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숨진 인도 환경운동가 킨크리 데비
지난달 30일 숨진 인도 환경운동가 킨크리 데비
“언젠가 죽어야 한다면, 뭔가를 위해 싸우다 죽는 게 낫다.” 달리트(불가촉천민) 계급 빈농의 딸로 태어나, 세계적 환경운동가로 살다 간 한 인도 여인의 죽음에 국제사회가 애도를 보내고 있다. <뉴욕타임스> <더 타임스> 등은 인도 북부 히마철 프러데슈주의 환경운동가인 킨크리 데비(사진)가 지난달 30일 82살을 일기로 숨졌다고 전하고, 그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사를 내보냈다. 히말라야 채굴업자들의 삼림파괴에 항거
협박 굴하지 않고 끝내 승소 판결 받아내
가난·문맹 딛고 세계적 여성지도자로 우뚝 킨크리 데비가 국제사회에 이름을 알린 것은 20년 전이다. 당시 그는 자신이 살던 히말라야 산맥 끝자락의 유력한 광산주·채굴업자 48명을 상대로 낸 무차별 채굴 금지 요구 소송에서 이겼다. 애초 법원은 ‘손도 대지 못할’ 천민이 낸 소송을 접수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킨크리 데비가 19일 동안 법원 앞에서 단식투쟁을 하는 모습이 국내외 언론에 보도돼 비판적 여론이 악화되자, 법원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채굴업자들이 다이너마이트 등을 이용해 석회암을 무차별적으로 채굴하면서 삼림이 대거 훼손됐다. 토양 유실과 물 부족 현상도 심각해졌다. 논밭은 망가졌고, 마을 아낙들이 물줄기를 찾아 걸어야 하는 거리는 나날이 길어졌다. 자연보호구역도 아랑곳 않는 개발로 환경은 신음했고, 광산의 먼지 탓에 공기도 나빠졌다. 이런 현실을 생생하게 고발한 킨크리 데비의 주장을 받아들여, 고등법원은 ‘비과학적인’ 채굴작업의 전면 중단 명령을 내렸다. 끊임없이 그를 협박하던 광산주와 채굴업자들은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8년 뒤 킨크리 데비는 다시 한번 승소했다. 사무실의 비정규직 청소부였던 킨크리 데비는 그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에도 초청됐다. 그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침착하게 지역 환경문제에 대해 연설했고, 세계 여성지도자들은 그의 실천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킨크리 데비는 인도 복지 향상에 힘쓴 여성 지도자에게 주는 스트리샥티상 등 여러 가지 상을 받았다. 인도 언론들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 해도, 굳은 결단과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은 없다”는 그의 용기를 높이 평가했다. 킨크리 데비의 투쟁과 노력 덕분에 해당 지역의 개발 규제 법규가 신설됐다. 14살 밖에 되지 않은 킨크리 데비와 결혼한 계약직 노동자 남편은, 그가 22살이 되던 해 장티푸스로 숨졌다. 그 뒤로 킨크리 데비는 가정부·청소부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국제사회에 이름이 알려지면서 국외에서 지원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돈이 생기는 족족 자신의 ‘운동’에 쏟아부으며 검소한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킨크리 데비는 최근까지도 자신의 이름을 적지 못하는 문맹이었다. 비록 온실효과를 가져오는 오염물질의 이름은 몰랐지만, 그는 “삶이 가르쳐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공부할 운명이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처럼 공부가 부족해 고생하는 걸 보고 싶지는 않다”는 게 후배들에게 남긴 진솔한 잠언이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사진 <힘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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