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목으로 맨 땅이 노출된 독일 중서부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타우누스 산맥.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자연복원법안이 유럽의회의 거부로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프랑크푸르트/AP 연합뉴스
2030년까지 유럽의 훼손된 땅과 바다 20%를 복원하겠다는 내용의 자연복원법이 유럽의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해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이로써 탄소 배출 억제 등 기후 변화 대응을 강하게 추진해온 유럽연합(EU)의 행보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유럽연합의 입법기관인 유럽의회 산하 환경위원회가 27일(현지시각)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자연복원법안을 찬성 44표, 반대 44표로 부결시켰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찬성이 과반에 이르지 못함에 따라 환경위원회는 자연복원법안 반대 안건을 다음달 11일 본회의에 상정할 예정이다. 유럽의회 내 최대 정치세력인 중도 성향의 ‘유럽국민당’(EPP)은 자연복원법이 유럽의 식량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이 법안이 의회의 승인을 받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유럽국민당 소속의 페터 리제 의원은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걸 했다. (기후 대응 종합 대책인) ‘녹색 딜’은 좋은 것이지만, 우리는 이를 너무 확장하는 상황에 왔다”고 반대 배경을 설명했다.
좌파 성향의 모하메드 차힘 의원은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사람과 지구를 이롭게 할 야심찬 법 뒤에 있는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행위원회 등과의 법안 관련 협상을 이끌어온 세사르 루에나 의원도 “우리는 식량 안전을 확보하는 한편 농민, 축산농가, 어민들의 이익을 위해 거부할 수 없는 자연 환경 개선을 보장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연복원법안은 탄소 배출을 억제하고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한 유럽연합의 기후 변화 대응 정책 중 중요한 한 부분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 환경 오염으로 파괴된 땅과 바다의 20%를 복원하고 2050년까지는 전체 생태계 복원을 추구하는 내용의 법안 제정을 이달 초 제안했다. 회원국 환경 장관들은 지난 20일 논란 끝에 회원국들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하는 조건으로 법안에 합의한 바 있다.
유럽의회가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않으면 집행위원회, 회원국, 유럽의회가 새롭게 법안 마련을 위한 논의에 들어가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내년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농·어민 유권자를 의식한 정치적 계산 탓에 재논의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