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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2만명 주검 묻을 마른땅조차 없다…폭우가 할퀸 리비아

등록 2023-09-14 18:12수정 2023-09-15 08:29

“수인성 질병 확산 두려움도”
봉사자 “냉동고·깨끗한 물 필요”
대홍수가 덮친 북아프리카 리비아 동북부 도시 데르나에서 알 마사르 TV가 13일(현지시각) SNS에 공개한 영상 갈무리. 한 남자가 차량 옆에서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AFP/연합뉴스
대홍수가 덮친 북아프리카 리비아 동북부 도시 데르나에서 알 마사르 TV가 13일(현지시각) SNS에 공개한 영상 갈무리. 한 남자가 차량 옆에서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AFP/연합뉴스

“집 안, 거리, 바닷가, 사방에 주검이 널려 있다. 가는 곳마다 숨진 이들이 있다.”

이틀째 계속되다 11일 새벽 집중 폭우로 댐이 무너지며 역대급 재난을 겪은 리비아 동북부 도시 데르나로 구호 활동을 온 에마드 팔라흐는 14일 에이피(AP) 통신에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참상을 털어놨다.

댐 붕괴로 발생한 거대한 탁류가 쓸고 나간 도시 곳곳엔 주검이 방치돼 있고, 해안 쪽에선 바다로 쓸려나간 이들의 죽은 육신이 수십구씩 떠밀려 오는 중이다. 팔라흐는 지중해 앞바다에 둥둥 떠 있는 주검들을 건져 올리는 중이다.
대홍수가 덮친 북아프리카 리비아 동북부 도시 데르나에서 14일(현지시각) 무너진 집 밖에 장난감들이 흩어져 있다. AP 연합뉴스
대홍수가 덮친 북아프리카 리비아 동북부 도시 데르나에서 14일(현지시각) 무너진 집 밖에 장난감들이 흩어져 있다. AP 연합뉴스

<br>12일 구조대가 진흙으로 뒤덮인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12일 구조대가 진흙으로 뒤덮인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외신들은 거대 참사로 기능을 상실한 도시가 갑자기 발생한 수천구의 주검을 처리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다고 짚었다. 수색대는 진흙탕으로 변한 도시에서 주검을 묻을 마른땅을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활동가들은 현장을 찾은 외신 기자들을 붙들고 주검 수습에 특화된 수색대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12만5천여명이 살던 도시지만, 공동묘지는 딱 한곳뿐이다. 수색 활동에 참여한 생존자 아흐마드 압달라는 수습한 주검들을 일단 병원 마당에 안치한 뒤 공동묘지에서 집단 매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희생자 한명 한명을 기릴 여유가 없어 건져 올린 주검을 무더기로 파묻는 중이다.

특히 ‘숨진 사람은 3일 이내에 장례식을 치러줘야 한다’는 이슬람 교리를 지키기 위해 수색대가 동분서주하고 있다. 살아남은 이들은 가족들의 생사 확인을 위해 거리를 헤매거나 가족의 주검을 담을 가방이 더 필요하다고 절규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생자 규모는 더욱 불어나고 있다. 13일 압둘메남 가이티 데르나 시장은 사우디아라비아 매체 알아라비야 방송에 출연해 “사망자가 1만8천명에서 최대 2만명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도시 주민 여섯명 중 한명이 목숨을 잃은 셈이다. 국제이주기구(IOM)는 데르나에서만 최소 3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이번 참사에 희생된 이들 가운데는 산유국인 리비아로 일자리를 찾아간 주변 국가 노동자들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집트 정부는 이번 재난으로 리비아에서 사망한 자국민 87명을 매장했다고 밝혔다. 13일 오전 이집트 남부 샤리프 마을에선 64명의 공동 장례식이 치러졌다.

대홍수가 덮친 북아프리카 리비아 동북부 도시 데르나에서 12일 한 남성이 훼손된 건물에서 가재도구를 챙기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대홍수가 덮친 북아프리카 리비아 동북부 도시 데르나에서 12일 한 남성이 훼손된 건물에서 가재도구를 챙기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시엔엔(CNN)은 주검이 곧바로 수습되지 못하고 방치되면서 도시 전체가 감염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구조위원회(IRC) 리비아 담당자 엘리 아부아운은 수인성 질병이 확산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며 “재앙 속에서 또 다른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깨끗한 물, 위생 시설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데르나에서 자원봉사 중인 의사 아이샤 박사는 “우리는 이제 수많은 주검을 매장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며 “주검을 냉동고로 옮길 수 있도록 국제적 지원을 받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검을 가족들에게 찾아주기 위해 “디엔에이(DNA)를 식별하는 데 도움을 줄 단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리비아를 강타한 폭풍 다니엘로 아들을 잃은 한 아버지가 13일(현지시각) 이송된 아들의 주검을 묻어준 뒤 울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리비아를 강타한 폭풍 다니엘로 아들을 잃은 한 아버지가 13일(현지시각) 이송된 아들의 주검을 묻어준 뒤 울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리비아 동북부 항구도시 데르나가 홍수로 초토화가 된 모습. 지난 10일 열대성 폭풍 영향으로 댐 두 개가 잇따라 무너지면서 엄청난 양의 물이 이 지역을 덮쳤다. 지금까지 약 5천300명이 사망하고 1만명 이상의 실종자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13일 압둘메남 알가이티 데르나 시장은 사망자 수가 1만8천명에서 최대 2만명이 될 수 있다고 추산했다. 데르나[리비아] 로이터/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리비아 동북부 항구도시 데르나가 홍수로 초토화가 된 모습. 지난 10일 열대성 폭풍 영향으로 댐 두 개가 잇따라 무너지면서 엄청난 양의 물이 이 지역을 덮쳤다. 지금까지 약 5천300명이 사망하고 1만명 이상의 실종자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13일 압둘메남 알가이티 데르나 시장은 사망자 수가 1만8천명에서 최대 2만명이 될 수 있다고 추산했다. 데르나[리비아] 로이터/연합뉴스

이웃 나라들은 구조대와 구호품을 적극 보내고 있다. 알제리·튀니지·이집트 등 북아프리카 국가들과 튀르키예·카타르·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국가, 유럽연합(EU)과 영국, 미국 등이 구조대와 구호품을 보내는 행렬에 동참했다. 나아가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10년 넘게 내전과 분열로 얼룩진 리비아가 이번 재난을 계기로 힘을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폴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13일 성명에서 “모든 리비아 정치 주체가 정치적 교착 상태와 분열을 극복하고 공동의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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