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주민들이 무장 갱단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한 운동장에 머물고 있다. 포르토프랭스/로이터 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2일(현지시각) 무장 갱단이 나라를 무정부 상태에 빠뜨린 아이티에 다국적 경찰을 파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번 결의안은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 이후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의 대결 무대가 되다시피한 안보리가 모처럼 통과시킨 것이다. 결의안은 미국과 에콰도르가 제안했으며, 중국과 러시아는 표결에서 기권함으로써 결의안을 저지하지도, 지지하지도 않았다.
결의안 통과에 따라 아이티에는 19년 만에 새로운 외국 병력이 투입된다. 유엔은 2004년 이 나라가 쿠데타로 혼란에 빠지자 평화유지군을 파견했다. 평화유지군 임무는 일부 군인의 성착취 사실이 드러나고 이 나라에 콜레라가 크게 번지면서 2017년 종료됐다.
아이티는 2021년 7월7일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자택에서 괴한들에게 암살을 당하면서 또다시 큰 혼란에 빠졌다. 게다가 한달여 뒤인 8월14일 규모 7.2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해 2200여명이 숨졌다. 2022년 여름부터는 무장 갱단 두 곳의 주도권 다툼으로 온나라가 무정부 상태의 전쟁터가 됐다. 상황이 계속 악화하자, 아리엘 앙리 아이티 총리는 지난해 10월 국제 사회에 병력 파견을 호소했다.
이날 통과된 결의안은 케냐 경찰을 주축으로 한 다국적 경찰 병력을 1년 동안 파견해, 정보 수집과 공수 작전, 의료 지원 등의 임무를 맡기는 내용을 담았다. 이들이 수행할 임무는 유엔의 공식 임무는 아니다. 필요한 예산도 유엔 회원국들의 자발적인 지원금으로 충당될 예정이다. 미국은 최대 2억달러의 지원을 약속했다.
케냐 정부는 경찰 병력 1000명을 파견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자메이카, 바하마, 앤티가바부다 등 3개 카리브해 이웃나라들도 경찰 파견을 약속했다. 파견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케냐 정부는 내년 1월쯤 경찰을 보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안보리는 이와 함께 아이티 내 전체 갱단에 대한 무기 수출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안보리는 외국에서 흘러들어가는 무기 때문에 분쟁이 심화된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일부 갱단에 대한 무기 공급을 금지시킨 바 있다. 이번 무기 수출 금지 대상을 전체 갱단으로 확대했다. 아이티에 공급되는 무기 대부분은 미국에서 흘러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빅토르 제네위 아이티 외교장관은 결의안 통과가 “단순한 표결이 아니라 비탄에 빠진 국민들에 대한 연대의 표현”이자 “너무나 오랫동안 고통을 겪은 국민들에게 선사하는 희망의 빛”이라고 환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