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20일(현지시각) 기자회견을 열어 내연기관 자동차 신차 판매 금지 시기를 2035년으로 5년 늦춘다고 발표하고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20일(현지시각)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 시기를 5년 늦추는 등 기후 변화 대응을 완화하는 정책들을 내놨다. 환경단체들과 야당은 물론 전기차에 투자했던 자동차 업체까지 비판을 쏟아냈다.
수낵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휘발유와 경유를 쓰는 신차 판매 금지 시기를 2030년에서 2035년으로 늦춘다고 발표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그는 ‘2035년 판매 금지’는 유럽연합(EU)과 같은 일정이라며 기존의 기후 변화 대응 목표는 가계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준다고 지적했다.
수낵 총리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한다는 기존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며 “좀더 실용적이고 균형 있으며 현실적인 접근법”을 취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 시기 연기는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 사안이다.
유럽연합은 지난 3월말 내연기관 자동차를 2035년부터 퇴출시키기로 확정하면서, 전기 기반 합성연료를 쓸 경우 2035년 이후에도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허용하기로 했다. 또, 미국 연방 정부는 지난 4월 중순 자동차의 오염물질 배출 기준을 강화해 2032년까지 전기차 판매 비중을 전체 승용차의 67%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수낵 총리는 2035년부터 가정용 가스 보일러 새 제품 판매를 금지하려던 계획도 완화하기로 했다. 새 정책에 따르면, 집 주인들은 기존 가스 보일러를 교체할 시기가 도래하면 전기 열펌프로 바꿔야 한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보일러 교체 지원금은 7500파운드(약 1240만원)로 기존보다 2배 늘지만, 상당수의 주택은 의무 교체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집 주인들에게 부과되는 에너지 효율 목표치도 사라진다.
환경 단체와 야당은 즉각 비판했다. 윌 맥캘럼 영국 그린피스 집행 이사는 수낵 총리가 “또 한번 자신의 석유·가스 업계 친구들을 우선 순위에 뒀다”고 비판했다. 에드 밀리밴드 노동당 예비내각 에너지 장관은 “이번 조처는 자포자기 상태에다 방향도 없는 총리의 나약한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노동당 예비내각은 자신들이 집권하면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 시기를 2030년으로 되돌릴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내 전기차 생산에 투자해온 미국 자동차 업체 포드도 실망감을 표시했다. 포드 영국 법인의 리사 브랭킨 대표는 포드가 전기차 생산을 위해 영국에 4억3천만파운드(약 7100억원)를 투자했다며 “이번 조처는 우리가 영국 정부로부터 필요한 세가지 곧 야심, 헌신, 일관성을 모두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결정은 내년으로 예상되는 총선에서 고물가와 경제 침체에 불만이 큰 유권자들을 잡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로이터 통신은 지적했다. 보수당은 지난 7월 런던 억스브리지 선거구에서 실시된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노동당 소속인 사디크 칸 런던시장의 배기가스 억제 정책을 집중 공격해 예상 외의 승리를 거뒀다. 그 이후 수낵 총리는 기후변화 정책에 본격적으로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정치 매체 폴리티코가 집계한 최근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보수당 지지율은 26%로 노동당(44%)에 크게 밀린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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