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3일 벨라루스 국경 인근의 긴장 고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과 만나기로 했다. 레기오노보/EPA 연합뉴스
벨라루스 군 헬기의 폴란드 영공 침범을 둘러싸고 두 나라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가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를 전진 배치하고, 러시아 용병집단 바그너(와그너)그룹까지 이곳에 주둔한 데 이어 대결 구도가 심화하는 양상이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2일 정부 누리집을 통해 동부 국경 지역의 도발 행위에 따른 긴장 고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과 3일 만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도발에 직면한 상황에서 리투아니아와의 협력이 아주 중요하다”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우방 국가들과도 지속적으로 접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폴란드는 몇년 동안 벨라루스와 러시아로부터 도발과 (군사·비군사 행위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공격의 표적이 되어왔다”며 “올해 들어서만 1만6천번의 불법 국경 통과 시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양국 정상의 만남은 폴란드 국방부가 지난 1일 벨라루스 헬기 2대가 자국 영공을 침범했다고 밝힌 이후 발표됐다. 앞서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장관은 국가안보국방장관위원회를 주재하고 벨라루스 헬기의 영공 침범에 대응하기 위해 국경 지역에 군 헬기 등 무기와 병력을 추가 배치하기로 했다. 폴란드 외교부는 이번 영공 침공이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라며 영공 침범에 대해 설명하도록 벨라루스 대사 대리를 초치했다고 밝혔다.
폴란드 군은 애초 영공 침범이 없었다고 밝혔다가 뒤늦게 말을 바꿔 논란을 불렀다. 벨라루스 국경 인근 지역인 비아워비에자 지역의 주민들은 지난 1일 일찍부터 소셜미디어를 통해 벨라루스 헬기가 국경을 넘어왔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폴란드 군은 애초 영공 침범 사실을 부인했으나 이날 밤늦게 국방부 발표를 통해 영공 침범을 공식화했다. 국방부는 “헬기가 아주 낮은 고도로 비행해 레이더로 감지하기 어려웠다”고 사실 확인이 늦어진 이유를 설명했다.
벨라루스는 영공 침범 사실을 즉각 부인하면서 폴란드가 병력 증강을 정당화하기 위해 영공 침범을 내세운다고 주장했다. 벨라루스 국방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폴란드가 “외국의 ‘주인님’들과 협의한 뒤 생각을 바꾼 게 분명하다”며 “이 발표는 폴란드 자체 데이터를 근거로 한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벨라루스 국방부는 폴란드의 주장을 ‘(노인 등의) 실없는 이야기’로 간주하며 Mi-8, Mi-24 헬기의 영공 침범이 없었음을 확인한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의 주요 우방인 벨라루스는 지난해 2월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을 간접 지원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3월25일 나토의 위협에 대응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 배치를 선언했고, 5월 말부터 실제 배치에 들어갔다. 게다가, 지난 6월23일 무장 반란을 시도했던 러시아 용병 집단 바그너그룹의 대원들이 7월부터 본격적으로 벨라루스로 옮겨 오면서 폴란드 등 주변국들과의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지난달 29일 바그너그룹 용병 100여명이 폴란드 국경 인근 도시 그로드노에 집결했다며 이들이 이주민을 가장해 유럽연합(EU) 국가로 잠입한 뒤 하이브리드 공격을 시도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바그너그룹이 러시아 본토와 떨어진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와 벨라루스 북서쪽을 연결하는 폴란드·리투아니아 국경지대인 ‘수바우키 회랑’ 장악 시도를 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수바우키 회랑은 발트해 3국과 서·중부 유럽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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