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PBS에서 1983년 1월11일 첫 방송을 한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 한 장면. 여기서 그린 그림이 최근 매물로 나왔다. 밥 로스 유튜브 갈무리
하얀 캔버스에 붓으로 물감을 툭툭 찍고, 페인팅 나이프로 쓱쓱 긁으면 나무가 자라고, 강물이 흐르고, 물레방아가 돌아간다. ‘밥 아저씨’는 시청자들을 바라보며 “어때요. 참 쉽죠”라고 말한다.
교육방송(EBS) 프로그램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미국 PBS 방영 제목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로 국내에도 친숙한 밥 로스가 40년 전 첫 방송에서 그린 그림이 985만달러(약 131억원)에 매물로 나왔다.
20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화랑 ‘모던 아티팩트’ 누리집을 보면, 로스가 1983년 1월11일 첫 방송에서 그린 ‘숲 속의 산책’(A Walk in the Woods)이라는 이름의 유화가 매물로 올라왔다. 숲 속 연못과 단풍이 든 나무 등이 묘사된 작품으로 왼쪽 하단에 붉은색으로 로스의 서명이 돼 있다. 방송에서 30분 만에 그렸다고 한다.
교육방송(EBS) 프로그램 ‘밥 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의 한 장면. 밥 로스 코리아 유튜브 갈무리
모던 아티팩트는 그림의 출처에 대해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 시즌 1이 방영될 때 피비에스(PBS)에서 일하던 자원봉사자가 자선 모금 행사에 나온 그림을 약 100달러(약 13만원)에 샀다”며 자원봉사자가 1983년부터 소장하고 있던 그림을 올해초 자신들이 구입했다고 미국 공영라디오 엔피알(NPR)과 시엔엔(CNN)에 밝혔다. ‘밥 로스 주식회사’(로스의 동업자가 설립한 회사)가 해당 그림이 진품인 것을 확인했다.
시엔엔은 모던 아티팩트 소유주인 라이언 넬슨이 “이 그림은 복제할 수 없는 특별한 작품이다. 로스의 작품이 최근 수년에 걸쳐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노스탤지어(향수)와 소셜미디어, 예술 작품 뒤의 인물에 대한 관심 등으로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엔피알은 “지금까지 판매된 로스의 작품 중 가장 비싸고, 역사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첫 방송에서 로스는 그림을 그리기 전 “여기에는 비밀이 없다.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라며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속에 있는 꿈과 약간의 연습이다”고 말했다.
로스는 미 공군에서 20년간 복무한 뒤 미술 강사로 활동하다가 1995년 5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림 3만점 이상을 그렸다고 밝힐 정도로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했다. 그의 작품 가운데 1165점은 밥 로스 주식회사에 보관돼있고, 나머지는 개인 소장가들이 보유하고
미국 미네소타주의 화랑 ‘모던 아티팩트’ 누리집에 올라온 밥 로스의 그림. 누리집 갈무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의 공영방송 피비에스(PBS)에서 1983년 1월부터 1994년 5월까지 방영한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으로 이름을 알렸고, 국내에서도 1990년대 초중반 방영된 뒤 이후 몇차례 재방송을 하며 인기를 끌었다.
엔피알은 인터넷과 유튜브 등으로 젊은 세대도 로스의 매력을 발견해 문화적으로 부활했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이름으로 된 유튜브 계정의 구독자는 20일 현재 563만명이고, 각 영상의 조회수는 수백만에서 수천만회에 달한다.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은 종종 티브이(TV)에서 재방송되곤 한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