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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집은 주거용’ 만족…다양한 문화생활 여유

등록 2007-02-06 19:23수정 2007-02-07 10:15

싱가포르 토아파요 단지 바깥 모습. 지은지 오래되어 건물이 많이 낡았으나 구조는 튼튼하다. 최근 주택개발청은 공공주택의 품질을 높이는데 신경을 쓰고 있다. /  공공주택 거주자들은 개인적으로 돈을 들여 리모델링을 많이 하고 산다. 이 집도 부엌을 넓혔다.
싱가포르 토아파요 단지 바깥 모습. 지은지 오래되어 건물이 많이 낡았으나 구조는 튼튼하다. 최근 주택개발청은 공공주택의 품질을 높이는데 신경을 쓰고 있다. / 공공주택 거주자들은 개인적으로 돈을 들여 리모델링을 많이 하고 산다. 이 집도 부엌을 넓혔다.
데스크가 본 세계현장 ② 집 걱정 없는 싱가포르
서울과 부천을 합친 정도의 면적에 인구 430만명의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 한국이 주택보급률 100%를 넘어섰으나 자가 점유율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 것에 견줘 이 나라는 보급률 110%에 자가 점유율이 92%를 넘는다. 국민 대부분이 자기 집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에서 반값아파트 공약을 내걸고 토지임대부, 환매조건부 등을 거론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나라지만, 정치 환경이나 주택의 규모로 볼 때 한국이 본받아야 할 모델인지는 논란거리이다. 그러나 국가의 토지소유로 주택을 값싸게 공급받을 수 있고 자금 부분에서도 철저한 중앙연금준비기금(CPF)으로 일찌감치 집값 안정이 이루어져 있어, 주거불안이 최대의 걱정거리인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국가소유 토지 임대해 집값 낮춰…자가 점유율 92%
연기금으로 주택자금 지원…민영주택 선호도 높아져

모두를 위한 집=싱가포르의 주택은 주택개발청(HDB)에서 공급하는 공공주택(플랫)과 민간업체가 공급하는 민영주택(콘도미니엄)으로 크게 나뉜다. 지난달 14일 싱가포르 도심에서 가까운 토아파요 공공주택 단지의 빅터 치앙 가족과 이스트코스트지역의 민영단지 앤드루 로의 집을 찾아 가, 그들의 주거 만족도를 살펴봤다. 주거형태는 다르지만 두 가족은 모두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만족하고 있었다. 집 걱정 없는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자동차·교육·건강·외식·한류 등이었다.

싱가포르의 공공주택에는 국민 80% 이상이 살고 있다. 토아파요 단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담장이 따로 없이 사람들의 출입이 자유로웠다.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는 전기료 절감을 위해 3개층 단위로 운행됐다. 복도의 한 쪽에는 어느 집 것인지 빨랫대에 옷가지들이 걸려 있었다. 이 단지는 공공주택의 선두주자로 조만간 재건축을 앞두고 있기에, 계단 난간과 복도 곳곳에 낡은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니 수리를 해 밝고 깨끗했다. 한국의 집구조와 달리, 앞 베란다가 없었으나 거실, 부엌, 다용도실과 집안의 수납공간 등이 짜임새 있게 배치돼 있었다. 또 단지의 아래층에는 공공도서실이 있어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볼 수 있었다.

주택개발청은 좁은 땅에 다민족(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등)이 더불어 살아야 하기에 일찍부터 “모두를 위한 집(home for all)”을 강조했다. 민족과 관계없이, 나이가 많거나 저소득층이어도 모두에게 편안히 살 수 있는 집을 국가가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방 1개부터 방 5개짜리까지 다양한 형태의 집을 내놓았다. 정부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소유의 토지를 99년간 임대하면서 건물만 분양하여 집값을 크게 낮췄다.

또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비슷한 중앙연금준비기금(연기금)으로 주택자금 지원체계가 알차게 이뤄졌다. 연기금은 국민들의 월급에서 33%를 적립하는데 직장 고용주가 13%, 본인이 20%를 부담한다. 이 연기금은 대부분 주택구입이 목적이고 나이 들면 역모기지 등 노후대비 기금이 된다. 싱가포르 사회는 올해 연기금의 인상 여부를 놓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최대 물류기업인 CWT그룹의 로이 폭 옌 사장은 “외환위기 뒤 내렸던 것을 다시 원상복귀하는 만큼 인상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며 기업인으로서 기분좋은 일은 아니지만 불가피함을 인정했다. 주택 지원자금의 토대가 탄탄함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최근엔 국민 대다수가 집을 소유했기에 공공주택 신청자가 갈수록 줄자 기존주택의 재건축에 역점을 두고 있다. 공공주택 비율이 90년에 87%이었으나 2006년에는 82%로 점차 내려가는 추세이다. 젊은 세대들의 민영아파트 선호도가 높아지는 만큼 정부에서도 공공주택의 품질을 높이되 비중은 점차 낮추고 있다.

