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석유발견 100주년…영국 채텀하우스 주장
1908년 5월26일 이란 페르시아산맥의 외진 곳에서 지독한 냄새의 검은 액체가 분출하는 것을 발견한 지질학자 조지 레이놀드는, 막대한 양의 이 석유가 바꿔놓을 세계의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다. 국제유가가 끝모를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 올해로 100년을 맞는 중동 석유 발견에 새삼 관심이 쏠린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채텀하우스는 중동 석유 100년 역사를 짚으며, 석유산업은 ‘소유한 자’와 ‘캐내는 자’의 힘싸움에 따라 주기적인 순환을 보여왔다고 월간 <월드투데이> 최신판을 통해 분석했다.
중동에서 석유가 발견되기 7년 전인 1901년 영국계 오스트레일리아인 윌리암 녹스 다시는, 이란 정부와 석유 자산 소유권에 대한 계약을 맺고 합작 석유회사를 설립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영국 해군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은 이 회사의 지분을 사도록 명령했고, 이 회사는 영국 정부의 합법적인 최대 해외 자산으로 성장했다. 이란 민족주의자에게 영국은 ‘강대국이 만든 국제법’에 따라 자신들의 재산을 뺏아간 외부인이었다. 1979년 이란이 석유를 완전히 국유화하기 전까지 석유를 둘러싸고 영국과 이란 그리고 미국은 끝없는 암투를 벌여왔다.
유가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생산량은 국제 석유회사와 정부 사이의 협상에 따라 결정된다. 현재 치솟는 유가에도 불구하고 최대산유국들인 중동 국가가 생산량을 눈에 띄게 늘리지 않고 있는 바탕에는, 자원민족주의가 자리잡고 있다고 채텀하우스는 주장했다.
1950~60년대 석유회사와 맺은 불합리한 계약을 공격적으로 청산하기 시작한 중동 국가들의 노력은 석유수출기구(OPEC)로 열매를 맺었고 세계 유가 상승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채굴 기술은 석유회사에 비해 많이 떨어져 채유량을 충분히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중동 국가가 자신들의 시추기술로 채굴한 석유의 회수 비율은 20~25%로, 세계 평균 35%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그러나 중동 지역의 국가들은 앞선 기술 도입에 나서지 않는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하루 생산량을 기대치 1500만 배럴에 못 미치는 1250만 배럴로 늘리겠다고 발표하면서 그 이상의 증산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권오성 기자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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