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추방 등 ‘잘못된 역사’에 대한 정부 첫 공식 입장
오스트레일리아의 새 총리로 뽑힌 케빈 러드 노동당 당수가 과거 백인 정권이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가혹 행위에 대해 공식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러드 당수는 “임기 초반에 국가를 대표해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공식 사과하겠다”고 말했다고 <비비시>(BBC) 방송이 26일 보도했다. 그는 “공동체들과 협의해” 구체적인 사과 형식 등을 결정할 것이라며, 이 때문에 다소 시일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원주민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 방침을 표명한 것은 처음이다. 존 하워드 총리는 그동안 현 세대가 과거의 잘못에 대해 죄책감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며, 사과를 거부해왔다.
백인 정권은 영국의 식민개척이 시작된 1788년 이후, 여러 차례의 학살과 추방 등으로 원주민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특히 1915~69년엔 ‘동화정책’이란 이름으로, 원주민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강제로 빼앗아 농장일꾼 등으로 부리기도 했다. 원주민들은 이를 ‘도둑맞은 세대’라고 규정하며, 정부의 총체적인 사과를 요구해왔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 인구의 2%를 차지하는 45만명의 원주민들은 사실상 격리된 주거지역에서 빈곤과 질병 등에 시달리고 살고 있으며, 평균수명도 낮은 편이다.
이와 함께 러드 당수의 당선으로 오스트레일리아가 영국 여왕을 군주로 하는 입헌군주제를 폐기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러드 당수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군주제 폐지 여부를 다시 묻겠다며, 임기 중에 국민투표를 실시할 뜻을 밝힌 바 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러드 정권이 국민투표를 2010년 차기 총선과 함께 치를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99년 노동당의 폴 키팅 전 총리를 주축으로 한 공화제파가 분위기를 주도해 국민투표를 실시했지만 부결된 바 있다. 하지만 일간 <오스트레일리언>의 지난 1월 조사에서 공화제 지지 응답이 45%인 반면 군주제 지지는 36%에 그치는 등, 최근 여론은 군주제 폐지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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