집권 연정 일각에서도 압둘라 총리 불신임 투표를 추진했다. 말레이시아 정국 불안의 원인 또한 집권 압둘라 정부가 실시한 기름값 보조금 삭감이다. 휘발유값은 41%, 경유값은 63%가 올랐고, 물가도 자연 큰 폭으로 뛰었다.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는 대규모 집회·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야당에 개헌 저지선을 내줬던 국민전선의 ‘사상 최악의 성적표’도 압둘라 정부의 힘을 잃게 만들고 있다.
4s타이]에선 피플파워당(PPP)이 주도하는 집권 연정이 출범한 지 다섯 달도 채 되지 않아, 야당 쪽에서 총리·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불신임 표결은 이번주 안에 실시될 전망이다. 가결되면 내각이 총사퇴해야 하고, 부결되더라도 야당 쪽은 좀처럼 퇴진 요구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인 피플파워당은 2006년 부패 혐의를 받아 쿠데타로 쫓겨난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세력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이 때문에 도시 중산층을 중심으로 ‘부패를 물려받아선 안 된다’는 야당의 주장이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 최근 물가 상승에 대한 사막 순타라웻 총리 내각의 미숙한 대처도 국민적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4s인도]의 집권 좌파 진보연정(UPA)의 만모한 싱 총리와 치담바람 재무장관은 우파 야당인 힌두민족주의 정당 인도인민당(BJP)으로부터 맹렬한 퇴진 압력을 받고 있다. 싱 총리 정권은 독립 이후 가장 성공적인 경제 성장으로 인도를 중국과 어깨를 견주는 신흥 경제국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최근 11.05%라는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은 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 이는 지난 13년 동안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석유 소비량의 70%를 수입하는 인도는 지난 2월 끝내 기름값을 올렸다. 세계적인 유가 상승세에도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지 않고 기름값을 묶어둔 지 20개월 만의 ‘항복’이었다.
4s필리핀]의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도 생필품 가격 급등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퇴진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식량을 모두 수입에 의존하는 필리핀은 최근 곡물값 급등에 직접적인 타격을 맞았다. 지난달 최초로 제헌의회를 출범시켜 왕정을 종식시킨 4s네팔]에서도 이달에만 25% 오른 기름값을 버티지 못한 운수회사들이 파업에 돌입해 신생 ‘공화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중국·베트남 등 공산당 지배 아래 집단 지도체제를 꾸린 나라들이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서 리더십 위기를 겪지 않는 점도 눈길을 끈다. 개혁·개방 이후 경제 관리의 성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대중사회가 정치적 불만을 표출할 만한 수단이 없다는 제도적 한계나, 위기 소식의 전달을 사전에 차단하는 언론 통제의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김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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