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때 나치 전력…미군 포로생황
81년 바티칸 입성 24년간 교황 보좌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1927년 4월16일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마르크틀 암 인에서 경찰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치의 발흥기에 청년 시절을 보낸 그는 나치의 청년 조직인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했고, 17살 때는 베엠베 공장의 방공포 부대에 근무하기도 했다. 교황 후보로서 그의 ‘나치 전력’을 문제 삼았던 유럽 언론들은 “(교황이 이를) 결코 부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시 그가 공부한 성 미카엘 신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해야 했다”고 전했다. 존 알렌이 쓴 전기 <추기경 라칭거>를 보면, 그는 방공포 부대에 근무하다 독일군에 차출돼 1945년 5월까지 군복무를 했는데, 한때 미군 포로가 돼 수감 생활을 한 것으로 나온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다시 신학교로 돌아가 1951년 그의 형 게오르크(81)와 함께 사제 서품을 받았다. 알렌은 교황이 영어와 프랑스어 등 8개국 언어에 능통하고, 뛰어난 피아노 실력을 갖췄으며, 산책을 무척 즐기는 등 “일찌감치 가톨릭적 지성과 면모를 갖춘 인물”이라고 평했다. 완고한 보수주의로 평가받는 교황은 젊은 시절 ‘신학 개혁’을 주창하는 등 진보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1962~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 이단에 대한 교회법의 보수성을 공격하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튀빙겐과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면서, 당시 유럽을 휩쓴 학생운동의 급진적 마르크스주의와 무신론 등 탈종교적 움직임(세속주의)에 맞서 “신앙을 지키기 위한” 보수주의 성향으로 선회한다. 라이너 캠플링 베를린자유대학 교수는 “그는 나이가 들수록 젊은 시절 경험한 마르크스주의와 세속주의의 위협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며 “21세기보다는 20세기에 더 깊이 뿌리를 박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1977년 뮌헨 대교구장으로 발탁되면서 당시 레겐스부르크 성당의 성가대장으로 명성을 날리던 형 게오르크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동생의 교황 지명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 그의 형은 “(동생은) 훌륭한 교황감이긴 하지만 학자에 가깝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재능은 없다”고 평한 바 있다. 81년 바티칸에 입성한 교황은 교황청의 신앙 교리를 담당하면서 24년 동안 요한 바오로 2세의 가장 가까운 조언자 구실을 해왔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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