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9월20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를 계기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달 15일 ‘인도주의적 전투 중지’(humanitarian pauses)와 ‘인질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 해방’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가자 전쟁’이 발발한 지 39일 만이자, 비슷한 결의안이 무려 네차례 부결된 뒤에 이뤄진 성과였다.
앞선 결의안이 부결된 것은 최소 찬성표를 얻지 못한데다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거부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문제였다. 미국은 결의안에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인정하고 하마스를 비난하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 등을 꼽으며 세차례나 반대표를 던졌다. 특히 10월18일 브라질이 만든 초안에 대해선 전체 15개 이사국 가운데 12개국이 찬성하고 영국·러시아가 기권한 가운데 미국 홀로 거부권을 행사하며 통과를 막았다. 미국은 지난달 15일 가까스로 통과한 결의안에 대해서도 10월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이번 전쟁의 문을 연 하마스를 비난하는 내용이 빠졌다며 결국 기권을 택하고 말았다.
유엔 안보리 결의는 정치적 의미만 갖는 총회 결의와 달리 ‘법적 구속력’이 있다. 길라드 에르단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는 결의안 통과 직후 성명을 내어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무의미하다”고 주장했지만, 하마스와 지난달 24일부터 1일까지 총 7일(애초 4일에 두차례 연장) 일시적 전투 중지에 나섰다.
이번 사태를 거치며 세계인의 이목을 끈 것은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희생이 1만5천명을 넘어서는데도 이스라엘만 싸고도는 미국의 ‘편향 외교’였다. 국제사회의 안정을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는 세계 최강대국이 자신의 지도력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진 것이다.
미국이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1954년부터 2023년까지 유엔 안보리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 제출된 결의안 가운데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모두 36번이었다. 이 가운데 미국이 행사한 거부권은 34차례나 됐다. 이스라엘에 불리한 내용이 안보리 결의를 통해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을 막은 것이다. 이 결의안들은 팔레스타인의 자결권을 인정하거나, 독립하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가 되어야 하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등에서 정착촌을 확대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주변 아랍 국가들을 완패시킨 1967년 ‘6일 전쟁’(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을 중동 내 중요한 ‘전략적 자산’으로 보고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왔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부터 2022년까지 군사와 경제 양쪽 부분에서 무려 1550억달러(약 202조원)의 지원을 받았다. 다른 나라들은 미국의 군사지원을 받으면 전액 미국의 무기를 구매해야 하는 등의 조건이 붙는 데 견줘, 이스라엘은 그 25%를 자국 방위산업에 사용할 수 있다. 또 이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보고하지도 않는다. 이스라엘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만4천달러(2022년 세계은행 기준)가 넘는 선진국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시작되자 지난 10월20일 이스라엘에 143억달러에 이르는 특별 군사원조를 하겠다며 의회에 동의를 구했다. 그러자 민주당 진보파를 중심으로 이 돈에 ‘조건’을 붙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런데도 양당 지도부는 원조에 조건을 달자는 주장은 이스라엘의 군사전략을 방해할 것이라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사악한 테러분자들에 맞서 조국을 지키는 이스라엘 병사들의 손을 묶고자 한다면, 그런 토론을 환영하겠다”며 “나는 우리 동맹국을 100% 지지한다”고 말했다. 벤저민 카딘 상원 외교위원장(민주당)도 “우리는 동맹국 원조에 조건을 붙이지 않고, 그들의 국방을 세밀히 관리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편들기는 세계 경제에 큰 부담을 끼치기도 했다. 시리아와 이집트의 기습 공격으로 1973년 욤키푸르 전쟁(4차 중동전쟁)이 시작되자 미국은 이스라엘에 군사원조를 제공했다. 이에 반발한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 금수를 단행하며 1차 오일쇼크가 발생했다. 그 여파로 전세계는 10년 가까이 불황을 겪었다. 이집트 등이 소련과 가까워진 것은 이스라엘이 미국 등 서방의 지원을 받아 3차례의 중동전쟁에서 모두 승리하며 아랍 국가들에 큰 안보 위협이 됐기 때문이다. 이후 중동 정세가 안정된 것은 미국이 ‘중립적 위치’에서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관계 개선을 이끈 1978~1979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통해서였다.
이후 중동에선 ‘중동전쟁’이라 불릴 만한 전방위적인 무력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이 그보다 규모가 작은 전쟁을 일으킬 때마다 미국의 편들기는 이어졌다. 이스라엘이 1982년 레바논을 침공하자 미국은 처음엔 철군을 요구했다. 하지만 결국엔 다국적 평화군이란 명목으로 미 해병대를 파견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이슬람주의 세력들의 분노를 촉발해 1983년 베이루트의 미군 병영에 자살폭탄 트럭 테러가 발생했다. 그로 인해 미군과 군무원을 합쳐 총 241명이 숨졌다. 당시 기준으로 미국이 입은 최대 테러 공격이었다.
미국 대외정책의 최대 재앙이라 할 수 있는 2003년 이라크 전쟁도 조지 W. 부시 당시 행정부 내의 네오콘 세력들이 이스라엘의 주적인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타도하려 기획한 전쟁이었다. 이스라엘과 네오콘은 부시 정권 출범 뒤 중동을 친미 민주주의 국가들로 바꾸려는 ‘중동 개조론’을 입안해 첫 대상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을 지목했다. 네오콘들은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자, 이와 상관없는 이라크를 먼저 침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 제조 의혹을 조작해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으로 미국은 수렁에 빠졌고, 반미의 기치를 내건 이란의 중동 내 영향력이 커지게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오른쪽) 이스라엘 총리가 2017년 5월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총리 관저에서 만찬을 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예루살렘/AFP 연합뉴스
이번 가자 전쟁이 발생한 핵심 원인 역시 미국이 주도한 이스라엘-사우디의 수교 협상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2017년 말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고, 2018년 이란과의 핵협정(JCPoA)을 일방 파기하는 등 일방적인 친이스라엘 정책을 폈다. 여기서 더 나아가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의 국교 정상화를 실현했다. 이후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적극 중재로 이스라엘-사우디 수교 역시 시간문제로 다가온 상황이었다. 사우디는 그 조건으로 핵 개발 지원까지 요청했다. 결국 이스라엘-사우디 수교로 아랍 세계 내에서 고립될 것을 우려한 하마스는 전쟁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와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2006년 ‘이스라엘 로비’라는 책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를 넘어서 자신의 안보와 국익까지도 해치는 대이스라엘 정책을 분석하며 “너무도 자주, 우리는 이스라엘의 변호사처럼 역할을 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미국이 자신과 다른 동맹국들의 안보를 기꺼이 위태롭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미국 내 이스라엘과 유대인 로비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2006년 12월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고에서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들에 대한 비판을 꺼리는 것은 미국이스라엘공공문제위원회(AIPAC)의 비정상적인 로비 행태와 이에 반대되는 어떠한 목소리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비판해,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이 지적처럼 미국 정가에서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두 유대인 며느리를 둔 바이든 대통령 자신이 열광적인 이스라엘 지지자이기도 하다. 그는 “시오니스트가 되기 위해 유대인일 필요는 없다”고 발언하는 등 이스라엘과 유대인 민족주의인 시오니즘을 열렬히 옹호해 왔다. 현재 474명의 백악관 직원 중 155명이 유대계인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인구에서 유대인 비율은 2.4%에 불과하나, 백악관에서는 33%이다. 백악관의 유대인이 모두 친이스라엘이라 할 수 없겠지만, 미국 내 인구 비중에 비해 무려 13배나 과다 대표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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