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경찰이 슬로바키아 국경 근처에서 불법 이주민 수송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트럭을 조사하고 있다. 스타리흐로젠코프/AP 연합뉴스
체코와 폴란드가 중동 등에서 들어오는 이주민을 막는다며 슬로바키아 국경에 대한 일방적인 통제 조처를 발표하고, 오스트리아도 이를 뒤따르면서 슬로바키아와 갈등이 커지고 있다.
체코와 폴란드 정부가 3일(현지시각) 불법적인 이주민 유입과 밀수업자 적발을 내세워 슬로바키아 국경 검문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이번 조처는 두 나라의 조율을 거쳐 결정된 것이며 4일부터 적어도 10일 동안 시행될 예정이다.
비트 라쿠샨 체코 내무부 장관은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번 조처는 밀수업자들과 불법 이주민에 맞서는 효과적인 싸움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검문은 슬로바키아와의 국경 전 지역에서 무작위로 실시될 예정이며 국경을 통과하는 교통에는 큰 차질이 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나라의 국경 통제 발표 직후 오스트리아도 같은 조처를 선언했다. 게르하르트 카르네르 내무부 장관은 주변국들의 국경 통제로 난민이 자국으로 흘러드는 걸 막기 위해 체코가 취하는 조처와 같은 수준의 통제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슬로바키아는 북서쪽으로는 체코, 북쪽으로는 폴란드, 서쪽으로는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유럽 내륙 국가다. 또, 남쪽으로는 헝가리, 동쪽으로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슬로바키아 주변국 가운데 우크라이나를 뺀 4개국은 모두 유럽연합(EU) 회원국인 데다가, 사증(비자) 없이도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게 하는 솅겐조약 가입국들이다.
슬로바키아는 주변국의 국경 통제에 즉각 반발했다. 연정 붕괴 이후 관리 내각을 이끌고 있는 루도비트 오도르 총리는 체코와 폴란드의 국경 통제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할 것이라며 이 문제는 유럽연합 차원의 해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방적인 조처가 연쇄 반응을 부르고 있다며 “이번 조처는 선거를 앞둔 폴란드에서 시작했고 체코가 그 뒤를 이었다”고 지적했다.
체코 등 주변국들이 슬로바키아 국경 통제에 나선 것은 슬로바키아가 중동과 아프가니스탄 출신 이주민들의 주요 유입 통로 구실을 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주민들은 세르비아 등 발칸반도 국가들과 헝가리를 거쳐 슬로바키아로 들어오고 있으며,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독일 등 서유럽이다. 슬로바키아 정부는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은 2만7천여명을 구금했으며 이는 한해 전에 비해 9배나 늘어난 것이라고 밝혔다.
이주민 유입 문제는 지난달 30일 실시된 슬로바키아 총선에서도 중요 쟁점이었다. 좌파 정당 ‘스메르’(방향-사회민주주의)를 이끌고 총선에서 승리한 로베르트 피초 전 총리는 연립정부 구성 이후 이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탈리아가 최근 북아프리카에서 넘어오는 이주민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동유럽 국가들까지 이주민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으면서 유럽연합 차원의 대응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