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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공포정치에 맞서는 아프간 여성들 “20년 전과 우린 달라”

등록 2023-08-15 19:43수정 2023-08-16 02:42

영국 BBC가 꼽은 ‘다섯번의 주요 순간들’
지난해 9월22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한 여성 축구팀 구성원들이 신체 전반을 가리는 부르카를 착용하고 축구공을 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해 9월22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한 여성 축구팀 구성원들이 신체 전반을 가리는 부르카를 착용하고 축구공을 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여성들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활발하게 활동할 것이다. 계속 공부하고 일할 수 있게 하려 한다.”

2년 전인 2021년 8월15일. 아프가니스탄의 극단주의 무장 정파 탈레반은 미군 철수와 함께 수도 카불을 재점령한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국제사회는 이들의 ‘호언장담’을 반신반의하며 받아들였지만, 결국 약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탈레반 지도부는 끊임없는 종교 칙령 선포와 각종 판결을 통해, 여성에게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공포 정치’를 하고 있다. 여성들은 옷차림과 이동의 자유를 빼앗겼고, 인간으로서 존엄을 누리며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교육의 기회와 일자리를 빼앗겼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대외 활동을 금지당한 채 사실상 실내에서만 머물게 됐다.

영국 비비시(BBC)는 15일 2년간 이어진 탈레반의 여성 탄압 흐름에 ‘다섯번의 주요 순간들’이 있었다고 짚었다. 첫 순간은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지 한달 뒤였다. 2021년 9월 탈레반 교육당국은 여중생과 여고생의 교실 출입과 수업 참여를 금지했다. 학교는 남학생만을 위한 수업을 시작했다. 처음 내세운 명분은 남녀 분리 수업을 해야 하는데 교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당시 비비시가 카불에서 만난 한 17살 여학생은 “등교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너무 허탈하다”며 학교로 가는 남학생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같은 시기 탈레반은 여성부를 폐지하고, 1차 집권(1996~2001년) 때처럼 이슬람 율법에 따라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권선징악부를 되살렸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제한 조처는 점차 강화됐다. 탈레반 권선징악부는 그해 12월, 72㎞ 이상 이동하는 여성은 반드시 가까운 남성 친척과 동행할 것을 명했다. 6개월 뒤인 지난해 5월엔 “모든 여성은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려야 한다”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몸을 가리는 복장을 강제했다. 그뿐만 아니라 남성 가족 구성원이 이를 감시하게 하고 위반하면, 남성 가족을 처벌하도록 했다.

아프간 현지를 직접 취재한 비비시 취재진은 “거듭된 금지 조처로 지난 2년 사이 카불의 시내 풍경이 상당히 달라졌다”고 전했다. 청바지에 화려한 색상의 긴 ‘튜닉’(헐렁한 상의)을 입고 히잡을 두른 채 하이힐을 신던 여성들의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대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가리고 눈만 내놓은 ‘부르카’를 입은 이들이 나타났다. 카불의 식당가에선 아버지와 아이들, 무리 지은 소년들의 모습을 볼 순 있지만, 어머니인 여성은 보이지 않는다. 대외 활동이 제한되면서 빈곤에 내몰린 여성들이 거리에서 구걸하는 모습도 점점 더 많이 눈에 띄고 있다. 10대 소녀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취업할 기회가 사라지자 가족들로부터 조혼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비비시는 설명했다.

급기야 탈레반 교육당국은 지난해 말 여성의 대학 교육을 공식 금지했다. 탈레반 경제부도 유엔(UN) 등 모든 비정부기구(NGO)에서 여성 직원의 근무를 금지했다. 같은 시기, 카불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여성의 공원·체육관·수영장·공중목욕탕 출입이 가로막혔다. 탈레반의 감시를 피해 여성들이 모일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이던 미용실마저 지난 7월 폐쇄됐다. 이로 인해 미용업에 종사하던 약 6만명의 여성이 실직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비비시는 전했다.

지난해 8월13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여성들이 “빵, 일자리, 자유”를 외치며 탈레반 정권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해 8월13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여성들이 “빵, 일자리, 자유”를 외치며 탈레반 정권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지난해 12월22일 수도 카불에서 여성의 대학 교육 금지령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지난해 12월22일 수도 카불에서 여성의 대학 교육 금지령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탈레반은 탄압 조처를 발표할 때마다 “전통적 이슬람 율법과 아프가니스탄의 가치로 돌아가는 것”이라 설명한다.  탈레반은 15일에도 자비훌라 무자히드 대변인 명의 성명을 내어 “카불 정복 2주년을 맞아 우리는 성전의 나라 아프가니스탄을 축하한다”며 “이슬람 시스템은 제자리를 잡아 모든 것이 샤리아(이슬람 율법) 시각에서 설명된다”고 밝혔다. 이런 조처의 배경에는 탈레반 정권의 지지 기반인 극단적 보수 성직자들과 부족 지도자들이 있다. 비비시는 “탈레반은 정권을 재장악하는 데 도움을 준 이들의 신념에 어긋나는 움직임을 보일 경우, 지지 기반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공포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정권의 무자비한 제한 조처에 반발하는 여성들의 대응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아프간 여성들은 여러 차례 카불 중심가에서 “공부하고 일할 권리를 달라”며 행진을 벌였다. 시위 탄압은 매우 폭력적이었다. 한 시위 참여자는 비비시에 “전깃줄로 채찍질을 당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적어도 네명의 여성 활동가가 체포돼 몇주 동안 구금된 채 구타를 당했다.

대외 활동이 제한되면서 여성들은 지하 비밀 학교를 운영하는 등 삶을 영위할 또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 구금될 위험에도 아프간 여성들은 계속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시위에 참여한 한 여성은 비시시에 “우리는 20년 전 탈레반이 탄압했던 그 시대 여성들과는 다르다. 우리가 변했다는 것을 그들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며 “목숨을 바쳐서라도 (변화를) 수용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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