공공주택보다 가격이 갑절넘게 비싼 만큼 보안이 철저한 콘도의 현관.
공공주택보다 가격이 갑절넘게 비싼 만큼 보안이 철저한 콘도의 현관.
공공-민영주택 80대20 양극화=콘도라고 불리는 민영주택은 부유층과 외국인이 많이 산다. 세파싱가포르 주식회사 지역영업매니저인 앤드루 로가 살고 있는 이스트코스트지역의 콘도는 들어가는 입구에 경비실이 있어서 출입통제가 철저하고 보안시스템이 잘 되어 있었다. 현관도 대리석으로 깔렸으며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단지 내에 수영장과 헬스장 등 복지 편의시설도 우수하다.

로는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에 공공주택을 2번 사고팔았다. 한 곳에서 8년, 다른 한 곳에서 5년을 살았다. 집걱정 없는 로의 현재 최대 관심사는 자동차. 지금 몰고다니는 차는 벤츠인데 15만달러에 구입했다. 공공주택에 해당하는 가격이다. 그의 아내는 한류에 관심이 많아 집안에 겨울연가 등 한류 비디오가 두 상자나 있었다.

고급주택인 콘도에 사는 사람을 신분코드가 다르다고 구분을 짓기도 한다. 또 집값이 올라갈 때 값이 비싼 민영의 급등폭이 훨씬 크기 때문에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공공주택에 사는 치앙은 “지난 4분기에는 콘도값이 최고 2배넘게 올랐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 공공주택과 달리 큰 폭락세를 겪어 사람들이 콘도 구입에 신중을 기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싱가포르 공공주택 거주 비율
싱가포르 공공주택 거주 비율
이곳의 프롭넥스 부동산 컨설팅 전문가 김계근씨는 “싱가포르의 집값안정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한국도 정부기관이 공급하는 주택은 주거용이라는데 의미가 살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토지공개념을 적극 살려 부동산이 개인이익의 극대화로 가는 것을 정부가 강도높게 막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서 집은 가진자의 전유물도 이전투구의 싸움터도 아니었다. 시세차익을 노리는 대박의 투기장이 아니라 집은 그저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주거의 공간이었다. 물론 여기도 콘도를 몇 채씩 소유한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집값의 추이와 관계없이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임금체계가 한국보다 크게 높지 않은데도 고정지출로 들어가는 주거비 비중이 낮아 다양한 문화활동에 관심을 돌리는 여유가 느껴졌다.


방 2개 공공주택 사는 빅터 치앙

현금 310만원이면 구입가능
“집 걱정보다 아이들 교육”

미국 의류업체 ‘갭’ 영업담당 매니저인 빅터 치앙은 토아페요 단지 공공주택(HDB)에 산다. 방 2개짜리 아파트이다. 이 집을 5년 전에 14만9000싱가포르달러(약 9200만원)에 샀다. 현금으로 5000싱가포르달러(약 310만원)를 내고 연기금으로 20년 대출을 받았다. 매달 갚아나가는 돈이 370싱가포르달러(약 23만원)이다. 이 지역으로 이사온 이유는 학군이 좋아서이다.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려면 반경 1㎞ 이내의 거리에 살아야 추첨에서 우선순위가 된다. 근처에 처가가 있는데 이 점도 공공주택을 구입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한다. 공공주택을 구입할 때 부모가 근처에 살면 정부가 3만싱가포르달러를 지원해준다. 그만큼 집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지난 번 살던 공공주택에서도 5년 넘게 살았다. 5년 이내에 팔면 주택개발청에 환매를 해야 한다. 또 새로 분양받거나 재구입은 투기를 막기 위해 평생 2번으로 제한된다.

치앙은 “싱가포르 공공주택은 탄탄하게 잘 지어졌다. 여기 사는 사람들 대다수는 집에 만족하며 산다. 젊은 세대들은 콘도에 대한 동경이 있어서 돈이 모이면 이사가는 꿈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공공주택도 내부를 고쳐 살기 때문에 쾌적하고 편리하다. 자기돈 많이 들지 않고 이렇게 집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며 집장만이 만만치않은 한국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문현숙 편집부국장
문현숙 편집부국장
치앙의 딸은 가톨릭재단의 중학교에, 아들은 성공회가 운영하는 초등학교에 다닌다. 이 학교들은 등록금이 공립과 비슷하나 졸업시험에 100% 통과하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학교가 되었다. 싱가포르도 엄마들이 아이들 교육에 안달인 편이다. 두 아이들에게 중국어(만다린)와 수학 과외를 시키는 데 한달에 한국돈으로 50만~60만원이 든다.

글·사진/싱가포르/문현숙 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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